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 “같은 비상구 사건, 다른 대처” [편슬기의 니편 내편]
아시아나항공, 동일 사건 예방 차 ‘비상구 좌석’ 판매 금지 제주항공 관계자, “비상구 열 좌석 판매 금지 계획 없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편슬기 기자]
기업들의 PR 활동이 활발한 시대다. 새로운 서비스, 제품 출시부터 각종 선행과 기부 소식은 단 몇 분이면 온 매체와 커뮤니티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기업 중심의 일방향적인 소통은 큰 호응을 얻기 힘들다. 소비자의 시선으로 들여다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이에 칭찬할 점이 있으면 마땅히 ‘편’ 들어주고, 잘못했다 지적할 점은 풍자와 유머를 곁들여 날카롭게 찌르자는 취지로 [니편 내편] 코너를 준비했다. 코너명의 '니(너)'는 본래 '네'로 표기해야 하지만 친근함을 위해 니로 표현한다. 〈편집자 주〉
최근 두 항공사에서 항공기 비상구(출입문) 개방 시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동일한 사고였으나 결과는 달랐다. 사고 이후 항공사의 대처도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지난달 26일, 제주에서 대구으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기의 비상구가 대구공항 상공 224m 높이에서 강제로 개방됐다. 이어 지난 19일에는 세부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항공기에서 출입문을 강제로 개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비상구 사건 당시 30대 남성 이모씨의 난동으로 항공기에 탑승한 초등학생 9명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많은 승객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씨는 대구항공 착륙 후 공항 1층 대기실에 머무르던 도중 “승객이 비상구 출입문을 열면 불법이냐”라는 질문을 했고, 이를 수상히 여긴 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이후 지난 21일 대구지검 공공수사부(서경원 부장검사)는 비상구를 강제 개방한 이모씨를 항공보안법 위반 및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사건이 발생한 아시아나항공기는 비상구 강제 개방으로 외부 비상구 탈출용 슬라이드가 떨어져 나갔다. 수리에만 항공사 추산 약 6억4000만 원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로 발생한 손해는 모두 이씨에게 구상 청구될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에어서울은 유사 사건 방지를 위해 A321-200 기종의 항공기 비상구 열 좌석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해당 기종은 좌석에서 손을 뻗으면 비상구 레버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놓여있다. 그만큼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승객의 돌발 행동에 민첩한 대처가 어렵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 및 항공보안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단순히 비상구 열 좌석 판매 금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비상구 열 좌석을 비워뒀다가는 유사시 승무원을 도와야 할 승객의 부재로 인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제주항공의 항공기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다. 두 사건이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기종에 있다. 사건이 발생한 제주항공의 항공기는 이륙 후 내부에서 임의로 출입문을 열 수 없게 설계된 ‘보잉737’ 기종이었기 때문. 그 외에도 내외부 기압 차이로 인해 출입문을 열수 없는 상태기도 했다.
출입문을 개방하려 한 김모군(18)의 이상 행동을 눈여겨본 승무원의 직업정신도 빛을 발했다. 김모군은 탑승 직후 기내를 불안한 듯 지속적으로 두리번거리고 출입문을 열면 어떻게 되냐는 등의 질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사고로 항공사들의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 충분히 승무원의 경계를 불러일으킬 만한 지점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기내 승무원이 해당 승객의 이상 행동을 면밀하게 지켜봤고 신체 이상을 호소하자 승무원이 바로 대응할 수 있는 좌석으로 이동 시켰다”며 “이후 출입문에 다가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고 곧바로 승무원과 승객들에 의해 저지 당했다. 제압된 승객은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4시간의 비행 중 3시간 동안을 구금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승무원의 기민한 대처로 자칫 발생할 수 있었던 기내 혼란을 예방하고 비행 대부분의 시간 동안 타 승객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빠른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앞선 관계자는 “비상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승무원들의 훌륭한 대처가 가려지는 게 사실 좀 안타깝기도 하다. 승무원들은 유사시 사법 경찰 및 보안 요원 역할을 맡아야 하기에 관련 교육도 이수하는 등 항공 보안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항공은 비상구 열 좌석 판매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판매 금지 조치가 근본적으로 위험 예방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항공보안 전문가들이 사고 발생 시 비상구 열 좌석에 앉은 승객이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과 동일하다.
여행 수요는 계속 증가 중이며, 곧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있다.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1만 피트 상공 위, 폐쇄된 공간에서 승객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장과 승무원뿐이다. 그런 점에서 크게 번질 수 있었던 혼란을 사전에 진압한 제주항공 승무원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