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PB 차별화 전쟁…‘갑질’ 우려도 여전
생존 돌파구로 PB 경쟁 치열…실적 개선에 효과 공정위 “PB 거래 하청업체, 부당반품 등 피해 비율 높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안지예 기자]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대형마트가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제품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면서 PB 경쟁에도 불이 붙고 있다. PB가 단순히 저렴한 제품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리미엄 등 세부적인 전략에도 차별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PB 경쟁이 심화하면 제조업체에 비용 떠넘기기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형마트들은 최근 이커머스의 공세와 오프라인의 위기에 대응해 PB 상품을 강화하는 추세다. PB는 유통업체가 기획·주문한 상품에 유통업체 브랜드 상표가 부착돼 해당 점포에서만 독점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이다.
현재 이마트는 PB 상품의 대명사가 된 ‘노브랜드’와 상시적 초저가 PB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을 앞세우고 있으며, 롯데마트는 ‘온리프라이스’, ‘요리하다’, ‘초이스엘’ 등의 PB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홈플러스는 ‘심플러스’, 베이커리 PB ‘몽블랑제’ 등에 더해 최근에는 프리미엄 PB ‘시그니처(Homeplus Signature)’를 공식 론칭하기도 했다. 단순히 가성비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상품 고급화로 PB 경쟁력을 한층 더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대형마트들이 PB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는 데는 그만큼 성장세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를 찾는 발길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PB 상품은 실적 개선 돌파구로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 PB 상품 판매 추이는 긍정적이다.
이마트는 지난 8월 도입한 에브리데이 국민가격 정책을 바탕으로 올해 3분기 흑자 전환을 이뤘다.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을 선보인 뒤 출시 100일 만에 와인은 84만병, 물티슈 130만개, 생수는 340만명이 팔렸다. 매출이 뛰는 것은 물론 신규 고객도 유입됐다. 홈플러스 역시 시그니처의 대표적인 상품 시그니처 물티슈가 채 두 달도 안돼 200만 개 이상 팔렸다. 이에 힘입어 홈플러스 전체 물티슈 카테고리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신장했다.
이처럼 PB 상품의 흥행이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유통시장에서 유통사와 제조사 간 지위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통사들이 우월한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하청업자들의 단가를 부당하게 깎거나 할인행사를 강요하는 일 등이 아직까지도 근절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2019년 하도급거래 서면 실태조사’에 따르면 GS리테일, 롯데쇼핑, 이마트 등 13개 대형유통업체와 PB상품을 거래하는 하도급 업체를 조사한 결과, 부당하게 제품을 반품한 혐의가 있는 유통업체 비율이 23.1%로 집계됐다. 이 비율은 PB상품을 거래하지 않는 원사업자(9.5%)의 2.4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PB 거래 유통업체의 하도급대금 부당 결정·감액 혐의 비율도 2.7배(15.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실제 롯데마트는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삼겹살데이’ 가격할인행사 등 92건의 판매 촉진행사를 실시하며 법을 위반한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411억8500만원을 부과받았다.
업계에서는 PB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전속거래와 PB제품 하도급 분야 등에서 벌어지는 불공정 행위에 대해 지속해서 시장을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 등의 PB시장 규모는 지난 2008년 3조6000억원에서 2013년 9조3000억원으로 5년 만에 2.5배 이상 성장했다. 오는 2020년에는 15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더욱이 대형유통업체 상위 3사의 시장점유율이 53%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이들 기업이 제조업(PB상품 생산)까지 수직 통합함으로써 시장에서 독점적 가격을 설정해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진국 KDI 연구위원은 “PB업계의 동반성장은 생산 및 판매 활동으로부터 창출된 부가가치가 시장참여자들 간의 대등한 협상과 계약을 통해 배분될 때 실현될 수 있다”며 “유통·제조 업계 간 상생협력의 수단이 될 수 있는 PB가 개선의 여지가 많은 하도급 거래의 한 유형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과 정부의 법적·제도적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