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차에 보조금 주고, 평가도 강화…전기차 화재 대책 통할까 [권현정의 이런E저런E]
지난해 개정 자동차관리법 내년 2월 시행…승용차도 배터리 사전 평가 충전기로 BMS 정보 받아 과충전 방지…보조금으로 완성차 호응 확보 완성차 호응도 여전히 ‘불명확’…BMS 평가 아직은 ‘부가 정보’ 수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에너지(Energy) 업계 내 ‘이 사람 저 사람’(이런 이 저런 이)의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들을 그러모아 한데 꿰어보려 합니다. 손에 안 잡히는 수치나 전문용어로 가득한 설명문보다는, 사람의 목소리로 전했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이는 현장도 있지 않을까요.
지난 1일 인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로 정부가 전기차 안전관리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는 모습입니다. 정부는 내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완성차에 배터리 관련 데이터 공유 유인을 제공해 화재 예방책도 확대한단 계획입니다.
다만, 일각에선 한계가 있을 거란 목소리도 나옵니다. 여전히 일부 대책은 실현까지 시간이 더 걸리고, 완성차의 협조가 없다면 반쪽짜리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내년 2월부터 전기 승용차 배터리 ‘사전’ 평가…완속충전기로 BMS 정보 활용 화재 예방도
정부가 지난 13일 관계부처 회의를 거쳐 전기차 화재 예방 긴급 조처를 발표했습니다. 완성차에 전기차 특별 무상 점검, 탑재 배터리 정보 공개 등을 권고하고,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의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긴급 점검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물론 이번 사고 이전에도 정부는 전기차 안전 관련 대책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란 것입니다. 지난해 8월 개정돼 오는 2025년 2월 시행되는 새로운 자동차 관리법이 대표적 예입니다.
해당 자동차 관리법은 배터리 이력관리제, 배터리 안전성 사전인증제 등을 담고 있어 관리 고도화에 기여할 거란 기대가 나옵니다. 세부적으로 자동차 등록원부에 배터리(구동축전지) 식별번호를 기재하고, 전기차 배터리는 사전에 안전성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간 전기 버스는 사전에 공공이 시행하는 안전인증을 거쳐야 출고가 가능했지만, 전기 승용차는 자체적인 안전 시험을 통과하면 출고가 가능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지금 전기 버스는 배터리 안전과 관련해 사전인증제인데, 전기 승용차는 자기인증제입니다. 자기인증제는 제조사가 자기 기준에 맞춰 안전 조사를 하면 정부는 사후관리를 하는 개념입니다. 이제부턴 버스나 승용차나 정부 기관이 먼저 안전 인증을 하고, 인증 받은 차만 출고할 수 있도록 하겠단 겁니다.”
내년부터 국내 자동차 안전도 평가 프로그램 케이앤켑(KNCAP)에 BMS 관련 조건도 신설합니다. 전기차 내 배터리 모니터링 프로그램인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 미비가 화재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BMS는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충전 중단 등 차량 작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배터리 셀 이상뿐 아니라 BMS 이상으로도 화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발생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사고는 원인으로 BMS 이상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BMS 관련 안전 조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간은 전기차 안전조사 체계 내 BMS 관련 안전 기준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는데요. 이를 신설한단 겁니다.
화재예방을 위한 BMS 데이터의 공공 공유도 진척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화재 예방이 가능한 완속충전기 신설 시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 등에 따르면, 해당 충전기는 충전 시간동안 BMS의 전압, 전류, 온도, 데이터 등을 받아서, 이를 공공 서버로 전송합니다. 서버는 확보한 데이터를 통해 셀 이상을 진단, 필요시 충전 제어 명령을 다시 충전기로 내보내게 됩니다.
이같은 시스템이 확보되면 당장의 과충전을 막으면서, 향후 유사 사고 사례를 막는 방법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란 기대가 나옵니다. 김성태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협회장의 말입니다.
“정부가 데이터를 확보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도 밝히고, 문제 전조가 있을 때 사전 경고도 하겠단 거거든요. BMS 정보를 빅데이터로 쌓으면 유사 사고 사례 등에서 화재 원인을 밝혀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고요.”
해당 사업에서 선행돼야 하는 완성차의 BMS 정보 공유 허용은 추가 전기차 보조금을 통해 확보한단 계획입니다. 그간 전기차 탑재 BMS가 모니터링 및 저장하는 배터리 정보는 대개 완성차가 확보하고 완성차 내부에서 활용돼왔습니다.
완성차가 보조금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호응하지 않으면 시행이 어렵지만, 다행히 반응은 긍정적이라는 게 환경부 설명입니다. 실제로 KG 모빌리티의 경우, 배터리 정보 제공이 가능한 차량 BMS 소프트웨어 등을 정부 출연 기관과 협력해 지난 7월 개발완료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의 말입니다.
“준비 기간이 필요한 만큼, 올해 보조금 조건을 신설하진 않습니다. 내년부터는 BMS 데이터를 공개할 때 전기차 보조금을 추가해 주는 걸로 계획돼 있습니다. 관련해 여러 완성차와 소통하고 있고,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배터리 정보 공유, 완성차 유인책 더 필요해…BMS 평가는 아직 제재 요인 아냐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여전히 대책에 구멍이 있단 겁니다.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 설치 사업의 경우, 아직 데이터 보관, 분석, 명령 송출 등을 담당할 서버는 확보 전입니다. BMS 정보 공개에 완성차들이 조심스럽게 대응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정부가 보조금과 함께 전송된 데이터 보안에 적극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김성태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협회장의 말입니다.
“지금 BMS 정보가 기업기밀이라고 해서 업계에서 공유를 꺼리는 게 있는데, 당연히 공적인 목적이라면 공유가 돼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다만, 데이터가 기업 기밀인 건 사실이고, 데이터라는 게 모이면 무서운 힘이 있잖아요. 정부가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공유가 돼야겠죠.”
BMS 관련 안전 평가가 여전히 출고 후 평가라는 점도 우려점으로 남습니다.
BMS 안전평가 항목이 추가되는 케이엔캡 평가는 차량의 출고 가부와 무관한 평가입니다. 전기차 현 이용자, 예비 이용자가 ‘더’ 안전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기존 안전기준보다 높은 수준으로 제품 안전을 평가하고 비교를 위해 안전 정보를 제공한단 취지의 제도일 뿐입니다. 요컨대, BMS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도 당장 전기차 판매 제재는 없는 겁니다.
물론 케이엔캡 적용을 통해 평가 데이터를 쌓은 다음, 향후 자기인증적합조사 등으로 BMS 평가를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관계자의 말입니다.
“BMS 안전기준을 만드는 시험을 자동차 안전도 평가(케이앤켑)를 통해 해볼 수 있는 거죠. 우선적으로 안전도 평가에서 적용 해보고, 안전 확보를 위해 이 정도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게 정해지면, 자기인증적합조사 기준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요. 케이엔캡 적용이 제재 기준을 만드는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는 셈입니다.”
한편, 정부는 오는 9월에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대책은 △지하 주차시설 안전강화 △전기차 배터리 및 충전시설의 안전성 강화 등을 중심으로 꾸려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