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에겐 ‘감성’이 필요하다 [기자수첩]
인간은 감정적 존재…이성과 논리가 능사 아냐 이성과 논리 위에 감정 더해져야 소통도 빛 발할 것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제22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역사적으로 여당이 총선에서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선거 결과는 예상 밖입니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선거 패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당이 ‘역대급’ 참패를 당한 만큼, 가장 큰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윤 대통령 책임’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는 건 정부여당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지난 2년간 윤 대통령의 행보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논리’입니다.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직후 곧바로 대선에 뛰어들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 대통령은 철저히 논리에 맞춰 사안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합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응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장관 역시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의 답변도 같은 맥락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른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사법기관이 진상 규명을 하는 것인데 진실을 왜곡해서 책임 있는 사람을 봐주고 책임 없는 사람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수사 당국에서 국민 여러분께 상세한 수사 결과를 설명할 것이다. 그것을 보고 만약 국민들께서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먼저 특검하자고 주장하겠다.”
법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따지면 윤 대통령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습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이었습니다. 특별검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검은 수사 자체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거나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을 때 도입하는 제도입니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해도 늦지 않고, 오히려 그 쪽이 더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언행이 ‘법조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라는 점입니다. 법조인은 논리라는 무기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명백하고 의도적인 부정이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문제없음’이란 결론을 내립니다. 감정이 끼어들 영역 없이, 철저히 이성적인 법적 프로세스를 따릅니다.
하지만 정치는 다릅니다. 최근 논문에 따르면, 정치적 가치판단을 내릴 때 우리 두뇌에서는 편도체와 뇌섬엽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편도체와 뇌섬엽은 감정적인 부분을 처리하거나 위협을 느껴 공격적인 반응을 나타낼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입니다. 정치적 가치판단은 이성보다 감성의 영역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은 논리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혹자는 ‘A사건과 B사건은 완전히 동일한데 왜 A사건만 주목하느냐’고 따지기도 합니다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이성과 논리로 모든 걸 설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정치를 ‘종합 예술’이라고 하고, 정치가 어려운 겁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아직도 ‘법조인 DNA’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안을, 윤 대통령은 ‘이성과 논리’로 해결하려 합니다. 바로 이 괴리가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여당의 총선 참패로 이어졌는데도 별다른 변화는 없어 보입니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은 소통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성, 논리, 팩트’ 중심의 소통이 과연 국민의 마음에 와 닿을 것인지 우려스럽습니다. 지난 기자회견에서 그 우려의 편린이 드러난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국정 운영은 이성과 논리의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국민의 뜻이라는 미명 하에 이뤄진 감정적 결정들이 장기적으로 국가를 몰락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사례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감정적 동물입니다. 백 마디의 옳은 말보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움직이는 게 인간입니다. 차갑고 건조한 팩트 나열보다는, 그 위에 온정을 담아 전달하는 노력이 있어야 윤 대통령의 ‘소통’도 빛을 발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