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과 저출산 정책 그리고 전략부재 [기자수첩]

전략 정렬되지 않으면 정책은 무용지물…윤석열 정부, 같은 방향 보며 나아가고 있나

2023-03-28     정진호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출산율

경영전략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 정렬(alignment)이다. 기업 전체 목표와 개별 부서가 같은 방향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따로 놀지 말라’는 거다.

단순한 얘기다. 예컨대 CEO가 기업 이미지 제고를 목표로 삼았다고 하자. 그런데 인사관리부서는 효율에만 집중해 직원들을 무차별 해고한다. 마케팅부서는 눈앞의 판매량에 눈이 멀어 거짓광고를 해댄다. 이러면 목표가 달성될 리 없다.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본질적으로 국정운영과 기업경영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각 부처는 그 비전과 목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모두가 같은 곳을 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걱정스러운 건 이런 이유다. 3월 8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치 기록을 경신한 데 따른 지시였다.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이를 키우는 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아이를 돌보는 일이 ‘고통’이 되지 않으려면, ‘시간’은 필수 요소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칼퇴근’ 한다고 해도 육아에 필요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출퇴근 시간을 빼면 집에 돌아와 식사하고 수면을 취하기도 빠듯하다. 여기엔 아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 상황에서 출산은 엄청난 ‘각오’가 동반되는 ‘모험’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저출산 대책 마련을 지시하기 이틀 전인 3월 6일. 고용노동부는 주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물론 이 정책에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1년 내내 주 69시간을 일하라는 의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법에 규정된 출산휴가나 연차마저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정부의 발표는 기업들에게 근로시간 연장을 허가한다는 ‘신호’로 읽힐 가능성이 충분했다. 출산율 제고와는 상충되는 방향이다. 이틀 만에 정부 내에서 전혀 다른 목표가 제시된 셈이다.

이 부처 저 부처가 각자 최선의 방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각각의 정책들이 같은 쪽을 보고 정렬되지 않으면 절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최고의 노꾼들이 있어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저으면 배가 나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답보를 풀 수 있는 건 조타수의 리더십과 올바른 선택이다. 한 달여 후면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1년이 된다. 더 이상 우왕좌왕해선 안 된다. 이제는 명확한 비전과 리더십으로 성과를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