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式 김건희 측근 쳐내라…정동영 ‘정풍운동’ 데자뷔? [옛날신문보기]

정풍운동의 기억…尹韓 갈등, 권력 재편 예고 신호탄?

2024-11-09     유경민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경민 기자]

한동훈,그리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1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동 자리에서 김건희 여사 측근으로 지목된 이른바 대통령실 ‘한남동 라인’ 8명의 실명을 직접 열거하며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강하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후퇴를 언급하며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은 과거 정동영 의원이 ‘정풍운동’을 벌여 동교동계 권노갑을 물러가게 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이번의 대통령 측과 여당 대표 간 갈등 역시 권력의 재편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관측입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으며,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입니다. 그래서 <시사오늘>은 ‘옛날신문보기’를 통해 정동영의 정풍운동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권력을 둘러싼 전쟁의 시작...정동영의 정풍운동과 동교동계의 몰락


1990년 말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 정치는 민주화 이후 새로운 발전을 거듭했지만 부채와 권력의 남용, 비리 등의 과제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있었고, 이에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동영은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만들기 위한 개혁적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동영은 자신이 속한 김대중 정부하에서 정치적 부패와 비리 근절을 위한 정치적 쇄신과 청렴을 목표로 정풍운동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1996년 국민회의 대변인으로 정치권에 첫 발을 디딘 정동영은 2000년 16대 총선 직후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됐습니다. 2000년 초 당내 정풍(整風)운동을 주도하며 개혁 이미지를 당안팎에 각인시켰습니다. 그는 당내 파벌 문제와 구태 정치를 청산하고자 했고, 당 쇄신을 강조하며 젊은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고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기 위해 개혁적 정치인과 젊은 정치인의 역량을 모으는데 앞장서겠다.’
방송사 앵커에서 야당과 여당의 대변인으로 변신해 활약하다가 지난해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유일하게 40대 최고위원에 당선,정치시작 5년만에 뉴리더로 자리매김한 정동영 최고위원(48)의 새해 포부다.
정 위원은 지난해말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통령의 최측근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퇴진을 공개 거론,당쇄신의 기폭제 역할을 하며 일약 대중 정치인으로 발돋음했다.
정 위원은 ‘정치의 투명화와 디지털화,탈냉전화라는 새로운 비젼을 실현키 위한 내부 통합을 이루는데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권을 추구하는 구태정치를 청산하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준수되는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2001년 1월 4일<한국경제>기사 중 


하지만 정동영이 정풍운동을 선언하면서 당시 고참 정치인들과의 갈등 또한 커졌습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동교동계를 대표하고, 새천년민주당 내 오랜 세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권노갑에게 물러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달았습니다.
 

“권노갑 최고위원 측은 4일 엄청나게 격앙돼 있었다.한 측근 인사는 ‘정동영 최고위원의 면전 공격은 등 뒤에 비수를 꽂은 격’이라고 말했다. 권 최고위원은 그날 격분한 나머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으며 끓어오르는 속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주변인사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 2000년 12월 6일 <국민일보>기사 중 

정풍운동은 단순히 권노갑 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닌 동교동계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 도전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당내 입지가 좁아졌고, 권노갑은 정치적 압박 속에서 자진 사퇴하게 됐습니다.

이후 권노갑은 격분하며 정동영을 배신자로 간주했고, 정풍운동은 단지 당내 개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젊은 정치인들이 세력을 키우기 위해 자신과 같은 원로들을 배제하려는 정치적 술수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권노갑은 정동영이 자신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혀 동교동계를 몰아내려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개혁의 뒤편…권력의 갈등?


정동영은 정풍운동으로 인해 개혁적 리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개혁이 아닌 당내 주요 세력 간의 갈등으로 번졌고, 결과적으로 정동영과 권노갑과의 관계는 완전한 결별로 이어졌습니다.
권노갑에게 정동영은 주류를 위협하는 젊은 정치인이었고, 정동영에게 권노갑은 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세력으로 비쳤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개인적인 감정 대립을 넘어 정치적 세력 간의 충돌로까지 확산됐고, 이후 그들의 관계는 한동안 단절된 채로 남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정 위원의 청와대 발언 이후 동교동계 의원들은 공공연하게  ‘배은망덕하다’  ‘손 봐주겠다’는 등 배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 원내외 동교동계 인사들은 정위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심한 질책과 함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정위원측은 ‘어떤 일이 있어도 소신에는 결코 변함이 없다’며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 2000년12월12일<국민일보>기사 중 

 

 

 권노갑 퇴진 후... 정치적 현실


권노갑 퇴진 후 민주당은 정풍운동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당의 개혁과 쇄신 작업에 속도를 냈습니다. 당원 윤리 강화를 위한 규정 제정, 그리고 부패한 인사의 퇴출 등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민주당은 사회적 책임감 있는 정치를 내세우며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국민들과의 신뢰 회복을 위한 핵심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목표 아래 당내에서는 다양한 개혁적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어 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당의 이미지 회복과 국민적 신뢰를 되찾게 됐다는 평가도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 기간 당내 일부 구세대 인사들이 정치적 퇴진을 맞거나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에 따른 후폭풍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교동계가 오랜 세월 동안 민주당을 주도해온 세력인 만큼 이들의 몰락은 당내 권력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당장 권노갑 퇴진 이후 가속화된 당내 분열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여전히 구세대 정치인들 중 일부가 당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이들은 당내 전략적 방향이나 정책 결정 관련 개혁적 조치에 반대하며 새롭게 부상한 세대의 정치인들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당내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차원으로 중론이 모아지기 보다 개혁파와 구세력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역효과로 이어지고 만 것입니다. 
 

“민주당은 28일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초 재선의원들의 당정쇄신 요구 대책을 논의했으나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이 수습책 논의 지연에 반발해 퇴장하는 등 소장파와 지도부간의 갈등이 악화되고 있다.(중략)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대부분의 최고위원들은 초 재선의원들의 취지는이해하나 당 공식기구를 통하지 않은 성명발표 등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정 최고위원은 ‘성명발표는 당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에희망을 만들고 있는 것이며, 당 밖에선 우리 당에 새출발의 기회를 줬다고 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외국을 방문중인 개혁 성향 초재선 의원들이 28일부터 속속 귀국하고 있어 소장파측의 세규합 노력이 본격화될 전망이나 배기운(裵奇雲) 의원 등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당내 분란은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5월 28일 <동아일보>기사 중 


권노갑의 퇴진이 당의 개혁과 쇄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분열과 갈등으로 인해 장기적인 정치적 불안정성만 남은 겁니다. 결론적으로, 정풍운동은 민주당의 젊은 개혁파가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나 당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권력을 둘러싼 파벌 싸움은 개혁의 의도를 퇴색시키기 마련이며, 당의 구조적 개선과 통합적 비전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과거의 개혁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동영의 정풍운동은 결국 민주당 내 권력 갈등을 증폭시킨 것에 그치며 정치적 개혁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씁쓸한 결말을 보여줬습니다.

한편, 대척점을 상징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김대중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권노갑은 재작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정풍운동 때의 갈등 모두 “다 옛일”이라며 “정동영 의원이 사과했고 앙금을 털어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