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인적 쇄신’ 정국, 어디로 가나

대표성 확대 시대적 요구 핵심은 '젊은 피' 수혈 인물 교체 넘어 관행 혁신도 관건 민주당 쇄신, 책임지는 자세 전무 한국당도 플래카드만 ‘쇄신’ ‘영입 논란’, 환골탈태 의지 안보여 내각 개편 통한 국정 쇄신도 절박 정부 무능·무책 대표하는 장관들 청와대 조직 인적쇄신도 시급

2019-11-09     이병도 주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국가적으로 '인적 쇄신'이 정국의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가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겨냥, 전략과 공천을 주도할 총선기획단 가동에 일제히 들어가면서, 쇄신경쟁을 촉발하기 시작했다. 이번 총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인적쇄신’이다.

정부 조직의 인적 쇄신도 시급하다. 문재인 정권이 손대는 나랏일마다 뒤틀리고 꼬이고 있는데, 담당 부처 장관들은 해법을 제시 못 하고 뒤늦게 남의 일인 양 논평만 한다. 여당에서 왔다는 이른바 실세 장관들일수록 그렇다.

한·일 관계 등이 최악에 빠지고, 비핵화는커녕 남한을 향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것은 안보·외교팀의 전략 실패 및 무능과 연관이 없지 않다. 경제가 1%대 성장률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망가졌는데도 경제부총리와 장관들의 존재감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국 사태는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쇄신의 당위성을 입증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조국 퇴진 이후 지금껏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겉치레 사과만 했을 뿐, 민심 눈높이에 걸맞은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조직과 진용을 일신하고 ‘춘풍추상(春風秋霜)’의 기강을 확립해야만 하게 됐다.

조국 사태 장기화의 근본 책임이 청와대에 있고, 내달부터 21대 총선 국면이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임기 반환점을 맞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내각 전면 개편을 통해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 조국 사태를 비롯해 안보·외교 실패, 경제 위기 가중 등 집권 전반기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또한 집권 후반기 국정 동력 확보 차원에서도 청와대와 내각 쇄신은 절실한 과제다.

국가적으로

정치 대변혁 요구 민심(民心)

이념이나 진영 대결로 정치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무능과 무사안일에 지친 시민들이 원하는 것도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통한 정치판과 정부조직의 혁신이다. 여야는 인적 쇄신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정치권의 과감한 변화와 개혁을 위해선 세대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새판을 짜기 위한 인적쇄신이 필요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국가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도 정치권의 인적 쇄신을 통한 세대교체는 더욱 요구된다. 산업구조 재편과 사회 시스템의 획기적 변화를 몰고 올 4차 산업혁명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인재 양성과 활용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경쟁력 있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동시에 글로벌 인재들이 국가 지도층으로 모여들게 할지, 정치권과 정부가 '인적 쇄신'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위기가 오는 걸 위기로 알고 대처하면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된다는 건 필연이다. 여야 지도부가 지금 전개되는 정치 현실에 닥쳐 떠올려야 할 세상사의 이치다. 

국회가 민생을 저버리는 이유는 비민주적인 정당정치와 낡은 패거리 정치 탓이 크다. 그래서 구시대적 이념과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시민 눈높이에 맞는 참신한 대안세력을 발굴하는 ‘인적 쇄신’은 불가피한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총선체제로 전환했지만, 정작 필요한 당 쇄신과 정책 비전 개발은 뒷전으로 미룬 채 공천에만 혈안이 돼 있다. 

내년 총선은 문재인 정권의 중간 평가라는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결과에 따라 문 정권에 대한 심판은 고사하고 '10년 집권'의 길까지 터줄 수도 있다. 이를 저지할 책무가 자유한국당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당으로는 어렵다. 전면적인 개혁, 특히 중진 의원 등 기득권자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지금 여야 정치권에 극도로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정치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국민이 정치 현상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는 망가지고 나라 살림은 갈수록 피폐해지는데도 당리당략에만 집착해서는 결국 공멸에 이를 뿐이다. 유권자들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가 정작 스스로 문제가 되어버린' 정치의 대변혁을 바라고 있다. 

‘공천혁신’ 정치 사활 걸어야

성별·세대별 대표성을 확대하는 건 시대적 요구다. 낡은 이념과 진영싸움에 매몰된 구시대 인물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그 자리를 젊고 유능한 인재들로 채우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여야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서로 위기감에 휩싸인 분위기다. 당내 분위기 쇄신경쟁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최근 총선기획단을 발족하고 새 인물 영입 등 조직·인적 작업에 들어갔다. 

인재영입에 힘쓰겠다고 목청 높이는 정당들은 많아도 정작 "우리는 이러저러한 배경에서 영입 기준을 이렇게 세웠다"라고 설명하는 정당들은 보기 힘드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공천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제15대 총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보수층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중당 출신 이재오·김문수 등 재야 운동권 인사들을 영입해 신한국당 이미지를 쇄신하며 선전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16대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에 386운동권인 우상호·이인영·임종석 등 ‘젊은 피’를 수혈해 새바람을 일으켰었다.

총선까지는 아직 5개월 이상 남아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각 정당들은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바라는 거센 국민적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천 물갈이와 인재 영입은 내년 총선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여야가 역대 총선에서 30% 안팎의 물갈이에 나선 것도 젊고 새로운 인물을 바라는 국민들 요구가 그만큼 거셌기 때문이다. 

‘시민대표 노쇠화’...관행 타파가 실질적 쇄신 

우리 정치권은 아직까지 '젊은 피 수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제의회연맹(IPU) 조사 대상국 150개국 중 한국은 45세 미만 의원의 비율이 6.3%로 거의 꼴찌 수준(143위)이다. 

20·30대 국회의원의 비율 또한 스웨덴 34%, 독일 18%, 일본 8%, 미국 6.7%인 데 비해 우리는 1%에 불과해 세대별 불균형이 극심하다. 50대 이상이 82%로 역대 최고령 국회다. ‘시민 대표의 노쇠화’가 역력하다.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절실하다.

세대교체가 중요하지만 이 역시 다는 아니다. 영입된 정치신인들이 제도권 정치판에서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다. 

16대 이후 초선 의원 평균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결코 적지않은 숫자다. 매번 많은 새 인물이 뱃지를 달지만 선수(選數)와 당론 중심의 정치구조 때문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물갈이가 상대 계파 쳐내기나 내사람 심기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관행을 타파하고 국회 운영과 정치판을 바꿀 수 있어야 실질적인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에서 젊은 세대 비중이 늘어야 일자리, 주거, 복지 등 주요 현안과 미래 담론에 대한 2030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기성세대와의 협력도 도모할 수 있다. 젊은 피 수혈은 말로만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국회 진입장벽부터 낮춰야 한다. 청년들에게 가점제를 부여해 비례대표 및 지역구 공천 할당을 30% 이상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조국 정국에서 지지율이 오른 자유한국당이라고 해서 그에 안주하여 변화와 쇄신을 외면한다면 앞날이 없다. 현재의 한국당 모습으로는 정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야당이 있을 때 정부여당도 오만에 빠지지 않고 국정 운영을 잘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당 지도부의 최근 행보를 보면 변화와 쇄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에 앞장선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 부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논란만 일으킨 것도 유감스럽긴 마찬가지다. 그 의원들은 국회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낙마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인사청문위원들에게 표창장을 줘 비판받은 것이나,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가 지지율이 완연한 반등 기미를 보이자 번의하는 의원들 소식이 들리는 것 역시 한국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인적 쇄신 실패면 지지층 이탈 

내년 총선은 여야 모두 정치적 사활이 걸린 격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를 끌어갈 동력이 필요하다. 한국당은 지난 세 차례의 선거 패배에 이어 내년 총선마저 실패하면 더 이상 설 땅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총선은 과거를 짚어 표를 던진다는 회고투표 성격이 강하다. 유권자들이 지난 시기를 떠올리며 정권 심판으로 기울지, 아니면 야당 심판으로 쏠릴지 그건 여야의 혁신 노력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19.8%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10명 중 2명이 무당층이란 얘기다. 이 무당층의 향배가 내년 총선의 강력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각 정당들이 인적쇄신을 게을리할 경우 무당층은 물론 지지층의 이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여야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는 지역주의 탓이 크다. 여야가 텃밭인 호남과 영남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에 안주하다 보니 쇄신과 외연 확장은 외면한 채 내부 공천 투쟁에만 골몰하는 것이다. 

일단은, 주요 정당들이 내년 총선을 겨냥, 인적 쇄신에 시동을 거는 움직임이긴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선 중진은 물론 이른바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에까지 퇴진론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와함께 시스템에 의한 쇄신작업도 벌이고 있다. 의원평가를 통해 현역 의원 4분의 1 이상을 추려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말까지 진행되는 현역 국회의원 평가에서 ‘하위 20%’를 받은 명단을 공개하고 ‘하위 20%’ 계산 시 불출마자는 뺀다는 방침이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표창원 의원을 포함해 15명 정도가 불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결과적으로 현역 물갈이 폭이 40명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국 정국’의 국정 난맥과 민심 갈등은 무엇보다 여당의 정치력 부재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검찰개혁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일지라도 민심을 먼저 얻지 못하고서는 지속적인 개혁의 동력은 기대난망이다. 조국 사태로 정국이 블랙홀이 돼 갈 때, 민심의 경고를 예민하게 읽고 청와대에 직언하는 것이 여당 지도부의 역활이어야 마땅했다.

민주당은 국정 혼선을 초래한 책임을 통감한다면, 조국 정국에서 소외됐던 20·30대와 노동계 경제계 등의 다양한 민심을 경청할 시스템을 당내에 확보하고, 국민 갈등과 정치 불신을 수습하는 데 진력하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한국당 미래 불투명

자유한국당도 인적쇄신 의지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감한 혁신은 고사하고 잇단 돌출 행동으로 민심을 거스르고 있다는 비판만 늘고 있다. 경제의 ‘민부론’, 외교안보의 ‘민평론’ 등 정책대안이라고 내놓은 것도 실상은 과거 정책 노선을 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대로라면 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현재 의석수를 유지할지조차도 불투명하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이런 위기를 타개할 가장 현실적이고 호소력 있는 방법이 바로 인적 쇄신이다.

한국당은 지난 3년여간 20대 총선 참패, 대통령 탄핵, 지방선거 전멸 등 사실상 당 해체 수준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근본적인 성찰과 체질 개선 노력은 없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체질이 굳어진 탓이다. 한국갤럽 조사를 포함해 작년부터 다섯 차례 실시한 정당 호감도 조사 결과 한국당은 계속 ‘비호감’ 1위 정당이다. 

내년 총선을 위한 자유한국당의 이번 인재 영입도 처음부터 삐걱대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 논란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유민봉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당 쇄신을 촉구했고, 김태흠 의원이 ‘중진 용퇴’를 요구한 데서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다. 

한국당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지지율을 회복한 건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현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이다. 한국당은 조국 사태의 호재에도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현상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당의 1차 영입은 결국 ‘반(反) 문재인’ 코드여서 당의 외연 확장 및 인적 쇄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당내부적으로 친박과 비박간 계파갈등이 잠재된 상태여서 중진 퇴진과 물갈이 분위기도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다.

민심 역행 비판론 

지난달 말 자유한국당의 1차 영입 인사 발표를 두고 논란이 지속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수권정당이나 대안정당의 희망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그냥 현 정권에 반대하는 정당 이미지에 머물게 되는 건 아닌지 자문할 때다. 

특히 공관병 상대 갑질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날 명단에서 제외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직접 나서 논란을 일으킨 건 유감스럽다. 예비역 4성 장군이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초법적 인권탄압 사례인 삼청교육대를 언급한 건 몹시 부적절했다.

패스트트랙 수사 대상 의원에게 내년 총선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는 한국당 지도부의 입장 천명도 국민을 안중에 두고 있다면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이들은 엄연한 현행법을 어긴 수사 대상자들이다. 이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포상 행위를 하는 것은 법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다. 

이들을 민의를 대변할 국회의원 후보자로 우선 추천하겠다는 건 유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행위다. 패스트트랙 수사 대상자 중에는 한국당의 물갈이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포함돼야 할 인물이 수두룩하다. 현역의원 가산점을 남발하면 신인 정치인들의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 민심을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6일 황 대표의 전격적인 보수통합 제안도 최근 당 안팎에서 쏟아진 황교안 리더십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취임 8개월이 넘도록 말로만 혁신과 통합을 외쳤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한국당은 전체 110명 의원 중 50세 이하가 5명에 불과할 만큼 노쇠했다. 웰빙당, 법조(法曹)당 이미지도 강하다. 젊고 깨끗한 인재 수혈을 통한 대규모 인적 쇄신만이 한국당이 사는 길이다.

국민 감동 주어야 보수통합 성공 

내년 총선은 한국당에 엄중한 의미를 지닌다. 보수 재건의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정부·여당의 헛발질에 따른 반사 이익만 챙기려 한다면 기회는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국당이 ‘영남 자민련’으로 쪼그라드느냐, 아니면 수권(受權)을 준비할 전국정당으로 우뚝 서느냐는 개혁공천과 보수 통합의 성패에 달려 있다. 보수의 품격을 훼손해온 낡은 인물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참신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인적 쇄신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황 대표의 보수통합론이 성공하려면 제1 야당의 기득권부터 내려놔야 한다. 한국당이 보수통합을 주도하겠다는 욕심부터 버리는 게 급선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과 혁신을 추동할 수 있는 보수통합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김태흠 의원이 지적했듯 서울 강남과 영남권 3선 이상 의원들은 용퇴하고 판검사나 고위 관료 출신 등 기득권을 대변하는 직역의 공천도 대폭 줄여야 한다. 인적 쇄신을 통한 개혁 공천과 보수 가치의 재정립, 제도와 정책 혁신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게 보수통합 성공의 관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두 거대 정당은 정의당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의당은 논란이 일부 따르긴 하지만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현 한국당) 의원 영입으로 이주민 권리 등 차별받는 소수자 권리를 대변하겠다는 지향을 분명히 했다. 또 36년간의 복무를 마친 뒤 7년간 평화·통일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했다는 이병록 예비역 해군 준장(제독)을 영입하여 당의 정체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정당들의 구태를 바로잡으려면 유권자들이 맹목적인 지지에서 벗어나 냉철한 심판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 탄력근로 보완 법안·데이터3법 등 주요 민생법안 처리에 앞장섰는지, 온갖 특혜를 누려온 기득권 세력을 물갈이했는지가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집권당 소통력 부재와 무책임

여권의 변화와 쇄신도 시급한 현안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 강행에서 사퇴까지 근 두 달을 여론이 갈라져 생몸살을 앓았는데도 여권 지도부에서는 누구 한 사람 책임을 입에 올리는 이조차 없었다. 집권당의 소통력 부재와 무책임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국민 심정은 오죽했을지 짐작해 봐야 한다.

조국 사태 이후 소장파의 문제 제기만 있을 뿐, 민주당 전반에서는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대적인 쇄신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떠나간 민심을 다시 끌어올 수 없다. 내년 총선의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찬 대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며 여권 전체가 흔들릴 때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이 대표를 직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인적 쇄신과 관련,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 등 다선 중진의원과 초선 의원 등 대략 15명 정도가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20%’(22명)를 배제할 경우 교체 폭이 전체 의원의 4분의 1이 넘는 40명 선까지 물갈이 폭이 커진다. 민주당발 공천개혁은 이미 시동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반(反) 개혁적 움직임도 적지 않은 것이 문제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31일 하루에만 182개 법안을 발의했다. 국정감사 종료 다음날인 지난달 22일부터 31일까지 발의한 법안이 모두 440개로, 야당 발의 법안의 7배다. 

여당 의원들이 '막판 몰아치기 발의'에 나선 것은 이미 시작된 의원 평가에 '발의 법안 실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평가 결과 하위 20%에 해당하면 내년 총선 공천심사와 경선에서 20% 감점을 받는다. 이러다 보니 법안들이 조항 몇 개만 바꾸거나, 의원들이 서로 도장을 찍어주면서 품앗이한 졸속 법안투성이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조국 사태’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 제기 등 쇄신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조기 선대위 구성이 당내 쇄신론을 희석시키려는 조치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최근 유능한 초선 의원 둘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접했다. 스타트를 끊은 이철희 의원은 한심한 정치가 부끄러운데 그런 정치를 바꿀 자신이 없다고 했고, 표창원 의원은 현 20대 국회를 최악으로 규정하며 그런 국회를 만든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더 큰 혁신 요구의 들불로 번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들이 말한 '한심한 정치와 최악의 국회'에 대해 성찰하고 혁신할 방도를 백방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내년 총선 공천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이 의원의 여러 언론인터뷰 내용은 당 지도부의 각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당이 '조국 정국'에서 대통령 뒤에 숨었다거나 노쇠한 데다 낡기까지 했고, 7선의 선거 전문가인 이해찬 리더십이 역동적이지 못하며 '내가 해봐서 안다'라는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진단이다. 

반짝 지지율에 실책 거듭

자유한국당도 양태가 심각하다. 

한국당은 지난달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인적 쇄신 카드를 꺼냈다. 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의 3선 이상 의원을 물갈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당사자들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졌다. 한 의원은 '코미디'라고까지 했다. 이후 황 대표가 "(공천 기준은)정해진 바가 없다"고 하면서 인적 쇄신 논의는 사라져버렸다. 이러니 '무사안일의 웰빙당 DNA'가 어디 가겠느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조국 사태에 따른 반짝 지지율에 취해 실책만 거듭하며 혁신과 비전 제시는 소홀히 하고 있는 형국이다. 친박, 비박 간 지루한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제 실정과 외교안보의 위기를 초래한 현 정부의 역주행을 사실상 방임한 무력감도 크다.

조국 전 법무장관 퇴진은 언론의 추적 보도와 여권의 오만에 분노한 국민들의 저항이 이뤄낸 결과다. 이런 엄중한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소속 의원들끼리 자화자찬하면서 표창장을 주고받는 장면에 많은 국민들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을 두고 오락가락한 인재 영입과 대통령 비하 논란을 빚은 '벌거벗은 임금님' 동영상, 패스트트랙 충돌 의원의 공천 가점 부여 논란, 조 전 장관 의혹 TF에 대한 표창장 수여 논란 등 민심과 동떨어진 헛발질의 연속이다. 당내 리더십 부재로 '맹물 야당'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잇단 헛발질과 당내 리더십 부재로 지지율은 조국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 39.9%, 한국당 30.4%였다. 격차가 지난주 6.3%포인트에서 9.5%포인트로 벌어졌다. 중도층에서는 민주당이 0.7%포인트 하락한 반면 한국당은 4.1%포인트나 떨어졌다. ‘민주당이 싫지만 한국당으로는 가지 못하겠다’는 게 민심이다.

한국당 인재 영입 오류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뼈를 깎는 혁신과 참신한 인재 영입을 통해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1차 영입 인사들 면면을 보면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 문재인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주를 이룬다. 당의 외연을 넓히고 세대교체를 이루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당내에서도 “인재 영입 기준이 국민이 아닌 당 지도부 눈높이에 맞춰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영입된 인사들은 한국당을 지지해 온 반문(反文) 성향이 대부분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당이 워크숍 때마다 초청하는 단골 강사이고, 김성원 전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공동대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한국당 집회에 연사로 참여했고,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은 기자 해직 등 노조 탄압에 앞장섰던 김재철 전 MBC 사장의 최측근이다.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아우르려는 노력은 엿보이나 구태와 단절하고 변화와 혁신을 선도할 참신성이나 세대교체 의지는 약해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국당이 영입하려 했던, ‘공관병 갑질 사건’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궤변 물의는 오류를 드러낸다. 자신의 갑질 의혹을 제기한 군인권센터 소장을 두고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막말한 인식 수준도 딱하거니와 이런 인사를 자유한국당의 ‘총선 인재 영입 1호’로 내세웠다는 사실이 한심하기까지 하다. 

박 전 대장의 갑질 의혹은 비록 무혐의 처분을 받았더라도 ‘공관병의 업무’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으며, 엄연히 그의 부인은 책임을 면하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을 비판한 임 소장을 군부 독재 시절 시민 폭압의 상징인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한다고 할 정도면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행태였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신군부가 탈법적으로 시민들을 붙잡아 가뒀던 비인간적 삼청교육대를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은 군 문제를 다루면 안 된다는 식의 언변도 수준 이하다. 우려가 쏟아지는데도 그를 “귀한 분”이라며 영입을 밀어붙인 황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당이 ‘반문 정서’의 반사이익만 챙기려 한다면 내년 총선의 뚜껑은 열어 보나 마나일 공산이 크다.

정무 판단 취약, 리더십 불안

여기에다, 한국당은 계속 ‘인재 영입’ 논란에 휩싸였다. 청년 대표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던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가 신보라 국회의원 비서관의 남편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백경훈 대표는 신 의원의 대학 후배로, 신 의원이 과거 대표를 맡았던 청년단체를 뒤이어 맡아 이끌어왔다고 한다. 

신보라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청년 몫으로 비례대표로 발탁됐다. 이번에 ‘청년 인재’로 영입된 백 대표 역시 내년 4월의 21대 총선에서 신 의원 뒤를 이어 비례대표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청년을 대표한다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특정 단체의 친한 선후배끼리 돌려 맡는 격이다. 

‘조국 사태’에서 청년들이 분노했던 게 바로 ‘기회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열린 게 아니고 사적 인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 이었다. 그걸 이유로 조국 장관 사퇴를 주장하고 끝까지 사법처리하라고 공세를 편 게 자유한국당이다. 그런데 스스로는 이런 식으로 ‘인재 영입’을 하고 있으니, 비판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의 당면 최대 과제는 단연 외연 확장이다. 황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투 톱으로 움직여 우경화 색채가 짙어졌고, 오른편 지지층이 공고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도의 바로 왼편 지지 확장세가 더뎌 당 지지율 제고엔 한계가 뚜렷하기에 쇄신 초점은 이에 보탬 되는 쪽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황 대표가 이끄는 한국당 리더십에 정무적 판단이 취약하고, 리더십이 불안하다는 비평이 지속되는 이유다. 

총선기획단이 출범하자마자 당 안팎에서는 새 피는 고사하고 친황(친황교안) 일색인 기획단이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 수 있느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12명 중 10명이 현역 의원인 데다 나머지도 당 조직부총장, 당 대표 상근특보 등 내부 인사들이다. 

20, 30대는 고사하고 40대 두 명을 제외하면 전부 50, 60대에, 여성은 비례대표인 전희경 의원 한 명뿐이다. 외연 확대는커녕 기득권, 고령화, 남성 편중 등 오히려 한국당이 쇄신해야 할 요소들만 모아놓은 모양새다.

기득권 포기 선결 과제 

젊고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고 당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당 의원 109명 가운데 3선 이상 중진은 3분의 1가량인 35명이나 된다. 이 중 영남권과 강남 3구의 3선 이상은 절반 정도인 16명이다. 그런데 불출마 선언은 최다선인 6선 김무성 의원 1명뿐이다.

이에따라, 당내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인적쇄신론이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지도부의 잇단 헛발질을 비판하며 중진 용퇴 등 총체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친박계 재선인 김태흠 의원이 5일 기자회견을 갖고 “영남권, 서울 강남 3구 등을 지역구로 한 3선 이상 의원들은 용퇴하든지,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공개적으로 쇄신론을 제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여의도연구원장인 김세연 의원과 정치특위 위원장인 신상진 의원도 지도부 비판에 가세했다.

전략도 원칙도 없는 지도부의 당 운영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소속 의원이 공개리에 중진 용퇴론과 지도부 험지 출마론을 주장한 뜻은 결코 작지 않다. 20대 총선과 19대 대선, 그리고 지난해 지방선거까지 모두 패하고도 지금껏 한번도 이런 움직임이나 목소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와 관련, 초선 비례대표 유민봉 의원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는가 하면, 당내 초선 의원들이 모임을 갖고 쇄신 방안을 공개 논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중진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으로 비쳐질 뿐, 일단 물꼬가 터진 쇄신론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세 장관들 실책

양대 정당은 물론 청와대와 내각 쇄신도 국가적으로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조국 사태를 겪고서도 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내각, 더불어민주당에서 국정 기조 변화나 인적 개편 등 최소한의 쇄신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 데 대해 국민은 실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외 달리 개각을 예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 것은 국민 대다수 바람과는 배치된다. 

사실, 그동안 문 정부 실세 장관들의 실책은 쌓여있다. 인적 쇄신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해야 할 이유들이 차고 넘친다. 

국토부 장관은 집값 잡겠다고 시장 논리를 무시한 채 규제 일변도로 내달려왔다.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17차례 쏟아냈다. 실수요자들한테는 대출 절벽, 전국 부동산에는 거래 절벽을 가져왔다. 서울 집값 잡겠다고 졸속 신도시 대책을 내놨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3기 신도시 토지 보상금 45조원이 풀린다. 땅값 올리는 불쏘시개가 될 것이다. 3기 신도시에 1·2기 신도시 주민들이 반발하니 졸속 교통 대책을 내놨다. 최근엔 이 정부 임기 끝날 때까지 첫 삽도 못 뜰 계획을 잔뜩 담은 '광역 교통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시키고 민주당 출신 실세 장관을 연이어 투입했다. 간판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로 중소기업들이 엄청나게 타격받는데, 주무 부처 장관이 이를 완화할 정책 하나 성사시킨 게 없다. 

민주당 출신 장관들이 연달아 부임한 교육 정책은 총체적 난맥상 그 자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 정책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자질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전임 김상곤 부총리는 '수능 절대평가' 공약을 관철하겠다고 교육계를 들쑤셔놓고 위원회에 이리저리 떠넘기다 어정쩡한 2022 대입 개편안을 내고 떠났다. 

국정을 수렁으로 몰아넣는 정치인 장관들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왜 국민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안보 혼선, 공무원 대폭 증원 문제

안보 분야만큼은 정부 내 어떠한 혼선도 있어선 안 된다. 허지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말도 서로 다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북한 ICBM은 기술적으로 이동식 발사대로 발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정경두 국방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에서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에서 ICBM을 발사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정의용, 정경두, 서훈 3인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안보 책임자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다. NSC는 대통령이 의장인 안보·통일·외교와 관련된 최고 의결기구다. 안보 책임자의 말이 다르다는 건 청와대, 국방부, 국정원 간에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 청와대의 안보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 쇄신의 필요성은 공무원의 대폭 증원 계획에서도 파악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초(超)저출산으로 절대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과거 인구팽창기에 설계된 사회·국방·교육 체제를 축소 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뒤늦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구 감소에 따라 각 분야를 줄인다면서 공무원 숫자만 대폭 늘리려 하고 있다. 내년 공무원 증원 규모는 3만3815명으로 29년 만에 최대다. 그러고도 ‘5년간 17만4000명 증원’이란 대선공약에 따라 7만 명가량을 더 늘릴 계획이다. 현 정부 출범 전 102만여 명이던 공무원수가 2022년이면 120만 명이 된다. 증원될 공무원에 들어갈 인건비가 327조원, 퇴직 후 공무원연금은 92조원에 이른다는 국회예산정책처 추계도 있다. 다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할 빚이다.

출산율이 2명에 육박하는 프랑스도 비효율에 질려 공무원 12만 명을 감축하는 판에, 출산율이 1명도 안 돼 인구감소 대책을 짜는 한국은 거꾸로 대폭 증원하고 있으니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 

청와대 조직 정파적 입장 비판론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하명만 기다리는’ 문화가 그대로라면 사람과 조직이 아무리 바뀌어도 쇄신의 효과는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주재한 첫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의무”라며 “정해진 결론 없고 지위고하 구별 없으며 받아쓰기도 없는 ‘3무(無) 회의’로 실질적 토론과 합의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우월 의식과 집단 사고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하는 ‘레드팀’을 구성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가 조국 문제에 대처한 방식을 보면 3무 회의나 레드팀이 작동한 흔적은 찾기 힘들다. 

임기 전반기 정치, 경제, 안보, 외교, 교육, 노동 등 국정 전반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 그에 못지않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과 국정 운영을 맡은 내각의 잘못도 크다. 

실제, 청와대 참모들이 최근 보여준 언행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행정부 최고기관에 복무하는 인사들인데도 리더십이나 품위, 신뢰감을 찾아 보기 어렵다. 강기정 정무수석이 국회 국정감사를 받는 자리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친 것은 헌정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그것도 야당과 소통해야할 정무수석이 그랬다.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야당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 사태로 분열과 갈등이 고조될 당시에도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민심을 정확히 전달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보좌하기는커녕 진영 논리와 정파적 입장에 빠져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올바른 인적 쇄신이 시급하다.

과감한 변화 개혁으로 새판 짜야 

여야는 이번 기회에 이념과 진영, 지역에 사로잡힌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과감한 변화와 개혁으로 새판을 짜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적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혁신을 가장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것은 인적 쇄신이다. 인적 쇄신은 기득권을 가진 인사들의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구시대적 이념과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참신한 대안 세력을 발굴하는 것은 낡은 정치 타파에 필수적이다.

여야 모두 총선 성패를 가르는 열쇠는 과감한 공천 물갈이와 인재 영입을 통한 대대적 인적쇄신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패거리 정치와 기득권을 털어 내야 한다. 무능과 무사안일로 일관한 국회를 완전히 판갈이하겠다는 각오의 ‘공천혁신’에 여야는 정치적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부를 갈망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여야는 대대적인 쇄신에 나서고 새로운 정책대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유권자들도 지역주의에 함몰된 맹목적 지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유권자들은 강력한 쇄신 의지를 보이고 건전한 중도층을 끌어안으려는 정당에 지지를 보내야 한다. 국가적으로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이 정치발전의 관건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