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몰락] ‘영남 자민련’으로 추락…“남원정, 전면에 나서야”
중도보수 전면에 섰던 한나라당…박근혜 집권 이후 극우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48.67% 대 26.14%.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맞붙은 2007년 제17대 대선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일방적이었던 대선으로 기록돼 있다. 2017년 제19대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이 41.08%,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이 24.03%였으니, 2007년 대선 결과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2020년 4월 15일. 한나라당의 후신(後身)인 미래통합당은 국회 전체 의석수 300석 가운데 겨우 103석을 얻는 데 그치는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3년 전 대선에서 531만 표차 대승을 거뒀던 보수 진영이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넘기는 ‘영남 지역정당’으로 쪼그라들게 된 것일까.
MB의 승인은 ‘중도보수’
정치 전문가들은 2007년 한나라당을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정당 중 하나로 기억한다. 이전까지의 보수정당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정권의 후예 성격이 강했던 반면, 당시 한나라당은 성공한 기업인 출신이었던 이명박 후보를 필두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등 젊고 개혁적인 성향의 정치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도실용 후보’를 자처했던 이명박 후보는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패했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는 다른 노선을 걸었다. 이회창 전 총리가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한 강성보수 결집에 ‘올인’한 반면, 이명박 후보는 보수정당 후보였음에도 지나치게 보수색을 띠지 않고 중도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이명박 후보가 중도보수에 터를 잡자, 한나라당의 확장성은 극도로 확대됐다. 이념 스펙트럼상, 강성보수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치 세력은 중앙으로 뻗어나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도 표심을 놓고 진보와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하는 까닭이다.
반면 중도보수의 경우 중도는 물론 중도진보 표심까지 흔들 수 있는 확장성을 갖는다. 여기에 ‘진보의 승리’를 원하지 않는 강성보수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쉬운 측면이 있다. 남·원·정을 비롯한 개혁 세력을 전면에 배치한 이명박 후보가 48.67% 대 26.14%라는 ‘역대급’ 격차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과 정운찬 국무총리 사퇴, 한미FTA 강행,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 공격 등으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한 가운데, 중도보수 진영이 경쟁력 있는 대권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당의 당권은 강성보수의 상징, 박근혜 전 대표에게로 넘어간다.
통합당의 패인은 ‘극우화’
박근혜 전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당내 권력 구도도 재편됐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박근혜 위원장은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중도보수 진영의 인물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하며 강성보수 성향의 인물들을 불러들였다. 이때부터 보수정당은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는 과거 지향적 성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제19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박근혜 위원장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제18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승리와는 별개로, 제18대 대선은 ‘위험 신호’가 감지된 선거이기도 했다. 모든 보수 성향 후보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깃발 아래 모여드는 ‘보수 대통합’이 이뤄졌음에도, 100만 표차 신승(辛勝)을 거두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제18대 대선 결과는 보수의 우경화(右傾化)가 중도층의 이반(離叛)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를 남겼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 당내에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남경필·원희룡 의원을 압박해 각각 경기·제주도지사로 내려 보냈고, 제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당을 모두 ‘예스맨(yes man)’으로 채웠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지만, 이미 보수정당 내에는 ‘쓴 소리’를 할 만한 인물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당권은 친박(親朴)에서 친박으로 이어졌고, 대권 후보도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 황교안 전 대표에게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제21대 총선에서의 103석 참패였다.
결국 과거 한나라당 영광의 복원을 위해서는 중도보수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이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총선 참패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등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극우화된 당을 다시 중도보수로 옮겨야만 더불어민주당의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도 17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새로운 남·원·정이 등장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갑자기 지도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치 초보에게 당을 맡기는 건 위험성도 크다”며 “남경필 전 지사를 복귀시키고 원희룡 지사와 정병국 의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최선”이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