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보수통합] 성패는 확장성…“안철수를 잡아라”
한국당과 새보수당 통합은 새누리당 복원에 그쳐 중도의 상징 안철수, 보수통합 시너지 극대화 가능 3당합당·DJP연합·노-정 단일화가 보여준 승리의 법칙 안철수 목표는 대권…‘제로베이스 대권경쟁’ 보장돼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재결합 수순에 들어갔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루비콘강을 건넜던 양당은 제21대 총선을 석 달여 앞두고 양당 협의체를 출범시키면서 사실상 통합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로써 보수는 바른정당 분당(分黨) 이전의 세력 범위를 대부분 회복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당과 새보수당이 통합 논의에 나선 것은 두 차례 선거를 통해 현실적 한계를 자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주요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완패를 당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모두 패퇴(敗退)했으며,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겨우 세 자리(한국당 2곳, 무소속 1곳)를 얻는 데 그쳤다.
여론조사에서도 보수의 약세(弱勢)가 두드러졌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진 이후, 보수 정당은 단 한 번도 민주당에게서 정당지지율 1위 자리를 빼앗지 못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1월 28일부터 29일간 실시해 30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한국당은 29.8%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해 38.2%의 민주당에 8.4%포인트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가 총선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합 이외의 선택지를 찾기 어려웠다. 소선거구제(小選擧區制) 하에서 여론조사상 열세에 놓인 두 정당이 각자 후보를 낼 경우, 지지율 1위 정당을 따라잡을 도리가 없는 까닭이다. 여기에 한국당과 새보수당이 불과 4년 전 ‘새누리당’ 간판 아래 함께 총선을 치렀던 한 가족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수 통합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한국당 + 새보수당 = 새누리당?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수의 고민은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통합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데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결별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당과 새보수당은 이질감이 거의 없는 정당이다. 이념적으로는 보수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며 영남 지역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삼는다.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때와 달리, 탄핵 문제가 통합의 걸림돌로 부각된다는 사실 자체가 양당의 동질(同質)성을 방증(傍證)한다.
문제는 통합의 정치적 효과다. 3년 전 새누리당에서 갈라진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통합은 필연적으로 새누리당 복원(復元)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인적 구성만 보더라도 새보수당 의원 전원(정병국·유승민·이혜훈·오신환·하태경·유의동·정운천·지상욱)이 새누리당 출신인 만큼, 양당의 결합에서 새누리당 이상의 이미지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1월 22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만나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틀을 넘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양당 통합의 한계를 정확히 관통한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안철수 전 의원이다. 알려진 대로, 안 전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며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2012년 대선에서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벌이다가 사퇴, 사실상 문 후보를 지지했다.
2013년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후에는 신당 창당을 시도하다가 민주당과 손을 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며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친문(親文)계와의 갈등 끝에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 뒤에도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을 창당, 진보적 정치 세력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안 전 의원이 중도진보 또는 중도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중도의 상징’ 안철수의 가치
보수가 안 전 의원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통합만으로는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안 전 의원이 보수 통합에 가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계에 발을 들인 후 계속해서 중도진보와 중도 사이에서 활동해온 안 전 의원의 합류는 보수 통합을 ‘새누리당 복원’에서 ‘반문(反文) 세력 결집’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과 새보수당은 이념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동일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이것은 통합 이후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을 쉽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양쪽으로 나뉘는 표를 하나의 정당에 몰아주는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안 전 의원의 주 활동 무대는 양 극단을 배제한 제3지대다. 한국당·새보수당과는 기반 자체가 다르다. 이 경우 양쪽의 통합은 상당한 진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나, 성사만 된다면 동질적 집단의 결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폭발력을 갖는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1월 28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이질적 세력끼리의 통합은 세력과 세력을 더하는 형태기 때문에 더 폭발력이 크다”면서 “3당 합당과 DJP 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성공했던 것은 지지 기반이 다른 세력간의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가 중도를 상징하는 안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역사가 말하는 ‘통합 성공의 법칙’
실제로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키는 이른바 ‘3당합당’에 합의하면서 정치 지형을 바꿔 놨다. 알려진 대로, YS는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서 목숨 건 투쟁을 벌였던 민주화투사였다. 그런 YS가 군부 독재 정권의 후예인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박정희 정권 2인자였던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손을 잡은 것이다.
YS의 이 선택은 측근들조차 거세게 반발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렇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민주화 세력이면서 PK(부산·경남)의 지지를 받고 있던 YS와 군부 세력이자 TK(대구·경북) 중심의 노태우, 마찬가지로 군부 세력의 후예면서 충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JP가 힘을 모으자, 대한민국 정치 지형은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화했다. 이념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이질적인 세력들의 조합이 얼마나 큰 폭발력을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YS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YS와 함께 민주화운동의 쌍두마차였던 DJ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DJP 연합’ 결성에 합의했다. 여기에 민정계 출신인 TJ(박태준 전 국무총리)까지 끌어들여 YS와 3당 합당과 유사한 ‘민주화세력과 민정계, 공화계의 결합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DJP 연합은 DJ에게 두 가지 선물을 안겼다. 우선 충청 민심을 끌어안았다.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DJ는 대전에서 45.0%, 충남에서 48.3%, 충북에서 37.4%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1992년 제14대 대선 때(대전 28.7%, 충남 28.5%, 충북 26.0%)보다 10~15%포인트가량 높은 수치였다.
한편으로 DJ는 JP, TJ와의 연대를 통해 ‘빨갱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효과도 얻었다. 평생을 ‘빨갱이’라는 오명 속에 살았던 DJ는 군부 독재 세력과의 결합을 통해 자신에게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DJ가 TK에서 기록한 14%의 득표율은 JP, TJ와의 연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2002년 대선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기득권 청산’을 외치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재벌 출신인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한 것이다. 진보적 색채가 강했던 노 후보와 중도보수 성향이었던 정 후보는 이념적으로 적잖은 거리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정 후보의 ‘재벌 2세 보수주의자’ 이미지는 반미·반기업 등으로 점철된 노 후보의 과격한 이미지를 중화(中和)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보수가 안철수를 품을 수 있을까
이처럼 안 전 의원은 통합의 길을 걷는 보수에게 가장 완벽한 파트너라고 볼 수 있다. 통합 보수 신당이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혐의를 벗고 ‘반문(反文) 기지’로 기능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시절부터 어려움을 겪던 중도 확장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보수 통합에는 관심이 없다”는 안 전 의원의 거부 의사에도,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나서 “함께 똘똘 뭉쳐서 이 정권의 폭정에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다만 안 전 의원이 보수 통합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대권을 노리는 안 전 의원 입장에서, 친박(親朴)이라는 최대 주주가 존재하는 한국당과의 통합은 ‘가시밭길’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해 보수가 최소한의 ‘안전 보장’을 하지 않는 한, 안 전 의원이 보수 통합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은 1월 3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야권 모두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창조적으로 해체하고 혁신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면 (보수 통합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로 베이스(zero base)에서의 대권 경쟁’이 안 전 의원의 보수 통합 요구인 셈이다.
결국 안 전 의원의 보수 통합 참여 여부는 한국당이 선점하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1월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를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한 자기희생이 따르지 않는 한 보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당 관계자도 1월 3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결국은 유승민 의원이나 안철수 전 의원이나 차기 대권을 위해 보수 통합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며 “황 대표를 꺾고 대권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서야 안 전 의원이 보수 통합에 응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과연 이 모든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보수는 안철수를 품을 수 있을까.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