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조선의 평시서와 삼성웰스토리 논란
못된 상인에겐 저승사자, 올바른 상인엔 보호자 역할 중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평시서(平市署)는 조선 시대 시전과 도량형· 물가 등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시전에서 사용하는 저울과 물가의 통제와 상도의를 관장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특히 금난전권(禁亂廛權)이 엄격히 시행된 이후에는 각 시전의 판매 품목의 종류를 결정하고, 전매권 보호에 주력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평시서가 시전 상인의 고통을 호소하며 구휼을 청하고, 왕이 평시서를 통해 물가 폭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죄인 엄벌을 명하는 기록 등이 나온다.
<현종개수실록> 현종 11년 10월 8일 기사를 보면, 평시서 제조 서필원(徐必遠)이 각전(廛)의 시민들의 견디기 어려운 폐단에 대해 조목별로 진달하는 내용이 나온다.
“국가의 필요한 물건은 으레 모두 시장의 백성들에게서 취해 마련하니, 나라의 근본을 보휼하는 이런 모든 조치들을 서울과 외방에 일체 같이 시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외방의 민생은 이미 역을 면제받았으나 오직 이 시장 백성들만은 그 혜택을 입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절대로 잡역을 지워 독촉하지 마소서.”
서필원은 시전 상인들이 역(役)차별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을 호소하며 시정을 건의했고, 현종은 서필원의 말을 따랐다.
<영조실록> 영조 47년 4월 19일 기사는 영조가 인삼 등의 값이 올라 입는 폐단 등에 대해 하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영조는 “아! 탁지(度支)에다 1년에 세(貰)로 바치는 은(銀)은 수천 냥에 불과한데 한 사람의 사행(使行)이 가지고 가는 것은 거의 10만 냥에 가까우니, 옛날에도 이런 일은 결단코 없었다. 더구나 팔포(八包)는 본래 인삼(人蔘)이었는데, 그 인삼을 지탱할 수가 없어 남쪽과 북쪽에서 백사(百絲)와 정은(丁銀)으로 유천(流泉)을 만들게 됐으니, 아! 나라 가운데 몇 십만의 광은을 요수(遼水)로 흘려 보내게 하고 쓸데없는 당화(唐貨)를 짐바리에 가득 싣고 돌아오니, 이것이 어찌 나라를 위하는 원대한 도리이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영조가 말한 팔포(八包)는 의주 상인에게 홍삼을 가지고 중국에 가는 사신을 따라가서 무역하게 하던 것을 말하며, 선덕(宣德) 연간에 상역(象譯)의 반전(盤纏:여비)조로 1인당 80근을 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하던 일이다.
또한 “내가 바로 사치를 금지하는 장본인으로 내가 일찍이 비단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몇 년 동안 내려오면서 그 값이 높게 뛰어올라 전인(廛人)이 폐해를 입고 있는데, 그 폐단을 제거하려고 하면 그 근본을 바르게 하는 것이 마땅하니, 하나는 근년에 가정(加定)한 역원을 줄이는 것이며 하나는 저들이 만약 값을 높게 정하면 포장한 것을 풀지 말고 본래 포장한 대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고 지시했다.
영조는 “또 듣건대 요즈음 하교로 인해서 명주값이 벌써 올랐다고 하니, 이것으로 관찰해 보면 이 영(令)은 임금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전인(廛人)에게 달려있는 것이므로 역시 근본을 바르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평시서에 이를 위반한 자를 귀양보내라는 명을 내린다.
두 가지 사례를 보면 평시서는 물가 감독 주무 관청으로서 상인 보호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판단된다. 즉 평시서는 매점매석과 같은 불공정한 상거래를 감독하면서도 상인 보호도 주요 업무였던 것이다. 평시서는 못된 상인에게는 저승사자였지만, 올바른 상인은 보호했던 상호균형을 생명으로 삼았던 기관인 셈이다.
최근 공정위가 삼성전자 등 4개 계열사에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과징금 2349억 원을 부과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과징금이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도 뉴스거리지만 사내 급식 사업에 칼날을 겨눈 공정위의 결정에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계에선 삼성의 일감몰아주기가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의혹과 과도한 시장개입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또한 정작 소비자인 삼성직원들이 급식에 만족하고 있는 데 뭐가 문제냐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재 삼성이 공정위와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대응방침을 밝히고 있어 삼성웰스토리 논란은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