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스크롤 이동 상태바
마약
  • 유재호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9.28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기가 자욱했다. 기침을 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밴 안은 앞에 있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연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제 너 차례야."
"마리화나 Weed는 내 몸에 안 받아."
"그냥 한번 해봐."
"나중에 엑스터시Ecstasy나 할래."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실 나는 마약Drugs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 앞에서 마약을 한 번도 못해봤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끔찍한 일도 없었기에, 마약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로 둔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밴 한가운데에는 인도에서나 볼법한 '벙'이라 불리는 커다란 유리통이 있었다. 유리통의 아래쪽에는 마리화나를 놓고 불을 붙일 수 있는 수도관 같은 것이 돌출되어있었고, 그 곳에서 마리화나가 불에 타서 생성된 회색 연기는 유리통에 들어있는 물을 타고 유리통위에서 연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한 모금씩 빨 때마다 유리통안의 물은 부글부글 끓는 듯 요동치고 있었다. 어느새 밴 안에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마리화나에 취해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기네들끼리 떠들며 마구 웃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누워서 그 상황을 즐기며 쉬고Chill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미리 시켜 놓은 피자를 게눈 감추듯이 먹어놓고는 여전히 배고프다고 외쳐대는 아이도 있었다.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Villanova Prep. School을 나와서 다른 고등학교를 찾는 일은 교장 선생님 말처럼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거의 불가능과도 다름없었다. LA에서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에 있는 이모네 집에서 자숙의 기간을 갖는 동안 유학원에서 인근 지역 토렌스Torrence에 있는 한 학교를 겨우겨우 찾아냈다.
 
Coast Christian High School이란 이 학교는 보통학교와는 달리 문제집을 풀어서 졸업하는 학교였기에, 반년어치 문제집을 다 풀면 졸업시켜주겠다는 조건하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달리 이 학교에는 기숙사가 없었다.
 
그리하여 입학과 동시에 미국 사람 집으로 무작정 하숙을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사람이 북적대는 기숙사 생활에 익숙해 있던 터라, 처음으로 사람들과 동떨어져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이나 외롭게 느껴졌다.
 
미국 사회에 느꼈던 염증이랑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모든 것을 혼자 해결 해야만 했다. 음식점에도 혼자 걸어가 밥을 먹고 학교에도 30분에 걸쳐 자전거를 타고 가야만 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사람들과 있는 것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나에게 혼자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주어졌다는 것이다.
 
혼자서 집에 있는 시간은 고문과도 다름없었다. 집에 있는 검은 고양이와 사냥개가 내 유일한 대화 상대였으며 컴퓨터 농구 게임인 <NBA Live>를 몇 시간이고 반복하면서 했다. 미국 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입씨름하던 시간들이 그립기만 했다. 학교규칙이 엄격하다고 불평Complain하던 것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사치에 불과했다.

이런 나에게는 친구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필요했다. 학교에서는 학급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 외로운 생활이 몇 주정도 지속된 뒤, 나에게 구세주와 같은 사람이 찾아왔다.

"한국 사람이에요?"
"네."
"아, 저는 준석이라고 해요. 여기는 처음이신가요?"
"예, 전에 있던 학교에서 퇴학당해서 왔어요."
"그래요? 저랑 똑같네요. 저도 바로 옆 공립학교에서 잘려서 일로 왔어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공감대를 확인했다. 이후, 그를 통해서 다수의 친구들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이 미국 이민자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교표들이었다. 나 같은 유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그동안 친구를 갈망하고 있던 터라, 이 친구들로 인해 나의 외로움이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타지에서의 한국 친구들은 나에게 든든한 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석이가 나에게 물었다.
"너 혹시 'E'(Ecstasy) 해봤냐?"
"'E'? 당연하지. 몇 번 해봤는데 완전 최고였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웬만큼 노는 학생이면 다 해본다는 마약을 안 해봤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그들보다 뒤처지기가 싫었다.

"그래? 그럼 다음에 우리 레이브 파티Rave Party 가는데 같이 가자."
"그래. 나야 좋지."
 

Rave Party
할리우드Hollywood근처의 큰 창고같이 생긴 건물이 보였다. 그 근방은 아주 조용한 동네였지만 건물주변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저기다."
태준이가 외쳤다.
"드디어 다 왔다. 하하, 벌써 흥분되는데?"

차를 주차시키고 친구들과 함께 인파속으로 걸어갔다. 인파속으로 걸어가면서 사람들이 뚜렷하게 내 시야로 들어왔다. 우리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으며 심지어는 중학생같이 보이는 학생들도 간간히 보였다. 모두들 환락의 세계의 입구에서 한껏 고무된 표정들이었다.

한참 들어가려고 줄을 서고 있는데 태준이가 말했다.
"'E'사갖고 오게 20불만 줘봐. 하나에 20불이야."
"오케이."

그한테 20불을 주고 다른 친구들과 입구에서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환락의 세상으로 가는 문을 통과했다. 건물 안은 Black Light(흰색 옷을 야광으로 보이게 하는 불빛)로 가득 차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의 눈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관경에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이 생겼다. 스테이지에는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비슷한 춤을 추고 있었다. 다리와 팔을 번갈아 앞뒤로 움직이며 매 스텝마다 하늘로 힘껏 날아오르듯 점프하는 춤을 추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야광 봉을 이용해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여기저기서 쏘는 레이저 빔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그런 야광 봉을 무아지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이미 풀려있었으며 어떤 아이들은 아예 누워서 야광 봉으로 자신을 흥분시켜주는 사람의 손길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었다. 구석에서는 남녀가 뒤엉켜서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들을 목격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이런 영상하나하나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얘들아, 일로 와봐."
약을 사러갔던 태준이가 우리를 불렀다. 모두들 그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서 태준이는 우리들에게 마약을 한 알씩 나누어주었다.
"구하느라고 힘들었어. 좋은 놈이야. White Buddha라는 놈인데 뿅 갈 거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마약을 입에 넣고 단숨에 삼켰다. 나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약이 내 입까지 도착하기 전까지 무수한 생각이 스쳤다. 겁이 많은 성격 탓에 몸에 안 좋다는 마약을 하는 것이 무서웠지만 아이들과 동질감을 이루고 싶었고 또 어떤 기분일까 호기심도 발동했다. 어느새 마약은 내 입 바로 앞까지 도착해있었다.
 
To be continued...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