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주의, 그리고 갑질 을질 병질 [황선용의 In & Out]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심리학자인 허태균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심리적 근간은 관계주의에 있다고 했다.
관계주의란 ‘타인의 취향이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바꿀 준비가 돼 있는 관계지향적인 삶의 태도’라고 정의된다.
관계주의를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바로 이것이다.
회사에서 또는 어떤 조직에서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과장 A가 B라는 제안을 내놓는다. 이때 상급자인 상무 C가 내 생각은 D가 맞다고 보는데 라고 한다면, 이때 A는 재빠르게 “다시 생각해보니 D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이러한 행태가 관계주의의 전형적인 예이다.
또 다른 케이스로 직원 3명이 중식당을 찾아 자장면, 짬뽕, 볶음밥을 각각 주문했다. 이때 중식당 사장님이 “같은 것 시키면 빨리 나오는데”라는 한마디를 하자 조금 전까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고심 끝에 골랐던 직원 3명은 “그럼 자장으로 할까?” “그래그래 자장으로 하지 뭐” 하면서 중식당 사장의 의중대로 따른다. 이런 흔하디흔한 모습 또한 관계주의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관계주의는 포지티브적 측면에서는 한국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고정된 틀에 박힌 것에서 벗어나 사고의 유연성과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의 재빠른 적응력 등을 통해 국가 위기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의 근간이 됐기 때문이다.
나의 주장과 관점은 있지만 언제든지 그 사람 또는 조직을 위해서 자신의 주장이나 시각을 접을 수 있는 사고와 판단의 유연성이 줏대 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결과적인 면에서 순기능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주의 속에서도 개인 간의 갈라치기나 계급 간의 차별 등은 더욱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질’이라는 폭력이다. 이른바 갑질, 을질 그리고 병질 등이 그것이다.
진보계열의 귀화 외국인 교수인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비굴의 시대의 출판기념회장에서 갑질과 을질, 그리고 병질에 대한 얘기를 한 바 있다. 갑질 피해를 입은 을이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병에게 패악질 하는 을질로 발전하고 병은 다시 자신보다 낮다고 판단되는 곳에다가 병질을 하는 한국 사회의 비굴함을 꼬집은 바 있다.
관계주의의 순기능이 왜곡되고 변질돼 나타나게 된 갑질, 을질 그리고 병질은 어쩌면 강요된 관계주의의 폐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이와는 별개의 문제로 처분될 여지도 적지 않다.
관계주의와 함께 수반되는 관점은 바로 주체성이다.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는지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것이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라고 허태균 교수가 주장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내가 누군지 알아?” 식의 과몰입 된 주체성의 발호가 갑질과 을질 등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관계주의의 시작부터 단추를 제대로 다시 꿸 수 있는 지혜와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본다.
상대방의 의견을 언제든지 수용하고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배제할 수 있는 유연성을 뜻하는 관계주의가 네거티브화 돼버려 아부나 아첨의 심리적 베이스가 되지 않도록, 일본의 집단주의적 상하복종의 문화로 비약되거나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가벼운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보자. 개인인 나 자신과 부하직원의 주체성도 높이고 관계주의의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회의 자리에서 “과장 의견은 그렇지만 내 의견은 이렇네.. 하지만 과장 의견대로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말하며 직원의 주체성을 높여주고, 식당에서 주인장이 같은 것을 주문하면 빨리 나온다는 팁을 주더라도 “그냥 주문대로 해주세요” 하면서 집단적 강요된 관계주의의 실행을 막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아니 특히 한국 사람들은 비좁은 북한산 백운대 봉우리 앞에서 단체로 모여서 그곳에 다녀왔음을 입증하기 위해 단체 사진을 찍는다. 이미 백운대 봉우리 따위는 관심 밖이 돼버렸고, 그 시간, 그 자리에 내가 왔음을 입증하는 것이 등산 최대의 목적이 돼버린 것이다. 결국 사진 속에서는 백운대 봉우리의 비석과 태극기는 부속품이 돼버렸고 남는 것은 단체 사진 속의 각양각색의 등산복을 입은 자신들뿐이다.
이러한 과몰입된 주체성은 이제 일상적 성향이 돼버렸기 때문에 없애고 자시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제는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우리들 성향에 대한 수술을 할 필요가 있다. MZ세대가 유별난 것이 아니다. MZ세대가 기성세대에 앞서 관계주의에 대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한 것뿐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과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안보정책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북오도청 (이북오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연구원과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비서관, 보좌관 등을 지냈다. APEC기후센터(APEC Climate Center) 경영지원실장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근위병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