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조선의 적폐 면신례(免新禮)와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 대한민국서 사라져야 할 적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별 볼 일없는 인간들이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쓸데없이 괴롭히곤 한다.
옛말에도 이런 인간들을 조롱하는 안자지어(晏子之御), 낙정하석(落穽下石)과 같은 사자성어들이 있다. 안자지어(晏子之御)는 변변치 못한 지위나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기량이 작은 사람을 일컫는다. 낙정하석(落穽下石)은 다른 사람이 재앙을 당하면 도와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재앙을 주는 갑질을 말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은 허참(許參)과 면신례(免新禮)가 있었다, 원래 허참(許參)은 새로 출사(出仕)하는 관원이 구관원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예(禮)를 말한다. 이는 이로부터 서로 상종(相從)을 허락한다는 뜻으로, 신관원(新官員)의 오만을 없애기 위한다는 관행이다. 면신례(免新禮)는 허참(許參) 이후 열 며칠 뒤에 다시 똑같은 행사를 치러는 것으로 이를 해야 비로소 구관원과 동석(同席)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신고식이다.
하지만 허참(許參)과 면신례(免新禮)가 본래의 뜻이 변질돼 고참들이 신참들을 괴롭히는 갑질이 됐다고 한다.
<명종실록> 명종 8년 윤3월 11일 기사에 따르면, 사간원에서 신래를 침학하는 폐단을 없애도록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간원은 “신래(新來)를 침학(侵虐)하는 것은 ‘새로 과거에 올랐거나 선비로서 처음 서사(筮仕)한 자를 신래라 하는데, 이 신래를 갖은 방법으로 침학하고 괴롭히니 습속(習俗)이 이와 같았다”며 “나라에 정법(定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로 더욱 심해져서 떳떳한 관습으로 됐으니 지금 통절히 개혁하지 않는다면 폐단을 구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는 “승문원·성균관·교서관에서는 2∼3일 후에 허참례(許參禮)를 행하고 4∼5일 후에 면신례를 행하는데 그 사이에 연회(宴會)를 요구하는 폐단을 일체 혁파하여 영원한 항식(恒式)으로 삼고 법을 범하는 자는 법에 따라 치죄할 것이며, 기타 내금위(內禁衛)·별시위(別侍衛)·우림위(羽林衛)·겸사복(兼司僕)·제사 습독(諸司習讀) 등과 새로 배속된 인원이 있는 곳에서 신래를 침학하는 사례가 있으면 모두 법에 따라 치죄하소서”라고 간청했다. 이에 명종은 이를 윤허했다.
최근 우리 기업 내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됐다고 한다. 정부도 지난 2019년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법‘을 전격 시행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했다.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인 사례는 △차별대우 △ 특정인에 대한 힘든 업무 반복적 부여 △근로계약서 등에 없는 허드렛일과 업무 배제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 행사 △욕설이나 위협적인 언사 남발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 흡연, 회식 참여 강요 등이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노동자에 대한 폭행,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제일약품’ 등에 대해 특별감독을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특별감독 결과, 제일약품은 총 15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이 적발됐다. 직장 내 성희롱 조사 과정에서 익명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한 직원의 11.6%가 본인 또는 동료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본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3.9%가 최근 6개월 동안 한차례 이상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최근 3년간 전·현직 직원 341명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 금품 15억여원을 체불한 사실이 적발됐다. 특히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에 대한 시간 외 근로 금지 위반, 근로조건 서면 명시 위반 등도 확인됐다.
안전보건공단이 밝힌 자료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산업재해자는 최근 3년(2016년~2018년) 131명으로, 지속적인 증가하는 추세다. 성별로는 ‘여성’이 77명(58.8%), 연령별로는 ‘30대’ 45명(34.6%), 근속기간별로는 ‘6개월 이상 5년 미만’이 87명(66.4%)으로 재해자 분포가 높았다. 그중 88명(67.2%)은 ‘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및 적응장애’, 33명(25.2%)은 ‘우울병 에피소드’ 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발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제기되자 사안의 중요성, 대학 측의 조사상황 등을 고려해 관할 지방노동관서는 사실 확인 등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선정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적폐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더 이상 아까운 생명을 잃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혁과 의식 개선에 만전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