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께 드리는 편지…‘당원 지지 못받는 당대표, 가당키나 한가요?’ [與 당권 레이스]
국민의힘 당권주자① 유승민 전 의원 확장성에 강점 있지만 당원 외면 극복이 숙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본 기사는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인사들의 강점·약점 분석을 토대로 작성된 편지 형식의 기사입니다. 기사 형식상, 일반적 기사와 달리 존칭을 사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편집자주>
유승민 전 의원님께.
의원님. 얼마 전 의원님이 차기 전당대회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매우 반가웠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우리 정치가 극한 갈등 구도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늘 ‘합의의 정치’를 말하며 중도보수 노선을 걷던 의원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2015년,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의원님이 했던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기억합니다. 이때 의원님은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 정치가 이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한다”며 여당에서 ‘볼드모트’ 같은 취급을 받던 세월호 참사를 용기 있게 언급했지요.
또 한쪽은 성장, 한쪽은 복지만 이야기하던 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를 깨고 ‘성장을 말하는 진보당, 복지를 말하는 보수당’의 필요성도 주장했습니다. 공무원 연금개혁, 보육개혁, 중부담 중복지,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 등의 비전과 실천 방안도 내놓았습니다. 연설을 들으면서 가슴이 뛰더군요. ‘정말 이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이 연설은 의원님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께 ‘배신의 정치’로 저격당하고, 가시밭길을 걷는 원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가슴이 뛴 사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의원님은 중도층은 물론 진보층에도 어필하는 정치인으로 떠올랐습니다.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지요.
이념적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번져가는 지금,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철학을 고수하는 모습은 우리 정치인들이 꼭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의원님이 중도층에 어필하고,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괜찮은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의원님이 당대표가 되면, 국민의힘은 분명 중도층으로부터 꽤 많은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될 겁니다.
지난달 21일로 기억합니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17~19일 실시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를 보니 의원님이 36.9%로 1위를 차지했더군요. 특히 무당층에서 41.2%, 민주당 지지층에서 58.3%의 지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중도층에 가장 어필할 수 있는 후보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의원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결과는 뭔가 좀 이상합니다. 만약 의원님이 국민의힘은 물론, 무당층과 민주당 지지층에서 모두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위 조사에서, 의원님은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13.6%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습니다. 26.5%를 얻은 나경원 전 의원님은 물론, 15.3%를 획득한 안철수 의원님보다도 낮았습니다.
정치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견이 같은 사람들을 모으고 세력을 넓히는 작업입니다. 정당의 사전적 의미도 ‘정치권력 획득을 목표로 정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결합한 정치결사체’지요. 다시 말해 의원님이 국민의힘에서 외면당하고 무당층과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는 건 의원님이 몸담을 정당을 잘못 찾았다는 의미거나, 비슷한 철학을 공유하는 동지들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빈약한 정치력의 소유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의원님을 막으려고 전당대회 룰을 바꿨다고 하셨지요.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김기현·장제원 의원님 말에도 동의가 됩니다. 당의 주인은 당원입니다. 그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당대표가 가당키나 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원칙적으로, 당대표는 당의 주인인 당원이 뽑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지요.
저는 의원님이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원부터 설득해서 그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게 당대표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아니겠습니까. 자꾸 당 밖의 지지자들에게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럴 거면 당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당을 차려라’라는 반박에 뭐라고 답하시렵니까.
당대표든 차기 대선 후보든, 의원님이 목표한 바를 이루려면 당원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비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과거 한나라당의 ‘소장파’들이 그랬듯이, 비판을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 ‘따뜻한 쓴 소리’를 해야 합니다. ‘비윤(非尹)’이 되더라도, 자신의 입지를 위한 비윤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한 비윤이 되십시오. 2015년 원내대표 때 그랬듯이 말입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봐도, 의원님이 윤석열 정부와 각을 세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8개월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당원들도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를 찾을 시기입니다. 이준석 전 대표의 탄생은 정권을 또 한 번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릅니다. 당원들은 파격보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할 당대표를 원할 겁니다.
중도층의 지지를 지켜내면서, 의원님께 등 돌린 당심을 되찾아 오십시오. 압니다. 힘든 길일 겁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길이 가장 옳은 길이고, 지름길은 경력을 망치는 길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설득하다 보면 머지않아 당원들도 의원님의 진심을 알아줄 겁니다. 지난 대선이 마지막 정치적 도전이라고 하셨지요. 마지막을 각오했던 그 마음으로, 멋지게 불꽃을 태우는 모습 기대해 보겠습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