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책임보다 문책에 방점 찍는 尹정부, 나사 빠져 보여” [풀인터뷰]
박성민 前청년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사회적 약자 위한 결과물 내고파…‘권력자 의지’ 중요” “정치 냉소하던 때 반성…탄핵 後 ‘적극 개입자’ 다짐” “보통 사람의 삶과 괴리 큰 정치권, 성장하는 길 낼 것” “이슈 위한 자극·무책임 발언 안돼…역사 앞 책임져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지훈 기자, 김자영 기자]
1996년생 박성민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은 4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활발한 정치활동을 이어왔다. 2020년 8월 이낙연 지도부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발탁돼 ‘파격 인사’로 주목받았고, 문재인 정부 말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 1급 청년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시사저널>이 선정한 차세대 리더 정치인으로 3년 연속 선정된 그의 정치 행보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다수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동하고 있는 박 전 비서관은 인터뷰 당일에도 아침방송에 출연하고 왔다. 주 5~6개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했다. ‘이슈 체크는 언제 하느냐’는 기자 물음에 “매일 주요 언론사 뉴스는 당연히 챙겨 보고, 특히 사설을 꼼꼼히 읽어본다”고 답했다. 대학생 신분인 그는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눈 뒤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시사오늘>은 지난 9일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박성민 전 비서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청년보다 ‘정치권’ 바뀌어야…‘등 돌리게 한다’는 문제의식서 출발”
“청년 문제 선거때만 두드러져, 정치적 목적 기용…대변 포션 작다”
“정책 요구, 단발적 이슈 파이팅에 그쳐…‘장기적‘ 고민 조직 필요”
시작은 ‘청년 정치’에 관한 질문이었다. 박 전 비서관은 ’청년들로 하여금 정치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권 스스로의 문제’를 지적했다. ’정치권 내부 자정작용’ 필요성도 강조했다.
- 청년은 사회적 약자인가.
“약자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보면 선거기간 외에 청년 관련 어젠다가 두드러지는 경우는 잘 없다. 청년 인사도 정치적 목적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의 생각을 읽어주고 대변하는 계층의 양적 포지션이 작다. 청년 문제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정치권이 얼마나 신경 써서 관리하느냐’ 생각해 보면 잘 다뤄지지 않고 있다.”
-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해법이 있다면.
“기본적으론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확대가 중요하다. 당에 청년 어젠다, 청년 정책을 꾸준히 고민하고 개발할 팀도 필요하다.”
- 정부와 당은 청년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
“문재인 정부 때 국무조정실에 청년정책조정실, 국토부·금융위 등 9개 부처에 청년전담조직이 신설됐다. 당의 경우 국토 전문위원 등 상임위별 정책 전문위원들은 있지만 청년 정책을 장기적으로 고민하는 조직은 없다. 이건 다른 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 안에 이슈 파이팅을 해야 된다는 니즈는 분명히 있다. 단발적 구호보다 장기적 정책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왜 전문위원 신설이 안됐나 생각해 보면 ‘청년 정책’이 하나의 상임위가 소관 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어서다. 주거 문제는 국토위, 제도 문제는 행안위 등으로 나뉜다. 컨트롤타워를 세우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시각이 있다. 동의하나.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10대 때 겪은 세월호 참사, 20대 때 있었던 대통령 탄핵 사건 등을 보면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온라인 소통 채널을 통해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접하고 있다.”
- 무관심하단 시각은 왜 나올까.
“나는 ‘정치 스스로 청년들이 등을 돌리게끔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청년보다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더 크게 갖고 있다. ”
- 정치권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정치권 스스로 자정작용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서 던지는 어젠다가 청년 삶과 맞닿아야 하고, 정보 전달도 여러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개인의 책임에만 맡길 문제는 아니다. 당 차원에서 의원들과 워크숍 등 교육을 하지만, 내부결속이나 단합에 목적을 둔 경우가 많다. 당이 어떻게 더 좋은 자원으로, 정치인을 교육하고 배출해 국민들에게 돌려드릴 수 있을 것이냐.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청년 비서관 제안, 직급 모르고 수락…비판만큼 책임감 느껴”
“응당 할말 해도 사안따라 소구력 달라…청년·여성 이슈 소비多”
- 1급 비서관 발탁 당시 ‘낙하산 논란’이 있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처음 비서관직 제안받았을 때 직급을 모르고 수락했다. ‘청년’ 관련 정책을 다루는 분야나 온라인 소통팀에서 일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검증 진행 과정에서 알게 됐다.”
- 비판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비판만큼 책임감이 컸다. 나에 대한 평가가 적절한가 아닌가는 내가 언급할 부분이 아닌 것 같다. 주어진 직책의 권한만큼 부담감도 큰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땐 일하는 데 집중하려 노력했고, 돌아보니 쉴 틈 없이, 원 없이 일했더라.
민주당 청년대변인 시절엔 ‘메시지 정치’ 비중이 많았다. 정책을 바꾸거나 할 현실적 수단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일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청와대는 정책을 만들어 다루고 조정하는 경험을 하게 해줬다.”
- 청년 정치는 프레임일까.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3~4년 정치하는 동안 ‘청년정치인’이란 이름표가 붙었다. ‘청년정치인’이라면 청년 문제만 다루고 고민해야 한다거나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고정적 이미지, 세간의 기대가 있었다. 그 이름표가 활동 폭을 좁힌다는 생각도 했다.”
- 실제로 어떤 애로점을 겪었나.
“청년 또는 여성 문제에 대해 발언했을 때는 소비되는데 정치 전반에 관한 발언을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응당할 말을 했을 뿐인데. 사안 따라 소구력 자체가 다른 거다. 그 외의 문제에 대한 시각을 밝힐 때는 발언권을 얻기 어렵더라.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청년정치인 역할이 정의되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냐 아니냐에 따라 판단이 갈리는 문제도 있다. 복합적인 것 같다.”
- 이점은 없었나.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흐름과 함께 새로운 기회가 생길 때도 있다. 이건 장점이 된다. 청년 정치가 정치권에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으면 정치가 바뀌는 데에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치의 다양화도 이뤄지고.”
“‘의견 수용되느냐, 아니냐’ 떠나 ‘자기 의사’ 밝힐 수 있어야”
“중요할수록 정치적 표현 남겨…의원·당직자·원외인사와 상의”
“‘이러면 나 안해’ 식 생각 해본적 없어…책임있는 자세 아냐”
- 당정에 소신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정 경험을 공유하자면, 의견이 받아들여지냐 아니냐를 떠나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최고위원 시절에도 회의 때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비공개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실제 경험을 들려준다면.
“회의 과정에서 ‘이건 아니지 않나’ 생각되는 지점도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거나 ’내가 의사 표현 안 하면 자기 전에 생각날 것 같다’ 싶은 순간. ‘대세, 당론이 그러하다면 내가 따르겠다’고 할 수 있는 의제가 있고 그럴 수 없는 의제가 있다. 후자의 경우 강하게 반대하거나 사전에 미리 의견을 밝혔다.”
-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했나.
“회의 때는 물론이고 들어오고 나가는 길목에서 마주칠 때 이야기하기도 했다. 전화 통화, 언론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을 생각했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정치적 표현을 남기려고 많이 노력했다. 회의에서 ‘씨알도 안 먹히겠다’는 기류가 읽히면 외부 인터뷰 등으로 의견을 내보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원하던 결과까지 얻진 못해도 ‘일각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던데, 지도부 의견은 어떤가’ 묻고 들을 수 있으니까.”
- 세대 간 격차를 줄이는 데 특별히 기울인 노력이 있다면.
“청년 정치인일수록 자기 의견을 이야기해야 되는 순간이 있다.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하는 것이지 기성 정치인과의 관계를 무조건 좋게 유지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편견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배울 점 많은 선배들이 있다. 내가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선배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때도 있었다. 여러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다.”
- 의견 관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소신을 관철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 말 한마디가 법이 되고 지침이 되는 권력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당 대표도 선출직도 아니고. 하지만 어떤 순간이 오면 다양한 수단을 고민해서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반영시키려고 노력했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당직자, 원외 청년들과도 상의해가면서.
내가 속한 환경이 나에게 불리한 게 사실이지만, 이곳의 생리를 빨리 파악하고 ‘내 이야기가 힘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회의 때 ‘이런 식이면 나 안 해’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정치인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적을 가진 정치인에겐 정당 내부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현 최저 주거 수준, 1인 약 4.2평…‘주거기본법 개정안’ 통과 시급”
“자립준비청년·영케어러 청년 취약 계층 관심…정치, 개선 기여해야”
- 청년 현안 관련해 가장 시급한 입법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청년 문제 중에서도 주거 문제를 꼽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내가 숨 쉴만한 공간인가’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주거기본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 우리나라에 ‘국민이 살아야 하는 주택 최저 수준’은 1인 가구 기준 약 4.2평(14m2)으로 굉장히 좁다. 이 기준만 넘으면 사실상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지난 7월 ,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해 7월, 주거면적 상향과 주거환경 기준 등 최저주거수준을 구체화 한 ‘주거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현재 통과되지 않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신 의원과 심 의원 모두 현재 1인 가구 최저 주거 기준의 약 2배 되는 면적을 기준으로 설정하자고 말했다.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 ‘자립준비청년’ 정책에 관심 가졌던 것으로 안다.
“원래 관심이 있었다. 자립준비청년을 포함해 영 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년), 청년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 관련 사안 등에 주목했었다.”
- 이유는 무엇인가.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이 지위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지 않나. 가정과 사회 등에서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청소년·청년 세대인 이들의 삶을 꾸려가는 데 정치가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
“정책 형성 과정에서 예산 문제가 부딪친다. 필요한 부분을 부처 회의에서 강력하게 주장했다. 자립준비청년 케어 센터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간담회도 했다. 실질적 지원에 대해선 기관 종사자, 학계 등 다양한 채널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 어떤 과정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의 필요를 가장 잘 알게 됐나.
“현장, 정계, 학계 모든 곳에서 배웠다. 학계에 있는 분들도 현장 사례를 적극적으로 연구한다. 현장 당사자에겐 ‘주거지원 서비스 활용이 어렵진 않나’, ‘실제로 도움이 되냐’, ‘더 필요한 건 없냐’ 등을 묻고 피드백을 들었다. 특히 ‘정서적 유대감’이 필요하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고,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모두 관심 많은 사안이었다. 상황이 맞았다.”
- 정무 경험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은.
“정치관은 되려 강화됐다. 정치 역할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나는 정치의 본령이 사회적 약자 등 취약계층을 살피고 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청와대에서 스스로 일을 만드는 내 모습을 보고 평균적 청년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 많은 사람임을 확신하게 됐다.”
- 현장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예산안 책정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모든 요구에 돈을 배정할 수 없다. 때문에 깎기 쉬운 부분부터 깎는다. 인원이 적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정책 예산. 뭘 깎느냐는 굉장히 정치적인 싸움이다.
이 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와 청년 편을 들어주는 것, 권력자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경험을 하게됐다. 청와대와 기재부의 소통,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권력자들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재명 계양 출마 명분 부족…당 대표에 이어 보궐 출마는 과욕"
"현 시점서 당대표 책임론 무의미…‘민주당’ 위한 단일대오라 생각”
대화는 당내 문제로 들어왔다.
- 지난 재보궐 선거 당시, 이재명 대표의 출마를 반대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나.
“명분 없었다. 대선 후보를 지냈던 인물이고 아쉽게도 졌다. 이재명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충전의 시간이라 생각했다. 꼭 본인이 살던 지역으로 출마할 필요는 없지만, 활동한 적 없던 계양을에 출마한다는 것이 그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정치인으로 선택도 아쉬웠다. 당대표가 될 것이라 점쳐지는 상황에서 보궐 선거까지 나설 필요 있었나. 좋지 못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은 ‘단일대오’ 태세를 취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해서 ‘단일대오’ 태세를 취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표에 대한 공격을 넘어서 민주당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단일대오를 형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재명 대표’만을 위한 단일대오가 아닌 ‘민주당’을 위한 단일대오다.”
그는 이 사태가 당 대표 개인이 아닌, 당에 대한 공격임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다. 어쨌든 원팀 정신이 만들어지면 여러 생산적 의견까지 나오지 못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비롯해 당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단일대오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본다.”
- 이재명 대표가 개인의 문제를 당 전체의 문제로 끌고 간 것을 두고 책임론에 목소리가 실리기도 한다.
“현재로썬 이 대표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이 됐다. 전선이 너무 넓어졌다. 일각에선 현 상황을 예측하고 전당대회 당시 이재명 후보가 나서지 말아야 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것이야말로 현시점에서 무의미한 얘기다. 본인이 나오겠다고 했고 선택을 받았다. 지난 일에 매달리기보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를 봐야 한다.”
정치인 박성민에 대해
“정치, 탄핵 정국보며 생각 바뀌어”
“어떤 활동이든 가능성 차단 않을 것 ”
- 정치 입문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 가진 것은 아니다. 기자 아니면 선생님을 하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난다. 공적인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거다. 직접적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마치고 1년간 다녀온 해외 봉사를 통해서다.”
그는 대학생 시절 해외로 봉사를 다녀왔던 1년이 자신의 분기점이라고 회상했다.
“해외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2년 동안은 빨리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금전적으로 빨리 독립하고 싶기도 했고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얼른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가 우선순위에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선 대기업 인사팀에 취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턴을 했는데, 업무가 생각과는 달랐다. 진로가 크게 흔들렸다. 취업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하던 중 문득 허탈감이 들었다.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게 나한테는 너무 좋은 일이지만, 정말 그렇게 살다 죽으면 되는 건가’ 생각했다. 멕시코에서 해외봉사를 하던 중 ‘공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중 정치로 진로를 틀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은 정치에 냉소적이었으며 탄핵 정국을 거치며 심정의 변화가 생겼다고 밝혔다.
“2017년 멕시코에 해외봉사 갔을 때 탄핵이 인용됐다. 전부터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도 탄핵이 안 될 거라고 봤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굉장히 열심히 정치에 참여해서 변화를 만든 거다.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고, 부채감도 느꼈다. ‘앞으로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어보려 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보면 냉소적으로 바라봤고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도 생각했다. 정치의 의미에 대해 몰랐다. 근데 그게 완전히 깨졌다. 가치관에 큰 변화가 왔고, 정치를 바라보는 태도도 변했다.
남은 생 동안에는 정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적극적인 개입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으며 이유를 하나하나씩 쌓아갔다.
‘젊은 정치인이 왜 이렇게 없을까’ 고민도 하고, 국회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괴리가 크다는 생각도 했다. 평범한 사람도 정치할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 아닌가. 당 안에서 차근차근 성장하는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에 한국에 돌아와 당원 가입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정치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생 위원장 한 1년 정도 하던 중 우연히 대변인 오디션이 열렸다. 그렇게 청년 인재로 선발돼 청년대변인을 맡았다.”
- 청와대는 어떻게 들어간 건가.
“여러 명의 추천이 있었다고 들었다. 흔히 떠도는 말로 ‘한 명이 추천한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라고 하더라.”
- 롤 모델이 메르켈 총리라고 들었다. 한국에는 없나.
“롤 모델을 한 명으로 특정하기 어렵다. 정치인 한 명 한 명 저마다의 장점이나 특징이 다르다.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우연한 기회로 책이나 영화를 통해 그의 생각을 접했는데, 정치적 어젠다를 다 떠나서 불의를 참지 못하는 태도를 배웠다.
기초단체장 3선을 연임한 의원으로부터 지방자치에 대한 관점과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전략’을 짜는 데 능한 의원도 있다.
메르켈 총리를 꼽은 이유는 그 사람의 정치가 ‘결과를 보여주는 정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성급한 정치가 아닌, 국민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했다고 생각했다.”
- 양당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을지로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 그들의 활약을 눈여겨봤었다. 사회적으로 크게 불거진 문제 등을 보면 당사자 옆에 항상 을지로위원회가 있더라. ‘저 정당은 정치의 역할이 뭔지 아는 정당이다’ 싶은 생각에 민주당을 택했다.”
박성민 전 비서관은 정당을 고르는 기준을 “정책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부터 정의당까지 다 놓고 정책 비교를 했다. 정치란 현실적으로 결과를 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서, 너무 빠른 주장이나 너무 느린 주장, 또는 너무 자유를 강조하는 주장에는 크게 동의할 수 없었다.
민주당에 왔던 이유는 개인의 다양성을 보존해 준다고 여겨져서다. 여러 의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고 어느 정도의 힘에, 을지로 위원회 활약도 있었고, 그렇게 들어가게 됐다.”
- 윤석열 정부 6개월을 평가한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나사 빠진 정부 같다고 생각한다. 어디 하나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설프고 잘 안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말도 안 되는 실수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실수를 하지’ 의문스러웠다. 대통령은 국정 동력은 임기 초에 가장 크다.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하다못해 어젠다라도 던져볼 수 있는 상황인데 딱히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현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도 그렇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지겠다’라는 모습보다 경찰에 대한 문책 쪽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았다. 대통령으로서 해야 될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나 의문이 든다. ‘정부가 있긴 한 거냐’는 말이 들려오지 않나. 자유를 이야기하는데, 모든 것을 다 자유에 맡긴다면 ‘국가는 왜 있고, 정부는 왜 있는가.’ 되묻고 싶다.”
- 앞으로의 ‘박성민 정치’에 대해 듣고 싶다.
“아직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는 단계다. 약자에게 힘이 되는 정치를 하고 싶다. 약자를 생각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그들에게 힘이 되는 정치를 하겠다는 말이다. 그만큼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구호 외침, ‘이래야 된다’라는 식의 주장에 그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협상과 대화, 사회를 개혁하고 싶다면 힘을 써서든 사람을 모아서든 해내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은 약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데에 쓰고 싶다.”
- 한 줄로 요약하자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치’인가.
“그렇다. 그게 바로 박성민 브랜드. 정치가 하나의 모양만은 있는 건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소신 있게 정치해야 된다고도 생각하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내가 한 발언이 역사의 죄가 되는 발언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많은 정치인들이 ’역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발언해야 하지 않을까.
책임감 없는 발언만 일삼거나 이슈 한번 돼보겠다고 하는 자극적인 발언 말고, 자기가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발언에 대해서 본인이 역사 앞에 책임을 진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 않게 정치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정치를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제언 한마디.
“뭐가 됐든 본인의 정치 방향과 맞는 정당을 하나 고르라는 얘기를 한다. ‘나중에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가 생겼을 때 정치 해야지’라고 하면 또 그때 가서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처음 주변에 ‘정치하고 싶다’는 뜻을 표했을 때 ‘변호사 자격증 따고 해라’ 아니면 ‘40대, 50대 돼서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빠른 정치가 꼭 좋은 정치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 때, 이 문제의식이 희미해지기 전에 정치해야 후회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당에 대해 고민하고, 직접 활동하며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당 안에서 역할을 맡고, 정치를 배우고, 이 길을 계속 갈 것이냐 말 것이냐에 판단도 해볼 수 있다. 그렇게 ‘정당의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경험들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