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보기] “나라 망한다”던 주 5일제…월화수목‘토토일’은?
2004년 그날, 인물‧신문의 평가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주말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물론 실제로도 짧다. 주말은 7일 중 고작 이틀이기 때문이다. 월요일이나 금요일이 공강(空講)인 대학생, 혹은 휴가를 써본 직장인이라면 알 것이다. 3일 쉬고 4일 일하는 일주일이 가져온 삶의 질 변화에 대해서 말이다. 꿈같은 월화수목‘토토일’은 도입될 수 있을까.
서울‧부산 보궐 선거가 야권 단일화에 매몰돼있는 가운데, 한 정책이 주목받기 시작됐다. 서울시장 후보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의 ‘주 4일 근무제’ 공약이 그것이다. 양당도 입장을 밝히면서, 건전한 정책 논쟁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방향성에 동의하면서도,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박영선 후보는 유사한 ‘주 4.5일제’를 제안했다. 우상호 후보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적 방향”이라면서도, “주 52시간이 정착이 안 된 상황에서 서울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주 4일제‧4.5일제에 부정적이다. 오세훈 후보는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없어 당장 생계가 걱정인 청년들에게 4.5일제 공약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꿈 속에 산다”고 비판했다.
21년 전 대한민국은 주 5일제 도입을 두고 갈등했다.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맞부딪쳤다. 오랜 격론 끝 2004년 주 44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단축됐다. 과연 국민들의 일주일을 바꿀 생각은 어디에서 왔으며, 재계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주 5일제를 거세게 반발했던 걸까. 당시 논쟁은 앞으로 주 4일제가 가져올 격론의 ‘미리보기’를 제공한다.
<시사오늘>은 과거의 인물, 그리고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당대 신문들의 평가를 재조명하며, 보수와 진보 언론 양극단의 평가를 비교해왔다. 여기서 ‘어떤 평가가 옳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전면 배제한다. 판단은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동시에 ‘과잉 이념’의 시대에 지쳤을 독자들에게 맡길 예정이다. 이번 열 번째 ‘옛날신문 보기’는 2004년 주 5일 근무제다.
1992~2004년. 주 5일제 도입 과정
주 5일제 도입은 일과 학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다. 1992년 삼아약품이 국내 최초로 이를 도입했다. 반면 학교에 적용되기까진 시간이 더 걸렸다. 1996년 시‧도 교육청별로 선정된 시범학교를 대상으로 주 5일 수업제가 본격 운영됐다. 같은 해 기업들은 조금 더 앞서갔다. 1996년 8월 3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일반 대기업 △금융계 △언론‧출판계 등에서는 토요 격주 휴무제가 이미 정착 단계에 있었다.
국내‧외에서 주 5일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쯤, 한국은 IMF를 맞았다. 다시금 제도가 부상한 것은 경기가 회복되던 2000년이었다. 노동절을 앞두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주 5일제를 요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긍정 검토할 것을 지시하면서 수용 의지를 보였다. 5개월간의 진통 끝에, 노사정위원회는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합의문을 채택했다.
합의가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단계적 도입이냐 즉각 전면 도입이냐, 임금 보전이냐 삭감이냐 등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권은 2002년부터 토요 휴무제가 실시됐으며, 공공기관은 2004년이 돼서야 받아들였다. 학교는 2005년부터 매월 2‧4주 토요일마다 쉬었다. 2012년 모든 토요일이 휴일이 되기 전까지, 학생들은 ‘놀토(노는 토요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국민의 일주일을 바꾸려는 이유
주 4일제 도입을 바라는 이들은 20여 년 전 주 5일제를 찬성하는 입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찬성하는 이들은 ‘삶의 질’을 중요 가치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긴 노동시간이 곧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work-life balance)
“노동 시간을 줄여 노동자와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자.” - 2000년, 민주노총
“주 4일제가 생산성과 삶의 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 2021년, 조정훈 의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 중 하나다. 2019년 기준 OECD 평균 대비 1년에 241시간, 한 달에 20시간 더 일한다. 2007년 이전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근로시간 감소 추세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 5일제 도입되던 당시에도 긴 노동 시간이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긴 노동 시간이 높은 노동생산성을 의미하지 않았다. 한국생산성본부는 구매력평가(PPP) 기준 환율을 적용한 노동생산성을 발표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6개국 중 27위에 불과했다.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높지 않은 국가였다.
조정훈 의원은 “장시간 노동은 더 이상 노동생산성과 연관이 없고, 오히려 노동자의 건강과 행복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21년 전 <동아일보> 역시 같은 입장을 담았다. 6월 1일자 신문에는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의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기업경영의 효율성 향상, 그리고 지식 기반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위해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필요하다”는 주장이 실렸다.
<한겨레>는 제도 도입 후 달라진 직장인들의 풍경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자기계발‧봉사활동에 시간 쓰겠다”
주 5일제가 본격 도입됨에 따라, 늘어난 여유 시간을 김 과장처럼 봉사활동이나 공부에 쓰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는 각종 학원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금융과 공인중개사시험 사이트를 운영하는 유비온은 2001년 3만 명이던 수강생이 지난 달에는 그 열 배 수준으로 뛰었다고 했다.
(중략) 각종 레저와 스포츠 등 취미 활동을 함께 하는 직장인들의 모임도 증가세다. 그렇지만 노는 것에도, 공부하는 데에도 돈이 들기 때문에 주 5일제는 직장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위협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평균 월 소득의 13.6%인 23만3400원을 주 5일제에 따른 여가비로 지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 <한겨레>, 2004.07.02.
2. 세계적 흐름
“주요 선진국은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낮을 때 도입했다” - 2000년, 민주노총 위원장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 논의가 불붙었다” - 2021년, 조정훈 의원
주 5일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라가 망한다”, 즉 경제 규모 대비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보다 더 소득 수준이 낮았을 때 주요 선진국이 도입했다면 말이 달라진다. 이남순 위원장은 <동아일보>를 통해 “주요 선진국의 주 40시간 노동 도입 시점인 60년대는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낮았다”고 지적했다.
[금요대토론] 이남순-조남홍/근로시간 단축
선진국의 경우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추진됐는데, 고용 유지 및 창출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규모에 비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있는데 주요 선진국의 주 40시간노동 및 5일 근무제 도입 시점인 30년대나 60년대는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훨씬 낮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동아일보>, 2000.06.01.
일본은 우리보다 13년 일찍 5일제 수업을 도입했다. 초‧중‧고교는 1992년부터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을 휴교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엔 월 2회(2‧4주)로 확대했다. 일본 문부성은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 심신의 조화를 이룬 발달의 기초를 배운다”며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 4일제 역시 마찬가지다. 주요 선진국을 비롯해 일본에서도 전환이 시작됐다. 조 의원은 “이미 유럽은 주 4일제로의 전환을 시작하고 있다”며 “심지어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 시작돼 논의가 불붙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일부 기업에서도 주 4일제 또는 주 4.5일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국민의 일주일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
주 5일제 도입을 주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반대하는 이들 역시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했다. 대부분의 언론도 새로운 일주일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파장에 주목했다.
1. 토요일에 문 닫은 건물
토요일에 문 닫힌 건물은 당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각 언론은 토요일에 영업하지 않는 은행, 우체국, 동사무소 등으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의 눈] 은행 주 5일제 혼란 없다고?
은행들이 첫 토요 휴무를 한 6일. 주부 김모씨(40‧서울 서대문구 홍제동)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파트 관리비 가스요금 자동차세 등을 내기 위해 가까운 은행 지점을 찾았다. 그러나 ‘토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안내문만 붙여놓은 채 점포 문은 닫혀 있었다. 김씨는 문을 열고 있는 점포를 수소문하다 ‘서대문구청에 있는 은행 지점은 문을 연다’는 말을 듣고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떨어진 구청을 찾았다.
- <동아일보>, 2002.07.08.
우체국, 주민 불편 부채질
우체국이 격주 토요일에 일반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아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강원체신청은 이달부터 시작된 주 5일제 근무로 격주로 토요일에 일반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는다고 22일 밝혔다. (중략) 지용균(41‧춘천시 신북읍)씨는 “공공성을 중시해야 할 우체국에서 읍‧면‧동 지역에 격주로 토요일에 일반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는 것은 주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 <강원일보>, 2004.07.23.
2. 쉬는 날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
주 5일제 도입 후 자기계발 혹은 봉사활동, 레저‧스포츠에 대한 수요는 늘었으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바로 수요가 오히려 줄어든 업계다. <문화일보>는 ‘월화수목금 休休’ 시리즈를 통해 주 5일제가 달갑지 않은 사람들을 보도했다.
<월화수목금 休休-④‧끝> 택시기사 “토요일 승객 절반 줄어”
주 5일 근무제 시행으로 레저업체 등은 신바람이 난 반면 생계가 걱정인 상인과 택시업계, 일부 소외계층들은 주 5일제가 두렵기만 하다. 전북 전주시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최현교(44)씨는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로 택시 승객이 급감해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주말이면 도심이 텅텅 비어 택시 승객이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게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강원랜드가 있는 강원 정선군의 경우 토‧일요일에는 장사가 안 돼 아예 가게 문을 닫는 점포가 30% 가까이 된다. 공기업인 강원랜드 직원 가운데 1000명 이상이 수도권에 집이 있어 주 5일제가 확대 시행되는 다음 달부터는 공무원 휴무와 겹쳐 금요일 오후부터 상권 공동화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지소가 유일한 의료기관인 시골 무의촌 주민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충북도내 12개 시‧군의 93개 보건지소, 162개 보건진료소는 7월 2일 토요일부터 진료가 전면 중단된다.
- <문화일보>, 2005.06.30.
교회 역시 주 5일제를 ‘위기’로 봤다.
[목회현장] 이철재 목사 “주 5일 근무, 한국 교회 위기”
서울성서교회 이철재 목사(62)는 특히 주일성수 신앙이 점점 약해지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 목사는 주 5일제 근무가 확산되면서 유럽 교회들이 속속 문을 닫는 일이 발생했다면서 신앙의 기본이 충실하지 못한 성도들은 금요일 오후면 자동차를 몰고 시외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 <국민일보>, 2000.07.05.
또 한 번, 국민의 일주일을 바꿀 수 있을까?
21년 전 주 5일제 논의와 주 4일제에 대한 전 세계적인 흐름과 차이가 있다.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점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에 의해 단순 업무가 기계로 대체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인간들은 더 이상 오래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필연적으로 시대적 흐름은 근로시간 단축을 향한다.
기계로 대체된 일자리만큼의 새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면, 실업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만약 주 4일제를 도입하면서 지금처럼 월요일 혹은 금요일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추가 고용하게 되면, 일종의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해진다. 조 의원이 말한 “주 4일제가 당신에게 더 많은 일자리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단축된 근로시간으로 생긴 일자리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한 다양한 근로 형태의 기회가 활성화된다. 그중에서도 취약계층인 청년‧여성‧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취업자가 유입되는 이점만큼, 비정규직 대체율이 높고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이다. 삶의 질과 업무 효율이 향상되고, 가족과의 시간 혹은 자기계발 기회가 늘더라도, 줄어든 근무시간만큼이나 임금이 삭감된다면 그때도 주 4일제를 반길 수 있냐는 것이다. 이 논쟁은 한국에서 주 5일제 도입이 지연됐던 까닭이기도 하다.
한국경영자총협의회(경총)는 “임금 보전을 전제로 하는 주 5일제를 수용할 수 없다”며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월차‧생리휴가 폐지 △연장 근로수당 50% 삭감 △변형근로제 도입 △유급 주휴제도 폐지 △연차휴가 상한선제 등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노조는 “사실상 근로기준법을 전면 개악하자는 것이자, 주 5일제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 반박했다.
재계에서 “나라가 망한다”며 반대했던 이유엔 인건비 부담이 있었다. 경총은 법정근로시간 4시간 단축은 14%의 임금 인상 효과를 가져오며, 부수 효과까지 감안하면 전체 25~30%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반면 한국노동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2.8%의 임금, 7.2%의 노동비용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 전망했다.
그렇다면 주 4일제는 한국에 도입될 수 있을까.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는 없을까.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0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지금으로서는 주 52시간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근로시간 관련해 최우선 정책과제”라며 “주 4일제는 모든 사람들에 적용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사업체와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4일 일한다 해도 기업의 수익에 상관없고, 임금은 연봉 형태로 해서 삭감 없이도 노동생산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업에서만 얘기될 수 있다”며 “여전히 소득이 시간과 비례되는 저소득 근로자나, 건수마다 돈을 받는 플랫폼 노동자에겐 적용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