[시사텔링] 황교안의 조어(造語)정치…“품격인가요, 관료습성일까요”
스크롤 이동 상태바
[시사텔링] 황교안의 조어(造語)정치…“품격인가요, 관료습성일까요”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3.18 17: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세먼지·알바천국 등 쉬운 말로 문재인 정부 겨냥…품격 있는 비판 vs. 관료 습성 의견 갈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조어 정치가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조어 정치가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뉴시스

흔히 정치를 말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는 활동이 정치고, 그 도구가 말이기 때문일 텐데요.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서는 말을 잘 ‘다루는’ 인물이 높은 평가를 받아왔죠.

그런데 최근 ‘말’로 주목받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당대표 자리에 오른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황 대표는 벌써 다양한 ‘어록(語錄)’을 쏟아내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황 대표의 발언이 처음으로 정치권의 이목(耳目)을 끌었던 것은 지난 6일이었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네티즌들은 미세먼지가 아니라 ‘문세먼지’라고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을 따지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제서야 긴급 보고를 받았고 하나마나 한 지시사항 몇 개 내놓은 게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문세먼지란 문재인과 미세먼지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인데요. 미세먼지 책임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꼬집은 표현입니다. 미세먼지에 대한 실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또 야당 대표로서 적절한 발언을 한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와 미세먼지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발언이었죠.

황 대표의 조어(造語) 정치는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이 정권이 일자리에 쓴 돈이 무려 54조 원인데 도대체 이 막대한 돈을 어디에 쓰고 참담한 고용성적표를 받았는지 철저히 따지겠다”면서 “대한민국이 알바천국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알바천국은 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 명칭입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의 대표격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죠. 그러니까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은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이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알바천국’이라는 익숙한 한 단어로 요약한 건데요. 실제로 이날 이후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의 조어 솜씨에 대해 높은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6일에는 아주 문학적인 표현도 동원됐습니다. 황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달은 숨고, 비는 내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달은 숨고, 비는 내립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두운 밤입니다.
한미동맹은 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
북한 최선희가 어젯밤 평양에서 공식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김정은이 미북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행동 계획도 곧 발표한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도대체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언론들은 연일 한미동맹을 걱정하고 있고 국민들의 불안도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해결방법은 오직 강한 압박밖에 없다는 미국에, 이 정권은 북한 퍼주기로 맞서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달’이 숨어버렸습니다.
어둠 속에 ‘비’가 내립니다.

저도 함께 비를 맞겠습니다.

우리가 ‘빛’이 됩시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형식은 마치 한 편의 시 같기도 합니다. ‘달’은 문 대통령의 성을 영어로 옮긴 ‘Moon’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건데요. 즉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깨겠다고 나섰는데 문 대통령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고 따지는 셈이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막말’이 횡행하는 우리 정치권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기는 합니다.

황 대표의 이 같은 스타일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의견이 둘로 나뉘더군요. 18일 기자와 만난 한국당 관계자는 “원래 보수는 품격 있게 하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당이 막말로 도배가 돼버렸다”면서 “점잖고 품격 있게 말씀하시는 황 대표가 우리 당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야당은 정부여당에 맞서서 투쟁을 해야 하는 위치인데, 황 대표는 너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 같다”며 “관료 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정치인으로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평가가 옳은지는 시간만이 말해주겠지만, 적어도 황 대표의 조어 정치가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