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보니] 朴시장 성추행 혐의 고소 건이 여성계에 던진 숙제는?
연대의 목소리부터 펜스룰 우려 등 다양한 목소리 이어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진상규명 촉구냐, 침묵이냐, 고인에 대한 두둔이냐, 비판이냐 등. 故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고소 건이 여성계에도 숙제를 안기며 파장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진상규명 촉구와 관련해 여성계 연대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한편, 옹호와 이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고뇌도 전해지고 있다. 어떤 목소리들인지 ‘듣고보니’를 통해 모아봤다.
1. 시민사회계 연대의 목소리
여성시민사회계는 피해자 고소에 초점을 두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여성의 전화는 10일 성명서를 통해 “박원순 성추행 피소 이후 성폭력 가해에 이용된 권력이 또다시 가해자를 비호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을 막는 것에 분노한다”며 “우리는 피해자가 바라왔던 대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가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같은 날 성명서를 통해 “박원순 전 시장은 과거를 기억하고, 말하기와 듣기에 동참하여, 진실에 직면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 길에 무수히 참여해왔으나 본인은 그 길을 닫는 선택을 했다”며 “약자의 곁에서, 이야기되지 못해온 목소리에 연대하겠다. 서울시는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책임 있는 답변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이날 성명서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피해자의 용기에 도리어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는 정치권, 언론, 서울시, 그리고 시민사회에 분노하다”며 “서울시는 진실을 밝혀 또 다른 피해를 막고 피해자와 함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성명서에서 “여성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성평등한 세상을 향한 변화와 성찰을 만들어왔다. 피해자의 말하기를 가로막는 사회에서 진보는 불가능하다.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왜곡, 2차 가해를 멈추어야 한다”며 “자신의 피해 경험을 드러낸 피해자의 용기를 응원하며 그 길에 함께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 방송‧언론‧국회 여성계 목소리
여성전문시사정치프로그램 KBS1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 13일 방송에서 송문희 더공감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박원순 시장의 성과들을 한 번에 매도할 수 없지만 성추행 피소건이 죽음으로써 묻혀서는 안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숙제로써 이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전예현 시사평론가도 방송에서 “인권변호사로의 활동 등을 폄훼해서는 안 되겠으나 박원순 시장의 생전 삶이 훌륭했다고 해서 피해 호소를 하는 여성에 2차 가해 및 보복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박 시장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2차 가해를 경계했다.
국회 내 여성보좌진 기반 그룹인 국회페미는 지난 12일 성명서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추모 현수막이 2차 가해를 유발하는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 내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수사가 종결된 정황을 이용해 피해자를 모욕하고 고통을 주는 명백한 2차 가해”라며 “현수막을 당장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또 “정치권의 잘못된 대응으로 국회 내부에서 극심한 여성 보좌진 ‘펜스 룰’ 사례가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며 “만일 여성 보좌진 채용을 줄이고 성별을 이유로 업무를 제한해 조직에서 더 낮은 지위에 가둔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사라지기는커녕 더 음성적이고 악질적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여기자협회 또한 진상 규명 촉구 성명서에서 “이번 의혹은 법적 차원을 떠난 사회적 정의의 문제다. 현행 법체계는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지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면제한 것은 아니다”면서 “피해 호소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고인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정치인 및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공적 언급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3. 옹호 vs 비판 vs 고뇌의 목소리
성추행 고소 측을 겨냥해 여론재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혜원 검사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서 “고소장 접수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고인의 발인일에 기자회견을 하고, 선정적 증거가 있다고 암시하면서 2차 회견을 또 열겠다고 예고하는 등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시리즈물로 만들어 흥행몰이와 여론재판으로 진행하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부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면 해당 분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회의와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 패턴으로 판단될 여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지, 존경받는 공직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여론재판이 중요한지 본인의 선택은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시민들은 그것을 비언어적 신호로 삼아 스스로 진실을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김소연 변호사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진 검사를 겨냥 “전문적 식견에 대체로 동의할 부분이 보이긴 합니다만 이번 정권과 여당이 그동안 보여온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피해자중심주의와 여성주의, 페미니즘과는 완벽하게 스텝이 꼬이고 있다”고 냉소했다. 뒤이어 “작년에는 조국이 20대를 일깨우며 조국을 살리고, 얼마전에는 윤미향이 XX조직들의 실태를 드러내더니 박원순 시장은 죽음으로 우리나라 여성계의 총체적 문제점과 모순에 화두를 던져준다. 복잡한 실타래를 건강하고 발전적으로 풀어 가면 되겠다”고 덧붙였다.
고뇌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우리 사회에 처음 미투 운동이 촉발되도록 용기 있게 나서줬던 서지현 검사 경우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개인적 고뇌를 털어놓으며 잠시 SNS를 쉬겠다고 전했다. 서 검사는 “인권변호사로서 살아오신 고인과 개인적 인연이 가볍지 않아 개인적 충격과 일종의 원망만으로도 견뎌내기 힘들었다.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지라 했고,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피해자가 용기 냈으니 책임지라 했다"며 "숨쉬기조차 힘들다. 한마디도 할 수 없어 페북을 떠나있겠다”고 했다.
한편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는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기자회견 주최 측이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4년여간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