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집값 떨어질 때 ‘서울 나홀로 폭등’…“가격 하방압력 피하기 어려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영국 런던,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 등 세계 주요 도시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서울만 집값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경기가 침체 중인 만큼, 서울 집값도 하락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9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공개한 건설동향브리핑에 따르면 런던, 뉴욕, 시드니 등 세계 주요 도시 주택가격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제히 하락·조정기에 들어갔다가 2013년부터 반등하며 상승기에 돌입했으나, 최근 2년 간 다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런던 주택가격지수(런던 토지등기국 집계)는 2017년 5월 전고점을 기록한 뒤 2년 만인 2019년 5월까지 전고점 대비 32.3% 떨어졌으며, 뉴욕 주택지수(연방준비은행 집계)는 올해 2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고점을 찍은 후 4개월 동안 약 1.2% 하락했다.
캐나다 밴쿠버(부동산정보업체 테라넷·캐나다국립은행 집계), 호주 시드니(호주 통계국 집계)에서도 전고점에 비해 각각 5.5%(지난 6월 기준), 14.5%(지난 1분기 기준) 주택가격지수가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홍콩 역시 지난 3월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반면, 서울의 경우 지난 2013년 동반상승기에 들어가면서 주택가격지수가 상승세를 탔고, 세계 주요 도시들이 하락기에 접어든 2017년 5월부터 오히려 폭등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9·13 부동산대책이 있었던 지난해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나홀로 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세계 주요 도시들의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이른바 '거품'이 빠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13년 동반상승기 당시 주택가격이 각국 국민들의 소득보다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주택가격지수 동반상승기 때 영국 런던의 집값 상승률은 중위 소득·임대료 상승률보다 59%p 높았다. 같은 기간 호주 밴쿠버, 시드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에서도 집값 상승률이 중위 소득·임대료 상승률보다 50%p 이상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각국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펼친 부동산 시장 규제 정책, 대출 규제 등과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경제 위기감 심화 등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나이트 프랭크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시장 규제, 금융 비용 증가, 무역 전쟁 등으로 내년(2019년)에는 고급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더욱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다.
이처럼 주택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보니 각국 정부는 올해 들어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집값 하락에 따른 경기 하강을 사전에 방어하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인상했으나,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미중 무역분쟁 등이 겹치면서 경기 후퇴 우려가 심화되자 지난 8월 금리를 인하했다. 또한 호주 금융건전성감독청은 주택담보대출 한도 심사를 완화했으며, 캐나다는 생애최초주택 구입자에 대한 지원책을 시행 중이다. 영국도 인지세 감면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나홀로 집값이 폭등한 우리나라도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며 지난달 말 동결(연 1.5%)을 결정했다.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 역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예고됐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등 추가 규제 시행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어 정책에도 대세는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나이트 프랭크는 올해 2분기 보고서에서 세계 46개 주요 도시 고급 주택가격지수 상승률이 연간 1.4%(지난 6월 기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 1분기(1.3%) 대비 소폭 올랐지만 최근 4년 간 평균 상승률 3.8%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특히 최근 적극적으로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꺼낸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 위치한 도시들이 하락세를 견인한 부분이 눈에 띈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미국 뉴욕의 고급 주택가격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7% 하락했으며, 영국 런던과 캐나다 밴쿠버도 각각 4.9%, 13.6%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의 고급 주택가격지수도 3.4% 하락했다.
금리 인하 등 각종 방어책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Recession), 이른바 'R의 공포' 영향으로 집값 약세 현상이 짙어졌다는 게 나이트 프랭크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겪을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성환 부연구위원은 "최근 물가상승률이 하락하는 등 경제 지표 부진을 감안했을 때 부동산 시장도 하방 압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 부진에 따른 하방 요인이 커 부양책이 반등 계기로 작용할지 미지수"라며 "노딜 브렉시트, 무역분쟁, 홍콩 시위 등 최근 국제 정세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 국내 시장과의 연관성을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