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재벌의 ‘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유전무죄?…재벌의 ‘힘’
  • 김재한 대기자
  • 승인 2009.01.22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업 범죄, 솜 방망이 처벌, 법 경시 풍토 낳아

정몽구 회장의 사재 출연에 의한 사회 환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일차적으로 정 회장의 자발적인 사회 환원 의사가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정 회장의 사재출연을 바탕으로 한 ‘사회 환원’을 가로 막은 세력은 없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 회장의 사재출연을 통한 사회 환원은 대국민적인 약속이자, 법의 처벌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 어떤 경우라도 8400억 원의 사회 환원은 이루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2008년 6월 서울고법 재판부는 정 회장의 횡령과 비자금 조성, 현대우주항공과 현대강관의 유상증자를 통한 업무상 배임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판결을 내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했다.

일각에서는 재벌총수 일가의 범죄행위는 대부분 그룹의 지배권을 유지 승계하기 위한 것인데 회사의 피해를 변제하고 사회공헌을 약속했다고 해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법원이 다시 한번 사법정의와 지배구조 개선의 역사적 책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 통신 등 세계의 외신들은 ‘10억 달러짜리 자유’ ‘사법부, 부패 척결 의지 의문’이라는 기사를 전 세계에 송고하면서 한국 사법부를 조롱하기도 했다.

특히 파이낸셜타임스는 그 해 9월 12일자 신문에서 “한국 법원은 재벌들이 안 보이는 데서 어떤 일을 하건 경영을 계속하게 도와주는 것이 국익에 맞는다고 믿는 것 같다”고 한국 법조계의 편향성을 꼬집었다.

무엇보다 재판부의 정몽구 회장의 집행유예 솜 방망이 처벌로, 경제인 법 경시 풍조를 야기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재판결과가 ‘사법부의 독립’이 전제되어 있지만, 국민의 법 감정상 쉽게 용인할 수 없는 재판결과였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2007년 2월 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횡령과 배임의 경우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법관의 재량으로 감경할 수 있는 최대한도인 2년 6개월 중 80%나 되는 2년을 감경해 주었다. 이는 횡령한 금액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커다란 특혜를 베푼 것이다.

게다가 1심에서 선고된 형량이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형임을 감안할 때, 비록 1심에서는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일각에서 우려한 것처럼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횡령액으로 계열사 지원, 정당성 없어
사회 환원 약속, 면죄부 수단되지 않아

둘째, 배임 횡령액수에 대한 과태료 징수, 벌금 등 개인적 경제적 부담 등 처벌사항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당시 재판부가 내린 사회봉사명령과 집행유예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먼저 “횡령액이 70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고 범행이 장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히며,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자금 사정이 좋은 현대차그룹 등의 자금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현대 우주항공 등에 불리한 조건으로 제공하게 하는 등 배임으로 인한 피해액이 1,500억 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룹 회장으로서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경험하라”며 “사회봉사내용으로 복지시설 단체봉사활동과 자연환경보호 활동”을 지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횡령한 금액을 대부분은 홍보비, 성과급 등 회사업무에 사용했고, 일부는 엑스포 유치에 사용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장은 이어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IMF로 인한 국가적 경제 위기상황에서 도산위기에 있는 계열사에 지원을 하는 등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의 그 죄질 및 범정이 중하고, 그 행위태양도 부외자금 조성, 계열사 부당 지원 등으로 다양하다는 점에서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대주주에 의한 주식회사의 사유화 시도를 차단하고, 다른 계열사들의 부실에 대한 책임을 나머지 계열사가 떠안게 되는 소위 재벌경영체제의 폐해 가능성을 해소하도록 일벌백계로 다스릴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고 재판부는 말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몽구 피고인이 피해액 회복을 약속하고 있고, 1938년생인 만 69세 고령인 점과 더불어 8400억의 사재를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점도 참작해 집행 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위 사회공헌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는, 형법 제62조의 2가 정하는 사회봉사명령이 아울러 선고됨으로써 그 약속 이행이 사실상 담보되는 점을 종합하여 이번에 한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 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정 회장을 특별사면해 줌으로써 ‘8400억의 사재, 사회 환원’의 사회공헌약속이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집행유예를 취소할 수 있다는 재판부의 판결문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항소심 판결 당시 "판결결과와 무관하게 8400억 원의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예정대로 이행하겠다. 사회공헌 이행은 판결 취지와 상관없이 대국민 약속이자, 그 때(파기환송 전)나 지금이나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던 정 회장의 생생한 목소리만 기억될 뿐이다.

형법 제64조(집행유예의 취소) 2항은 제62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 또는 수강을 명한 집행유예를 받은 자가 준수사항이나 명령을 위반하고 그 정도가 무거운 때에는 집행유예의 선고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법적 구속력 상실해
8400억 원 약속 이행 어렵게 해, 그 책임은
 

 

지난 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정 회장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워졌다. 재판결과 정 회장의 사회공헌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집행유예 취소, 실행처벌 등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건이었으나, 사면으로 인해 지금은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이 대통령의 정몽구 회장의 특별사면은 결국 비자금조성으로 인한 배임·횡령에 대해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특별사면은 결국 사회공헌기금(?) 약속을 깨고, 정 회장의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는 재판 결과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나 법적인 책임을 강요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시의 대통령 사면이 법적인 절차상 문제가 없는 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면 당시 그 이유를 설명한 법무부 검찰국장의 일문일답해서 정 회장은 사면의 법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법무부 검찰국장 일문일답이다.

-정몽구 회장 사회봉사 명령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포함 됐나
 "대기업 총수 사면에 대해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어려운 경제여건을 타개하기 위해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살리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횡령은 치명적 기업범죄 혐의다. 다시 이들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것은 경영에 더 해로운 효과가 나지 않겠느냐
"일반적 횡령과 같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썼다면 당연히 사면은 안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면된 인사의 대부분은 계열사 활동을 위해 쓴 것이었다.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지만 개인 용도가 아닌 점을 고려했다"

-정몽구 회장은 사회봉사명령 끝나지 않았다. 이 점은 고려 안 됐나
"정 회장은 300시간 중 200시간을 집행했다. 집행률을 따졌을 때 2/3 이상 되면 사면 대상에 포함된다."
우리는 법무부 담당 국장의 답변에서 재벌총수인 정몽구 회장이 사면에 있어서 대단한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횡령은 치명적 기업범죄 혐의다. 다시 이들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것은 경영에 더 해로운 효과가 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일반적 횡령과 같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썼다면 당연히 사면은 안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면된 인사의 대부분은 계열사 활동을 위해 쓴 것이었다.’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횡령을 하되 개인의 사리사욕에 사용하면 안 되고, 계열사 활동에는 사용하면 ‘괜찮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역으로 계열사 활동을 위해서는 횡령도 인정될 수 있다는 다분히 위험한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횡령’은 ‘횡령’ 그 자체로 범법행위요 문제다.

그런데 그 횡령한 돈, 훔친 돈을 어디에 사용했느냐에 따라 그 처벌이 달라질 수 있는 가 하는 점이다. 도둑은 도둑이다. 좀도둑이다. 의적이다. 홍길동이냐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무의미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몽구 회장은 사회봉사명령이 끝나지 않았는데 왜 사면이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회장은 300시간 중 200시간을 집행했다. 집행률을 따졌을 때 2/3 이상이 되면 사면 대상에 포함된다"고 답변했다. 과연 정 회장의 집행률이 2/3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2/3이 되지 않는다면 사면은 이미 법적으로 부당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집행률은 정 회장의 판결 내용 전체를 기준으로 집행률을 계산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봉사명령 시간만이 아니라 ‘사회공헌기금 8400억 원’ 부분 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 사회공헌기금은 집행률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는 가,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명이 될 때 사면의 타당성이 생긴다.

우리 국민들은 집행률을, 법 감정상, 아마도 사회봉사명령 300시간 보다 정 회장의 사회공헌약속, 8400억 원 사회 헌납에 더 큰 의미를 둘 것이다. 무엇보다 8400억 원의 공익재단 출연이 법적 해석의 미비로 날아 가버린 것이다.(정 회장이 사회공헌 약속을 지금처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8400억 공익재단은 사라지고 만다)

현대 민주정치에서도 사면권은 권력분립 원칙의 예외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허용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적어도 사면 대상자의 죄질과 형량을 감안하는 법적 형평성과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하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서울고법에서 내린 재판결과 또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집행유예 선고 당시 사회공헌재단 설립과 사회봉사활동 이행 등 선행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 사면은 3권 분립의 취지에 반하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월권행위로 보여지는 것도 그 하나이다.

사회봉사명령,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 빈축 싸
사회봉사는 진정성과 순수성이 기본이 돼야

 

 

지난 정기국회에서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논란이 되었다. 한나라당 소속 주광덕 의원은 정몽구 회장이 사면을 사전 인지해 법적인 사회봉사명령을 채우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주 의원은 정 회장이 8월 3일 이후 사회봉사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8.15 사면 대상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않았느냐 질타했다. 그는 국감에서 “정 회장이 지난 6월부터 일정하게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다. 8월 2일을 마지막으로 갑자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이는 "정 회장이 사면될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알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일반적으로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사회봉사명령 부분에 대해 특별준수사항으로 일정기간 안에 사회봉사활동을 마치라는 전제가 없는 사회봉사는 원칙적으로 집행유예 기간인 5년 내에 마무리하면 된다. 그러나 정 회장의 경우 사회봉사는 ‘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이행할 것’이라는 것이 명시사항이다.

사회봉사명령은 재판부의 판결문에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대국민적인 자숙의 분위기를 보여야 함은 기본이며, 정 회장이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행위라는 점에서 본다면 대국민적인 약속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봉사’라는 그 의미 자체처럼, 진정성과 순수성이 나타나야 한다. 첫 사회봉사활동인 충북 음성의 꽃동네 ‘천사의 집’의 정 회장의 움직임이 텔레비전에 노출되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젖병을 물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 회장의 사회봉사활동은 언론 노출로 인해 오히려 그 본래의 목적과 달리 P.R(홍보)수단으로 이용된 점이 적지 않아 국민들의 눈총을 쌌다. 정 회장의 사회봉사활동은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서 인간미 넘치는 봉사활동을 할 때 그 의미는 더 살아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외면해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형법 제62조의2 제1항은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하거나 사회봉사 또는 수강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8400억 원 사회 환원이냐, 반환이냐? 성격 규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정몽구 회장이 약속한 자금은 그 자금의 성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법적으로 정당한 자금이면 사회 환원의 성격이 강하지만, 불법·비리 자금이라면 환수 성격이 강해 반환의 의미가 더 강해진다. 정 회장이 사회 환원하겠다는 자금은 자금의 출처와 성격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