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 ‘ESG 경영’의 위선 혹은 모순? [르포]

유통업계, 경쟁적 ‘팝업스토어 마케팅’ 유행 팝업스토어, ‘ESG’ 반하는 폐기물·소음 ‘심각’ “평균 일주일 진행…쓰레기는 1t 이상 나와”

2024-06-27     김나영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아침에 출근하면 항상 ‘팝업스토어 철거 중’이에요. 시끄럽기도 하지만, 쌓여있는 폐기물을 보면 이게 맞나 싶고. 속상할 지경입니다.”

성수동 직장인 이진아(33, 가명) 씨는 최근 들어 출근길이 스트레스다. 2년 전부터 성수동 일대가 ‘팝업스토어 성지’로 떠오르면서 매일 아침 폐기물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소음은 덤이다.

팝업스토어는 임시 매장을 뜻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할 때 건물이나 공간 등을 빌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통상 일주일, 길면 한 달간 ‘반짝’ 열고 사라진다.

최근 1~2년 사이 팝업스토어는 젊은 층에게 하나의 ‘문화’가 됐다. 위치 기반 주변 팝업스토어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될 정도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팝업스토어’ 검색량은 2016년 1785건에서 지난해 1만463건으로, 7년 새 486% 증가했다. 시장조사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성인 남녀 1000명 중 75.6%가 팝업스토어 방문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유통업계는 이런 유행에 편승해 경쟁적으로 팝업스토어를 여는 추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단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게 중요하고, 팝업스토어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 했다.

식품업계

서울 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쉽게 팝업스토어를 찾을 수 있지만, 성수동은 그야말로 ‘성지’에 가깝다. 올해 5~6월 성수동에서 열린 주요 팝업스토어 진행 건수를 살펴봤더니, 최소 월 20건은 훌쩍 넘었다. 분야는 명품, 식품, 화장품 등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기간은 대개 일주일 안팎, 짧으면 단 이틀만 진행하는 기업도 있었다.

팝업스토어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는 동안 부작용도 커졌다. 바로 ‘폐기물’이다. 업계에선 약 10평 대 팝업스토어 하나가 낳는 쓰레기가 최소 1t 이상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 통계에 의하면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성동구 사업장의 일반폐기물 배출량은 2018년 51.2t에서 2021년 334.6t으로 늘었고 2022년엔 518.6t까지 뛰어올랐다. 5년간 약 10배 오른 것이다.

기자는 직접 ‘팝업 쓰레기’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4일 오후 성수동 일대를 찾았다. 성수역 3번 출구, 이른바 ‘팝업스토어 거리’. 그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성수이로나 연무장길 거리엔 무신사, 로에베, 더샘 등 수많은 기업들의 팝업스토어를 만날 수 있었다. 팝업스토어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장사진을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성수이로18길 한가운데엔 전날까지 진행된 농심 팝업스토어 ‘새우깡 어드벤쳐 인(in) 고래섬’도 있었다.

홍보 포스터 속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폐허만 남아있었다. 행사가 막 끝난 때문인지 현장은 각종 쓰레기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플라스틱 장식용품이 바닥 한편에 쌓여있거나 널브러져 있었고, 나무나 고철로 만들어진 대형 설치물도 눈에 띄었다. 해당 팝업은 지난 5일부터 23일까지 총 18일간 진행됐다.

팝업스토어 폐기물은 산업 전반에 확산 중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최근 기후 위기에 공감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ESG 경영 공시가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도 오는 2025년 2조 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거래소에 ESG 경영 정보를 자율 공시한 기업 수는 161개사로, 전년 131개사 대비 23% 증가했다.

‘공장형’ 팝업스토어는 쓰레기 문제가 더 심각하다. 공장형 팝업스토어는 대개 공간은 크지만 기업 측이 직접 인테리어를 진행해야 한다. 그만큼 인테리어에 사용된 폐기물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공장형 팝업스토어의 인기는 꾸준하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100~200평 공간을 하루 200만 원에 빌릴 수 있는데, 이는 인테리어가 이미 돼 있는 팝업스토어보다 약 5배 이상 저렴하다.

인근 부동산에서 근무하는 공인중개사 A 씨는 몇몇 공장형 팝업스토어를 소개하며 “이곳들은 모두 꾸준히 계약이 이뤄지는 곳”이라며 “인테리어가 가능하고, 임대료를 아끼고 싶은 기업들이 많이 선택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팝업스토어가 철거될 땐 1t 트럭이 3대씩 와 있다”며 “쓰레기 문제는 최근 논의가 많이 되고 있지만 큰 제지는 없는 상태”라고 했다.

쓰레기의 많은 ‘양’만이 문제는 아니다. 팝업 폐기물은 일주일, 짧으면 단 며칠 동안의 행사들이 만들어낸다. 평균 일주일 간격을 두고 ‘폐기물 배출 사이클’이 만들어진 셈이다. A 씨는 “보통 1~2주 계약하는 기업들이 많고, 명품 브랜드나 대기업은 한 달 동안 장기 임대하기도 한다”며 “최근엔 3~4일 진행 문의도 많다”고 했다.

이어 “날씨가 선선해지는 9~10월은 이미 팝업스토어 공간들이 다 계약이 차 있다”면서 “한 팝업스토어는 다음 달 계약 논의 중인 기업이 10곳에 달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팝업스토어로 공간 임대를 하려는 임대인도 많이 늘었다. 지난해엔 임대인이 한 명만 있었는데, 지금은 열 명 정도로 늘었다”고 언급했다. 

팝업스토어로 인해 시민들의 불편함도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성수동 주민 김철용(63, 가명) 씨는 “이 건물 저 건물 공사를 엄청 한다. 매일 아침마다 부수고 짓고 한다. 폐기물 처리하는 트럭이 매일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낮엔 소음 문제도 심각하다. 성동구에 소음 민원이 끊임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 자료를 확인한 결과, 성동구의 소음·진동 민원은 2020년 1860건에서 2021년 2478건으로 올랐고, 2022년엔 2631개였다. 3년간 약 41% 증가했다.

성동구는 지난 5월 팝업스토어 TF(태스크포스)를 구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9일엔 ‘성동형 팝업 매뉴얼’을 공개하기도 했다. 매뉴얼엔 팝업스토어 운영 시 미리 알아둬야 할 규칙과 정보들이 담겼다. 사전 안내함으로써 현재 도출된 문제점을 개선하고 성수동 상권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해 나갈 방침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폐기물의 양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무분별하게 배출한 폐기물은 배출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등 폐기물 자체 처리 원칙을 준수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논란을 뒤로하고 팝업스토어 마케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팝업스토어의 집객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수동과 더불어 또 다른 팝업 성지로 여겨지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경우 2022년 팝업 진행 건수가 210여 건이었지만 지난해엔 그 두 배가 넘는 440여 건에 달했다. 올 1~5월엔 170건의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백화점 측은 더현대 서울의 팝업 공간이 연간 200만 명의 유치 효과가 있다고 봤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팝업스토어 폐기물 논란 이후, 평소 친환경 이미지가 강했던 기업들은 인테리어를 최소화거나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친환경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한다”며 “팝업스토어를 안 하기는 힘든 상황이고, 지금으로선 행사 기간을 최대한 길게 잡는 방식으로 낭비를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