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의, 방사청을 위한 ‘신중론’ [까칠뉴스]

방사청, KDDX 상세설계 사업 추진 내년 상반기로 미뤄 HD현대중공업 기본설계 수주 때 “밝혀지면 추가 제재” 장외전 부채질…업계 “잘못 인정할 때, 다음 단계 있다”

2024-12-02     권현정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HD현대중공업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전력화 사업 일정이 또 한 차례 미뤄졌습니다. 석종건 방사청장이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올해까지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내년 전반기에 빠르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겁니다. 당초 방사청은 올해 하반기까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에 착수한단 계획이었습니다.

방사청은 후속함 사업 일정을 단축하는 등 방안으로 군 납기를 맞출 수 있도록 한단 계획입니다. 다만, 우려가 듭니다. 석 청장이 같은 자리에서 “조금 더 신중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사업을 빠르게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덧붙였거든요.

KDDX 사업 관련 방사청 ‘신중론’의 역사는 지난 2020년 기본설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비위 혐의에도 HD현대중공업의 우협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해당 비위 혐의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해군 임원 등과 손잡고 KDDX 개념설계 보고서 등을 유출했단 내용입니다. 군사 및 민간 법원은 앞선 2018년부터 이와 관련한 수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이라는 선택지를 밀고 나간 건, 얼핏 과감한 선택 같아 보입니다. 다만, 속을 들여다보면 최종 선택을 뒤로 미룬 것 뿐이란 평입니다.

당시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의 기본설계 사업자 지위는 유지하되, 향후 판결문에 기업 차원에서 비위에 연루됐다는 점이 기입된다면, 추가 제재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화오션 입장에선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맡더라도, 자사에 상세설계 입찰의 기회가 남아있단 뜻으로 들릴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함선 상세설계 사업은 기본설계 사업자가 이어 가져가는 ‘수의 계약’ 방식이 관례인데, 경쟁사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으니까요. 실제로 방사청은 올해 초, 관련 유죄 판결에 따라, HD현대중공업에 무기체계평가 1.8점 감점을 적용하기도 했고요.

다음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 추가 제재 가능성을 둔 장외전이 점점 격화한 겁니다.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비위를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하자, HD현대중공업은 기업 수준 개입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에 한화오션은 경찰에 HD현대중공업 임원 대상 조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넣었고, HD현대중공업은 명예훼손이라며 다시 해당 고발에 대해 고소했습니다.

물론, 방사청의 선택에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으로 매각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거든요. 방사청 입장에선 변수가 생기면서 예상이 꼬인 겁니다.

이때라도 방사청이 실수를 인정하고 업계에 적절한 방안을 내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다시 신중해지는 데 그쳤습니다.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추가제재는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도 상세설계 사업방식을 경쟁입찰로 할지, 수의계약으로 할지는 고민해보겠다고 말한 겁니다.

방사청의 이같은 신중론은 최근 면피성 발언까지 겹쳐 더 큰 의구심만 사는 실정입니다. 최근 석 청장은 사업방식을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로 양사 분쟁을 언급했고, 양사에 ‘결정에 승복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업계에서 사업지연의 바탕에 방사청의 사업관리 능력 미비가 있다는 말이 우선해 나온단 점을 생각하면 회피성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방위사업추진위에서 이것 저것 다 고려해서 정하는 게 사업주기다. 지금 1년이 지연됐다. 안에선 ‘이럴 바에야 방사청이 왜 있냐’, ‘옛날처럼 각군으로 사업 관리 기능 넘기고 조달기능만 해라’ 등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비판 여론을 전했습니다.

최근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서로에 대한 고소·고발을 철회했습니다. 또다른 주요 이슈였던 왕정홍 전 방사청장의 KDDX 관련 비위도 최근 검찰이 관련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해당 혐의를 빼면서 일단락되는 모양샙니다.

기왕에 이번에도 신중할 거라면, 어떻게 신중할 것인지 시간을 들여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앞서 무엇이 실수였고, 그래서 지금 가장 효율적인 대안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선가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산 이지스 전투체계를 국산화해보겠다는 군의 계획에도, 글로벌 함정 시장에선 ‘팀 코리아’인 양사 감정의 골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한 업계 관계자의 말로 까칠뉴스를 마칩니다. 

“방사청이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민간도 잘못한 걸 인정하고, 공정하게 다시 시작하자고 해야 한다. 유야무야하면 계속 지연될 게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