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유통 맏형’ 명성 되찾을 두 가지 전략은

오프라인 채널 기반 ‘버티컬’ 집중…‘신뢰성’ 차별화 뉴롯데 핵심 키워드는 ‘AI’…서비스 가시화는 ‘아직’

2024-07-02     김나영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서울

롯데그룹이 분주하다. 옛 ‘유통 맏형’ 명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다. 전략은 크게 두 가지, ‘신뢰성’과 ‘인공지능(AI)’이다. ‘믿을 수 있는’ 온라인 쇼핑 경험을 제공해 고객을 붙잡는 한편, AI를 선제적으로 활용해 ‘리테일 테크’ 산업을 선도하겠단 구상이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 이커머스 부문 롯데온은 신(新) 유통강자로 떠오른 쿠팡에 맞서 차별화 전략 세우기에 한창이다. 무기는 ‘버티컬 서비스’다. 버티컬 서비스는 특정 품목을 전문적으로 선보이는 플랫폼을 말한다. 롯데쇼핑은 백화점 매출 분석 결과 화장품, 명품, 패션, 키즈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판단, △온앤더뷰티(화장품) △온앤더럭셔리(명품) △온앤더패션(패션) △온앤더키즈(키즈) 총 4가지 버티컬 서비스를 잇달아 내놨다.

회사는 ‘잘하는’ 분야에서 ‘신뢰성’을 보여주겠단 계획이다. 그간 백화점 등 오프라인 채널에서 쌓아 올린 고객 만족 경험을 버티컬에 접목, ‘믿고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이려 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우리의) 차별화 전략은 ‘신뢰성’”이라고 했다. 이어 “일례로 쿠팡에서 쇼핑을 하면 가품이나 반품 상품이 올 수도 있다”며 “롯데온 고객들은 안심하고 온라인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화장품, 명품, 패션, 키즈 등 4개 버티컬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오프라인 채널에서도 해당 부문 매출이 높은 만큼 경쟁력을 갖춘 부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롯데가 또 다른 전략으로 삼는 건 ‘AI’다. 크게 사내업무, B2B(기업 간 거래),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로 가닥을 잡았다.

그룹은 지난해 9월 ESG경영혁신실 내 AI 태스크포스(TF)를 신설, 생성형 AI 플랫폼 ‘아이멤버(Aimember)’를 전 계열사에 도입해 수행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그 수가 6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유통군도 지난해 11월 자체 AI TF를 꾸려 AI 서비스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엔 생성형 AI 추진체인 ‘라일락(LaiLAC)’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했고, 3월엔 ‘AI 컨퍼런스’를 열어 구체적인 방향성을 논의했다.

다만, 회사의 이런 노력에도 ‘롯데표 AI 서비스’가 업계에 자리잡기까진 갈 길이 멀어보인다. 

롯데가 ‘AI 전환’에 전사적으로 힘을 쏟은 건 가까운 시일의 일이 아니다. 2017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AI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뉴롯데’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변화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답”이라며 AI 등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혁신’을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7년이 지난 지금, 유통 부문에서 롯데를 대표할 만한 AI 서비스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확보된 AI 기술을 활용해 업무 전반에 AI 수용성을 높이고 생성형 AI를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 기술 투자를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룹이 가장 최근 선보인 AI 서비스는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설치한 13개 언어 AI 동시통역 서비스 ‘트랜스토커’다. LED 디스플레이를 사이에 두고 외국인 고객과 안내데스크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서로 모국어로 말해도 AI가 실시간 번역한 내용이 스크린에 띄워진다. 해당 서비스는 롯데가 아닌 SK텔레콤이 기술을 맡았다.

롯데 관계자는 AI 서비스 관련, “방향은 잡아놓긴 했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단계”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내부적으로 AI 서비스 전략을 크게 사내업무, B2B, B2C 세 가지로 가닥 잡고 개발 중이나 적용이 어려워 언론에 노출될 정도는 아니다”라며 “AI라는 게 선험적으로 개발에 성공할 거라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분야”라고 언급했다.

그는 앞서 지난 3월에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사업화 내용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면서 “AI 기술로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 등을 기획하는 단계이며 어떻게 어떤 사업을 추진할지, 언제쯤 서비스가 출시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업계는 롯데 등 기존 유통대기업이 빨리 성장하거나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로 인사 체계 등 구조적인 한계를 꼽는다. 예컨대 쿠팡은 경영진들이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인 데 비해, 기존 국내 대기업 계열사 CEO는 길어야 임기가 3년 남짓이다.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은 구조적으로 쿠팡처럼 투자하기도, 성장하기도 어렵다”며 “쿠팡은 회장이 조 단위 손실을 감수하며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만, 기존 국내 대기업은 계열사별 계약직 CEO를 채용하는 만큼 2~3년 임기 내 성장성이 보장된 사업을 위주로 추진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롯데쇼핑 매출은 연결기준 14조5559억 원을 기록, 어느덧 쿠팡(31조8298억 원)과 2배 넘게 격차가 벌어졌다. 당시 쿠팡은 영업익 6174억으로 설립 13년 만에 첫 흑자를 기록했는데, 전년 대비 31.6% 오른 그 해 롯데쇼핑 영업익 5084억 원보다 컸다.

쿠팡은 올해 1분기 매출도 전년보다 28% 늘어난 9조4505억 원을 달성, 국내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