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窓] 지하철 역 스테디셀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두바이 국왕 셰이크 모하메드는 생각이 막힐 때마다 시를 읽고 쓴다. 시를 읽고 쓰는 지도자는 매력적이다. 예술은 인간의 창의적이고 지적인 활동의 결과물이므로 우리는 예술활동을 하는 지도자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좋은 글귀나 시(詩)를 발견하면 하루가 즐겁다. 책에서건 길거리에서건 감동을 자아내는 문구를 보면 메모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는 한다. 메모는 글의 씨앗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가장 단순한 방식이다.
글을 잘 쓰는 일은 ‘메모의 달인’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좋은 문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자다. 나만의 문장은 지혜의 샘을 만드는 원천이 된다. 독일의 작가 괴테는 죽기 전까지 원고지 여백이나 수첩, 편지봉투, 종이쪽지에 끊임없이 짧고 의미심장한 메모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지하철 역이 문향(文香)으로 달라졌다. 서울지하철 역 스크린도어 곳곳에서 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 시인이나 시민공모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시 감상의 즐거움에 빠져들기도 한다.
마음 깊은 곳을 지탱해줄 시 한 수, 시각이나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줄 글 한 줄을 발견할 때면 감동을 받고 희열을 느낀다. 오늘은 출근길에 5호선 군자역 스크린도어의 시 ‘스테디셀러’를 만난다.
당신에게 오랫동안 읽히고 싶다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어도
페이지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고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 읽고 싶은
가슴 뛰는 장면이 지워지지 않아
같은 꿈을 반복하는
가슴에 박힌 한 줄이 있어
늘 흥얼거리게 되는
색이 바래고 종이 냄새가 나도
당신에게 스테디셀러가 되고 싶다
-이장호作 스테디셀러(2017 시민공모작)
‘당신에게 스테디셀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새기면 새길수록 의미가 웅숭깊게 다가온다. 단순히 책에 한정해서 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로 읽힌다. 꾸준히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세상 사는 게 어렵더라도 현실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현실을 외면하고 눈을 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깐은 잊을 수 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눈을 뜨고 있어야 보는 눈이 생기고, 상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책과 벗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의욕이 생기지 않고 고통스러울 때, 찾아 읽을 수 있는 글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책장에 놓인 책의 제목을 훑고 그 내용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곤 한다. 목적 없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자신감은 나만의 ‘스테디셀러’를 꿈꾸게 한다. 책과 더불어 오래도록 사랑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