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發 유사금융은 어떻게 통했을까”…금산분리가 필요한 까닭 [고수현의 금융속풀이]

2024-08-06     고수현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티몬·위메프의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면 벌어질 수많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금산분리법은 최근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규제 완화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지포인트 사태와 티몬·위메프 사태를 잇따라 겪으면서 이커머스(전자상거래)가 PG(전자지급결제대행업)사를 겸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업에서는 완화의 대상이 된 금산분리 원칙이 비(非)금융권에 확대 적용되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이죠.

티메프 사태는 해당 플랫폼을 통해 물건을 판매한 셀러들이 회사로부터 판매대금을 정산 받지 못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소비자들이 결제한 금액은 티몬과 위메프에 흘러갔고 말그대로 ‘증발’했습니다. 소비자와 셀러들을 연결해주는 중계 플랫폼에 불과한 티몬과 위메프가 정산대금에 관련한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정산지연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때까지 소비자들과 셀러들은 물론 금융당국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모회사인 큐텐그룹과 구영배 대표의 부실경영입니다. 하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미정산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 알 수 없던 규제 사각지대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커머스 규제는 엄밀히 말해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입니다만, 책임소재에서 금융당국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티몬과 위메프 등 일부 이커머스 업체가 본인 자산이 아닌 정산대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은행 등 금융업의 경우 고객예금과 은행자산은 엄격하게 분리돼 있죠.

반면 현재 PG를 겸영하는 이커머스의 경우 수수료 절차 편의를 이유로 셀러들에게 지급할 정산대금을 1~2개월 보유하면서 이 기간 정산대금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소위 ‘돌려막기’ 형태로 정산대금을 사용해도 밖에서는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해당 대금이 금융기관에 안전하게 보관된 게 아니라 이커머스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정산 지연이 일어나기 전까지 금융당국이 깜깜이였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큐텐그룹의 공격적 M&A, 즉 다른 기업 인수 자금에 정산대금이 활용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나옵니다. 정말 M&A 자금으로 활용됐다면 소비자들의 돈이 문자 그대로 ‘눈 먼 돈’처럼 취급된 셈이죠.

이커머스가 PG 겸영을 통해 유사금융 행위를 하는 이상 제2의 티메프 사태는 언제고 재발할 여지가 있습니다. 정산대금을 지금처럼 쌈짓돈으로 쓸 수 있다면요.

이에대한 대책으로 나온 게 이커머스와 PG사의 분리입니다. 이커머스 업체가 PG업무를 겸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티몬과 위메프처럼 자체적으로 PG사를 겸하는 주요 이커머스는 네이버, 쿠팡, 롯데쇼핑, 지마켓, 11번가 등이 있습니다. 네이버쇼핑과 쿠팡의 경우 자체 PG사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한 바 있죠. 티메프의 PG 겸영이 특이한 사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들 업체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면 제2의 티메프 사태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따라 이커머스 업체가 정산대금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현재의 정산 구조를 바꿀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은행 등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에 정산대금을 맡기고 관리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에스크로(escrow)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에스크로 서비스는 전자상거래 과정에서 판매자와 구매자의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 제3자가 중개해 금전 또는 물품을 거래하도록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다만 현행법상 이커머스의 에스크로 도입은 의무화돼 있지 않아 업체의 판단에 도입 여부가 달려있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온 이커머스 정산대금 사태 후폭풍은 금융권도 강타하고 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도 물건 또는 서비스를 받지 못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권이 피해 부담을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사와 은행을 비롯한 전통 금융권은 물론 PG사들도 티메프발 폭풍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신용카드사와 PG사는 대금을 받지 못할 리스크를 안으면서 고객에게 환불조치를 하고 있고 선정산대출을 통해 저리로 돈을 빌려준 은행들 역시 상환기한을 늘리고 이자를 면제해주면서 판매사들의 피해를 일부 부담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하소연이 나올만 합니다.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는 금융권이 규제 사각지대인 이커머스에서 터진 정산대금 사태에 소방수로 동원된 격이니까요.

그동안 당국은 뭘 했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현 사태 해결은 물론 재발방지 대책 수립이라는 과제를 정부가 떠안은 셈입니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자체 PG사를 겸영하는 이커머스의 정산구조를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이커머스 정산대금 현황을 파악하고 금산분리 원칙 적용을 통해 문제 해결이 가능한지 여부를 가늠하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됩니다.

이번 티메프 사태는 규제를 받지 않은 유사금융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커머스 피해는 셀러들뿐아니라 소비자, 금융권에게까지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금산분리(金産分離)’, 이제는 금융권에서 완화의 대상이 된 낡은 제도가 업계에 적용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이커머스 업계가 자초했는데요 이커머스 업계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신뢰회복을 위해서라도 금산분리 및 금융당국의 감독이라는 이름의 방울을 스스로 달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