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우동1’ 거른 삼성물산·현대건설, 새해 정비사업 수주전략 엿보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삼성물산, 현대건설이 우동1구역을 아예 거를 줄이야." 지난주 금요일(지난 8일)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얘기입니다. 전날인 지난 7일 부산 해운대 우동1구역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는 DL E&C(DL이앤씨, 구 대림산업), GS건설, 포스코건설, SK건설, KCC건설, 동원개발, 아이에스동서, 제일건설 등 8개사가 참여했습니다. 참가가 유력했던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은 불참했고요. 출입기자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저 속으로 '어, 도대체 무슨 소리지?'하며 횡설수설하기 바빴습니다. 그만큼 두 업체는 당연히 우동1구역에 입찰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던 겁니다.
업계에서 두 건설사가 당연히 우동1구역에 입찰할 것이라 예상한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일단 적극적이었습니다. 물론 지역에서 더욱 활발하게 홍보 활동을 펼친 건 DL이앤씨와 GS건설이었으나,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역시 그에 못지 않았습니다. 일찍부터 홍보에 열을 올렸고, 부산에서는 우동1구역에 집중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동1구역 인근은 노후 단지들이 대거 위치한 지역이어서 향후 열리게 될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두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아울러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올해 들어 사령탑을 일제히 현장통으로 교체한 만큼, 우동1구역을 비롯해 새해 정비사업 시장에서 보다 강력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 예상하는 관계자들도 많았죠. 건설업계 양대산맥이 부산에서 펼치는 뜨거운 경쟁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현재 업계에서는 DL이앤씨가 하이엔드 브랜드인 '아크로'를 내놓은 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대형 건설사들이 서울·수도권에서만 선보이던 프리미엄 브랜드를 DL이앤씨에서 부산에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먼저 밝힌 게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에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겁니다. 일리는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만든 브랜드를 함부로 남발하기 어려운 데다, 경쟁사가 먼저 치고 나갔다면 차별성도 없죠.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삼성물산은 하이엔드 브랜드가 따로 없는 업체입니다. '래미안' 자체만으로 충분히 고급 브랜드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온천2구역, 연지2구역, 거제2구역, 온천4구역 등 부산 지역에서 이미 프리미엄 래미안 단지를 선보이기도 했고요. 현대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공개 당시 3.3㎡당 평균 분양가 4500만 원이 넘는 단지에만 디에이치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우동1구역(삼호가든)은 이미 3.3㎡당 매매가 4000만 원을 초과한 단지로, 향후 재건축 후 공급 시 3.3㎡당 평균 분양가 5000만 원대를 돌파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뭔가 다른 배경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우동1구역에서 보인 행보로 두 업체의 2021년 새해 수주 전략을 엿볼 수 있게 됐다는 견해가 제기됩니다.
우선, '프리미엄 이미지 공고화'입니다. 올해 정비사업 시장은 지난해에 비해 규모가 줄었습니다. 최근 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규제 완화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른 시일 내 정비사업 규제가 풀릴 가능성은 낮을 전망이고,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될 경우 예정된 사업이 지연될 공산도 있습니다. 대형, 중견을 가릴 것 없이 건설사 간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요. 대형 업체가 지방 정비사업 수주전에 나섰다가 중견업체에 체면을 구기거나, 하이엔드 브랜드·펫네임을 내세웠음에도 웃지 못하는 일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고요. 실제로 지난해 12월 대림산업(현 DL이앤씨)은 전주 종광대2구역에서 한수 아래로 평가되는 동부건설에 패배한 바 있습니다. 국내 건설업계 양대산맥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로서는 이 같은 난타전을 최대한 피하면서 실적과 브랜드 가치를 관리하고, 서울·수도권 상급지 물량이 나올 2~3년 뒤를 노리는 게 합리적일 수 있겠죠.
삼성물산은 우동1구역을 거르고, 새해 마수걸이 수주로 서울 도곡삼호 재건축사업 시공권을 경쟁사 없이 단독 찬반 투표 방식으로 따냈습니다. 해당 사업은 올해 얼마 되지 않는 강남권 상급지 중 하나인 데다, 향후 개포한신 등 인근 재건축사업을 수주하는 데에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삼성물산 측은 "차별화된 상품과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도곡삼호 재건축이 새로운 강남권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현대건설은 우동1구역을 거르고, 새해 마수걸이 수주로 경기 용인 수지 신정마을 9단지 리모델링사업 시공권을 확보했습니다. 해당 단지에 다양한 특화설계와 고급 마감재 등을 적용한다는 방침입니다. 현대건설 측은 "리모델링 전담조직 구성 후 최초로 단독 수주하는 사업인 만큼, 현대건설의 브랜드 명성에 걸맞은 최고의 주거명작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리스크 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선별 수주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삼성물산은 2020년 신반포15차, 반포3주구 등 서울 강남권 핵심 정비사업을 연이어 따내며 '왕의 귀환', '래미안의 화려한 복귀'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열 경쟁, 공사비 증액 등 각종 구설수도 있었죠. 하필 경영권 승계 의혹에 연루된 모그룹 총수의 대국민사과 직후 논란이 터지는 바람에 사회적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의 파기환송심 공판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은 이제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삼성물산은 지난해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되는 실정입니다. 극심한 경쟁이 예상되는 수주전에는 아예 발을 빼면서 준법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럼에도 모그룹 지배구조를 감안했을 때 실적 회복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앞서 말했듯 삼성물산은 우동1구역을 거르고, 새해 마수걸이 수주로 서울 도곡삼호 재건축사업 시공권을 경쟁사 없이 단독 찬반 투표 방식으로 따냈습니다.
현대건설도 올해는 몸을 사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오너일가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모그룹이 2021년을 지배구조 개편의 원년으로 삼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죠. IT 계열 3사 통합, 미국 로봇업체 인수 등 이미 시곗바늘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매년 증권가에서는 여러 가지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항상 말미에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또한 건설업종은 늘 광범위한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편이고, 여론의 지탄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특히 최근 정부여당의 기조 하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남3구역 수주전 같은 일에 또 연루된다면 좋을 일이 하나 없겠죠. 앞서 말했듯 현대건설은 우동1구역을 거르고, 새해 마수걸이 수주로 경기 용인 수지 신정마을 9단지 리모델링사업 시공권을 확보했습니다. 리모델링사업은 정비사업에 비해 수익성은 낮지만 정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경쟁과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업계 관계자들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여전히 낙민1구역, 수안2구역, 연산5구역 등 부산 지역 대규모 사업장에서 홍보를 활발히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대건설은 리모델링사업 시장에서 올해 공격적으로 수주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두 건설사 관계자들은 이번 우동1구역 불참에 대해 "통상적인 선별 수주 전략에 따른 결정이다. 큰 의미를 두지 말아 달라"고 본지에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새해 초 특정 사업에 불참했다고 해서 앞으로의 기업 행보를 쉽게 예단해선 안 될 일입니다. 하지만 새해 초니까 이렇게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오는 게 가능한 것이기도 하겠죠. 그만큼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2021년 행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의미일 겁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두 업체를 비롯해 국내 모든 건설사들이 건승하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