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개혁신당 겨냥했을까? [김자영의 정치여행]

DJ 지지자, 이회창 15대 대선 낙선 위해 이인제 유세장 찾기도 이낙연 합류, 민주당 위협 가능성↑…분열 후 ‘재입당’ 문의 늘어

2024-02-23     김자영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개혁신당으로

15대 대선 열기로 뜨거웠던 1997년. 김대중(DJ) 대 이회창 양강구도는 갑작스러운 이인제의 등장으로 판세가 바뀌었습니다. 

시작은 1997년 7월 21일. 이회창은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인제를 2300표 차로 꺾고 대선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누구도 이회창 대세론을 꺾지 못할 거라 보던 그때, 이회창의 두 아들에 대한 병역 비리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그의 장남과 차남이 체중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야권의 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은 이를 두고 끊임없이 공세를 폈습니다. 

병역 비리 의혹은 이회창의 ‘대쪽 판사’ ‘강직함’ 이미지에 큰 금을 냈습니다. 전당대회 직후 이회창의 지지율은 급전직하했지만 김대중은 30%에 육박하는 고정 지지도를 유지했습니다. 이때 이인제가 다시 대항마로 떠오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이인제는 9월 13일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대선 독자 출마를 선언합니다. 

그의 출마는 여당에 더 큰 위협이 됐습니다. 이인제 지지층과 이회창 지지층이 크게 겹쳤기 때문입니다. 우려대로 보수 표심이 나뉘고 김대중 후보가 40.27%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회창과 이인제는 각각 38.74%, 19.20%를 얻었습니다. 결과와 관련해 이인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여당에 충분히 승산이 있었을 거란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이인제 후보 본인도 지지도가 상당한 수준이지만 당선권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회창 측에서 제안한 후보 단일화 협상 자리에 나오지도 않을 만큼 출마 의지가 강력했습니다. 이유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당시 단일화 협상을 추진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증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인제 후보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어요. 알고 보니 마음이 바뀐 거예요. 며칠간 유세를 하며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서 이인제 후보가 당선을 확신하게 됐다는 얘기가 전해졌어요.”

“인기에 힘입어 독자 출마 쪽으로 굳힌 거였네요.”
기자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야당 후보였던 DJ 측이 유세장에 사람을 보내고, 후원금을 통해 독려하는 등 이인제 후보를 띄워 이회창 후보의 표를 잠식하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고….”

- 2020년 12월 24일 자 <시사오늘> 기사 ‘[時代散策] 박관용 “野, YS만큼 용기와 결단 있는 지도자 절실”’

대선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때, 이인제(IJ)의 유세 현장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고 전해집니다. 박 전 의장은 또한 2016년 8월 5일 <시사저널>에 연재된 ‘박관용 회고록’에서 “DJ가 부산은 물론 외지의 지지자들에게까지 총동원령을 내려 IJ 유세장에 나가도록 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DJ가 IJ의 중도하차를 막기 위해 엄청난 인파와 환호로 IJ를 흥분시켰고, 그 계산이 맞아떨어졌다”고 기록했습니다.

선거로부터 20여 년이 지나고야 나온 증언이었습니다. 암암리에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방증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킹메이커>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야당 사람들을 여당인 것처럼 분장시켜 유권자에게 제공한 와이셔츠와 고무신 등을 도로 뺏고, 야당이 제공한 것처럼 다시 나눠주며 선거 판세를 바꾸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사건의 전모가 후에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정치권엔 특히나 각종 ‘배후설’ 등 설들이 난무합니다. 

최근 민주당 공천을 두고 의정평가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정성평가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그 이전 테러 등 중차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색출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최근 개혁신당 당원들이 이낙연 측 새로운미래와 합친다는 소식에 빠르게 이탈했다가 지난 20일 다시 갈라서자 재입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에 대해 물밑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일부 존재합니다. 이를 두고 소위 반페미니즘 성향의 20대 남성의 이탈이란 분석이 중론처럼 여겨지지만, 반윤(反윤석열) 기치에 공감한 진보 성향, 민주당 지지층이 가담했을 거란 의견입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준석만 간판으로 있는 개혁신당이라면 국민의힘에 더 위협이 되겠지만, 이낙연과 합하면 민주당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변수 사이에서 민주당 지지층이 움직여 개혁신당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편’을 위해 상대편 경쟁자를 지원하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여야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 정치 상황을 75년간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 봤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에 찾아 뵙겠습니다. <편집자주>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