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바꾸겠다는 與, 장외투쟁 불사하겠다는 野…갈등 어디까지?
공수처법 개정 가능성 거론되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협상 국면 관측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국민의힘이 2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추천위원으로 임정혁·이헌 변호사를 내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6일까지 추천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추천위원 선임 권한을 박탈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하자, 국민의힘이 ‘실리 챙기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하지만 야당 추천위원 명단을 받아든 민주당은 이들이 ‘무한 비토(veto)권’을 행사해 공수처 출범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며 의결 정족수를 3분의 2(5명)로 낮추는 법 개정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자 야권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과 함께 ‘강경 대응’ 주장까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與, 추천위 공전(空轉) 안 돼…“법 바꾸자”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내정한 공수처장 추천위원들은 보수 색채가 뚜렷한 인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임정혁 법무법인 산우 변호사는 공안 검사 출신으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 후보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 역시 박근혜 정권에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2015년에는 새누리당 추천 몫으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 등 보수 성향의 법조인으로 분류된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 쪽에서는 야당이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기 위해 ‘지연작전’을 쓸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은 모두 7명으로, 여야가 각각 2명씩 4명, 법무부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이 한 명씩 추천위원을 낸다. 이렇게 구성된 추천위가 2명의 공수처장 후보를 선정하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한 명을 낙점하게 된다.
문제는 추천위에서 후보를 결정하려면 7명 중 6명이 동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할 경우, 추천위에서 후보를 낼 수 없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이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이 추천할 공수처장 추천위원이 ‘공수처 방해위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배경이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키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미 민주당은 후보 2인 선정 기준을 ‘7명 중 6명 찬성’에서 ‘7명 중 5명 찬성’으로 변경하고, 공수처 수사 인력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렇게 되면 야당 추천위원 2명만으로는 여당의 후보 추천을 막을 수 없다.
실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26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끊임없이 비토권을 행사하게 되면 공수처장 임명이 결국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 공수처 출범도 안 되는 것”이라며 “이제 마냥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에 공수처법 개정 논의는 개정 논의대로 진행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대표 역시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에 두 분의 추천위원을 배정한 것은 공정한 인물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제도를 혹시라도 공수처 출범을 가로막는 방편으로 악용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당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野, “장외투쟁 불사”…협상 테이블 마련할 듯
당연히 국민의힘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야당의 비토권은 여당이 단독으로 공수처장을 임명하지 못하게 하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인데, 이마저 빼앗는다면 그야말로 ‘의회 독재’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공수처장 임명에 야당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을 경우,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라고 해서 해도 시비 거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해도 비난하고 안 해도 비난하는 건 아예 야당은 끼어들지 말고 민주당 맘대로 다 하겠다는 거 아닌가”라며 “이래서 공수처가 여당 비호하는 거대 괴물이 될까봐 우려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국민의힘 쪽에서는 ‘장외투쟁’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에 나서면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장외투쟁과 보이콧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저지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26일 <시사오늘>과 만난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당이 공수처법을 개정해서 야당을 완전히 배제하겠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장외투쟁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했다.
다만 여당이 실제로 개정안 처리 강행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지금, 공수처법 개정안까지 단독 처리한다면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야당이 추천위원까지 내세웠음에도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설명이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지난 1일 독일 순방에서 “야당 추천위원들이 (후보를) 반대하면 공수처장을 선임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수처 출범도 예상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시행도 되지 않은 법을 다시 고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때문에 여야는 당분간 큰 충돌을 피하면서 물밑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앞선 국민의힘 관계자는 “아무리 지지율이 탄탄해도 공수처법을 개정해가면서 공수처장을 임명하는 건 민주당 입장에서도 엄청난 부담일 것”이라며 “공수처법 개정 이야기는 블러핑(bluffing)으로 보고 있다. 아마 조용히 협상을 해서 결과물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