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惡 선거법이 만든 위성정당의 시대

〈기자수첩〉 위성정당 논의는 민주주의의 후퇴… 이럴 거면 하지를 말지

2019-12-26     한설희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여야

깨진 조각들을 본드로 붙여놓은 유리병처럼 금 가버린 것. 색 다른 천 쪼가리들을 기워 넣은 보자기처럼 허접한 것. 바람 빠져 쪼그라든 풍선마냥 허무하고 볼품없는 것. 선거법.

‘누더기 선거법’이라고들 한다. 정확하지만 불친절한 표현이다. 애초에 여야 4당 모두 바느질을 제대로 할 의지조차 없었는데, ‘누더기’라고 부를 결과물이라도 있는가 싶다. 고작해야 허공에 바늘 몇 번 휘두른 게 다가 아닌가. 의원들을 따라 ‘선거법 계산기’를 두드려본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단 한 석도 양보하지 않은 지역구 밥그릇. 덕분에 한 석도 늘지 않은 비례대표. 50%의 연동률마저도 겨우 30석으로 제한.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은 현행 그대로 3%부터. ‘패자부활전’인 석패율제는 없는 것으로. 지난 4월 폭력 사태를 기점으로 장장 8개월 넘게 시간을 끌어온 선거법 개정의 결과는 이처럼 ‘원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려고 그 난리를 쳤느냐”는 짜증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은 이 사태를 ‘원점’에서 ‘후퇴’ 수준까지 끌고 가고 있다. 선거법 개정에서 자당(自黨)을 소외시킨 것에 대한 항의로 비례대표만을 위한 위성정당, 일명 ‘비례한국당’을 창당하겠다며 당당히 선언한 것이다. 이들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민주당은 차마 명분이 없어 못할 것”이라며 마치 정치적 묘수를 둔 것처럼 뽐냈다.

위성정당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후퇴 그 자체다. 다당제 문화를 해치고, 소수자의 국회 진입이라는 비례대표의 존재 가치를 희석시킨다. 위성정당이 발달한 나라 중 하나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보면 명백하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을 가장 증오하는 정치세력으로 꼽히는 한국당이 북한의 정치 문화를 닮아간다는 것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된다’는 유명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니체 1승’이다. 물론 이 괴물을 탄생시킨 한 축, 여야 ‘4+1’도 니체의 승률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국회는 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개혁을 하려고 애썼나. 현행 선거제도의 높은 불비례성 때문이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를 혼합한 현행 제도에서 비례대표의 비율이 낮고 득표율과 의석율의 불비례성이 높다는 문제는 계속해서 지적돼 왔다. 

따라서 비례성을 사표를 줄이고, 다원화 시대에 발맞춰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국회에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목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의됐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의 해소라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했다. 

그러나 비례 의석이 원안 75석에서 50석으로, 다시 47석으로 찌그러들면서 ‘정치개혁’이라는 비전은 공허한 구호로 남았고, 그 도착지는 개악(改惡)이었다. 협의체에서 지역구 의석을 줄일 수 없다고 목소리 높인 측이 군소 정당인 호남계라는 사실은 결과적 허무함과 정치혐오만 가중시켰다.

여야 5당이 머릴 맞대고 계산기를 두드려 선거법을 ‘짬짜미’한 결과, 시간 낭비·돈(세비) 낭비·에너지 낭비 끝에 위성정당이라는 심연 속 괴물만 탄생하고 말았다는 게 ‘20대 국회 대장정’의 마무리다. 국민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럼에도 사죄 하나 없이 여전히 남 탓 공방만 벌이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프랑스의 국민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유명 넘버 ‘대성당들의 시대’는 1400년대 말 이교도와 대성당이 대립하던 프랑스를 노래한다. 페스트와 백년전쟁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마녀사냥으로 돌려 권위를 이어가려 하던 ‘대성당들의 부패’가 가사의 주제다. 

2019년의 대한민국 국회가 1400년대 프랑스 대성당과 다를 바 있나. 여야가 선거법을 두고 ‘정치개혁’ 운운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민생은 뒷전이요, 스스로도 개혁하지 못하면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듯 사법 개혁을 울부짖는다. 50여 시간에 걸친 필리버스터 후 기저귀 투혼이니, ‘맞불 필리버스터’니 자화자찬해도 본회의장에 메아리처럼 남은 것은 문희상 의장을 향한 ‘아들세습’ 구호와 ‘우리가 위성정당을 만들면 몇 석이 나오냐’는 2차 산술식 뿐이다. 

‘한국당을 따라 민주당도 만든다’ 혹은 ‘한국당이 만들지 못하게 민주당이 막는다’. 국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이 바로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다. 바야흐로 ‘위성정당들의 시대’다. 이럴 거면 애초에 하지를 말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