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 변호사의 법률살롱] 임신중지의 비범죄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기현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현행 형법에서 다루고 있는 제27장의 낙태의 죄와 모자보건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법률에서 허용하고 있는 범위를 벗어나 행한 중절수술은 범죄로 구분해 처벌한다는 법률조항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인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낙태죄라 불리는 인공임신중절죄의 존치와 폐지 사이의 대립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거시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상충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우리 법은 태아가 사람으로서 권리, 능력의 주체가 되는 시점을 출산 또는 진통 시로 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시점, 혹은 어머니가 출산하기 직전에 진통을 느끼는 시점부터 사람으로서의 권리,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민법상의 특정한 법률관계에서는 출산, 진통 시점 전이라도 출생한 것으로 미뤄 권리 능력을 인정하기도 한다.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 상속과 유류분, 유증 그리고 기타 연금법 등에서는 예외적으로 태아의 권리,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는 민법상에 그치는 것으로 다른 법이나 판례에서 태아의 권리, 능력을 인정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 임신한 여성을 폭행해 태아가 사산하는 경우, 태아는 형사법적으로 권리, 능력의 주체가 될 수 없어 살인죄와 상해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폭행 가해자에게 영아 살인죄, 상해죄를 물을 수 없는 것이다. 가해자가 ‘태아를 사망에 이르게끔 의도했다‘라는 고의성 존재 유무에 따라 동법 2조의 부존재낙태죄를 물을 수 있지만, 이를 법정에서 입증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사망한 태아에 대해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듯 형사법 영역에서 태아의 권리, 능력을 부정해 객체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에 관한 처벌규정을 뒀다는 점은 태아를 권리 능력의 주체로 인정하는 듯한 모순을 보인다. 이는 임신 당사자인 여성을 태아 살인죄의 주체로 만드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현행법에서는 낙태죄의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유를 △유전적인 신체 장애 △정신적 장애가 있을 때 △성폭행에 의한 임신일 때 △혈족과 인척간의 임신일 때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청와대가 내놓은 개정안은 △수술 전 배우자 동의 조항의 삭제 △특정 임신주수 하에서 조건부 임신중절 허용 △약품을 사용한 인공중절수술 허용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혹자는 위 개정안의 내용이 낙태를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낙태 전문병원이 생길 것이라 지적한다. 또한 낙태에 드는 경비를 국가가 보조한다면 국가가 나서 세금으로 살인에 앞장서는 것이라 비난한다. 약물로써 낙태를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생명경시 풍조에 일조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임신중단의 판단은 여성의 생존이 걸려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도저히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고, 본인의 삶을 지속하기 어려워서 결정한 임신중절수술은 여성의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불법시술로 인한 부작용, 미혼 상태에서 출산한 여성의 복지 등 현실적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모성애를 근거로 한 윤리의식과 아직 발생하지 않은 디스토피아를 논거삼아서는 곤란하다. 임신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가 지속돼서는 안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기현 변호사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
-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법률고문
- 제52회 사법시험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