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美와 1000억원대 벌금 합의 배경은?
“문제 사건에 공모 사실 없고 미국 금융당국 수사에 적극 협조…합의 도출” 美 자금세탁위반 규제 강화 추세…현지 진출 금융사, 규제 준수 부담 증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진영 기자]
IBK기업은행이 뉴욕지점의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 미비 등의 사유로 미 금융당국에 1000억원대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기업은행 측은 미국 규제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모니터링이 미비한 점은 일부 인정하나, 고의적 공모가 없었다는 점이 감안되어 이번 합의에 이르렀다는 입장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지난 20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검찰을 비롯해 뉴욕주 금융청과 미화 총 8600만 달러(한화 약 1049억원) 규모의 제재금에 합의하고, 수 년간 진행돼 온 한·이란 원화경상거래 결제업무 관련 조사를 모두 종결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1년, 이란과 제3국 사이에서 A사가 중계무역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A사는 이란과 제3국간 중계무역을 하면서, 지난 2011년 2월부터 7월까지 기업은행의 원화결제계좌를 이용해 수출대금을 수령했고, 미 달러화 등을 해외로 송금했다.
한국 검찰은 지난 2013년 1월, A사의 허위거래를 인지하고 외국환거래법 등의 위반으로 대표를 구속 기소 했으며, 당시 기업은행 직원들은 관련 사건을 공모하거나 묵인한 것이 없는 것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미국 연방검찰이 A사 거래 관련 조사를 진행하면서, 기업은행 뉴욕지점은 송금 중개 과정에서 미국의 자금세탁방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기업은행은 이번 합의를 통해 과거 기업은행 뉴욕지점의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이 미국 법령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미 금융당국의 의견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은 이란 등을 금융제재국가로 지정하고 금융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기업은행의 경우 이란과 '원화'로는 수출입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A사가 이란과 중계무역 시, '달러화'로 바꿔 송금을 하면서 문제가 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미국은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해 여러가지 규제를 갖추고 있고, 이에 준하는 은행의 모니터링이 미비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면서, "하지만 과정에서 은행이 사건에 전혀 공모하지 않았다는 점, 미 금융당국에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등이 감안되어 이번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기업은행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개선과 인력 충원 등의 실질적 조치를 취했다. 실제로 기업은행과 체결한 동의명령서에서 뉴욕주금융청은 뉴욕지점의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이 2019년 현재에는 적절한 상태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효과적인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으며, 앞으로도 국내외 관계 당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자금세탁방지 등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더욱 효과적으로 개선‧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금융당국의 자금세탁위반 규제가 크게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미 재무부가 지난 2018년 12월 발표한 '테러 및 불법자금조달에 대한 국가 대응전략'에 따르면, 자금세탁 등을 통한 범죄 수익이 매년 약 3000억 달러에 이른다면서 관련 규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지난 2018년 5월 '수익적 소유자 확인제도'를 시행하면서, 금융회사는 법인의 예금계좌 개설과 대출 취급시 해당 법인의 실소유주인 수익적 소유자를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또 같은해 10월 지역지정명령 대상지역이 확대되면서, 고위험 지역 부동산 거래 보고 규제를 크게 강화했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금융회사들은 미 정부의 관련 규제 강화 등으로 혐의거래 보고가 최근 수년간 급증하는 등 규제준수 부담이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국내은행의 자금세탁방지업무 강화를 위한 간담회를 열고, 관련 감독·검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