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고, 할 수 있다”…EV 배터리 ‘폼팩터 경쟁’ 격화 이유는?

美 GM, ‘파우치형’ 얼티엄 대신 ‘각형’ 주목…BMW 원통형 ‘러브콜’ 충전 인프라 확대…운전자 관심 ‘에너지 밀도’에서 ‘가격’·‘안전’으로 규모의 경제 기준 ‘10만 대’ 넘어서며 EV 신규 설계·투자 부담 줄어 LG엔솔 파우치형 CTP·삼성SDI 각형 전고체…배터리 수요 대응 박차

2024-12-19     권현정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얼티엄셀즈

완성차들이 신규 배터리 폼팩터 도전에 잇따라 나서면서,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전기차 수요가 멀리 가는 차에서 가볍고 안전한 차로 옮겨간 데 따른 변화다. 전기차 시장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수요 대응 부담 역시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완성차들은 자사 전기차에 탑재하는 배터리 폼팩터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 주자가 미국 GM(제너럴모터스)이다. GM은 이달 LG에너지솔루션과 각형 배터리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 배터리 브랜드 ‘얼티엄’의 사용 중지를 언급한 지 두 달 만이다. 앞서 GM은 얼티엄 이름으로 삼원계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 받아온 바 있다. 

GM은 지난 8월에도 삼성SDI와 생산 합작사 설립 본계약을 맺으면서 각형 배터리 생산 및 공급을 발표했다. 적용 배터리 폼팩터를 파우치형 하나에서 각형 등으로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탑재했던 현대·기아차도 지난해 삼성SDI와 거래를 트면서 각형 배터리로 적용 폼팩터를 늘렸다. 그간 시장에서 비교적 외면 받았던 원통형 배터리는 BMW, 스텔란티스 등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완성차 기업들이 이처럼 탑재 배터리 폼팩터 다변화에 나서는 배경에는 고객인 운전자의 수요가 달라진 점이 꼽힌다. 그간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가는 전기차, 즉 에너지 밀도가 높고 가벼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원했다면, 최근엔 가격과 안전성 등으로 기준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충분해진 충전 인프라 덕이다.

실제로 파우치형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주행거리 증가에 기여하지만, 공정이 복잡하고 비교적 화재 등에 취약하단 단점을 지닌다. 이에 비해 각형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통형 배터리는 가격은 저렴하지만, 버리는 공간이 생기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폼팩터별 점유율은 전기차 충전소나 급속충전소 설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며 “파우치형이 에너지 밀도가 워낙 높다 보니 일단 시장에선 비중이 좀 더 높아질 거라고 보는데, 소비자들이 어떤 부분을 구매 포인트로 삼을지에 따라서 달라질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완성차 기업들이 다양한 고객 수요를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면서, 완성차의 배터리 폼팩터 다변화에 속도가 더 붙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은 판매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갈 때까진 신규 설계 및 설비 투자에 부담이 크다. 하지만, 판매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신규 투자 비용이 투입돼도 수익으로 상쇄된다. 시장이 커지면, 신규 투자 부담은 줄어드는 구조다.

이와 관련, 이호근 교수는 “자동차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업종이다. 새로운 배터리 폼팩터를 도입하면 공정도 바뀌고 설계도 바뀌는데, 판매량이 적으면 설계와 공정 변화가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며 “전기차는 그 기준이 10만 대인데, 이를 넘어서는 곳이 생기고 있다.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시점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기업이 폼팩터 다변화에 나서면서 공급사인 배터리 셀 제조사 역시 분주해졌다. 수요에 대응하는 포트폴리오 만들기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간 파우치형 배터리에 집중해온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GM과의 각형 배터리 공동개발 계약을 시작으로 각형 수요가 있는 고객사 추가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46시리즈는 오는 2026년부터 생산 예정으로, 이미 전기차 브랜드 리비안과 공급 계약을 마쳤다.

각형 중심 삼성SDI는 내년 초부터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46파이를 마이크로모빌리티 향으로 공급한다. 파우치 중심 SK온은 각형 배터리 개발을 완료하고 공급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통형 배터리도 개발 중이다.

동시에 자사 주력 폼팩터의 경쟁력도 제고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르노 전기차에 자사 파우치형 LFP 배터리를 셀투팩(CTP) 방식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파우치형 배터리가 변형에 취약해 모듈 없이 바로 팩으로 덮는 차세대 셀투팩 방식엔 부적절하다는 인식 돌파에 나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고체 배터리 역시 파우치형으로 개발 중이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샘플은 파우치형으로 생산 중이지만, 향후 각형 전고체 배터리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주영 삼성SDI 부사장은 지난 3월 NGBS 2024에서 “샘플을 파우치형으로 만든 건 만들기 편해서인데, 고객사가 각형 전고체 배터리를 많이 요구하고 있다. 각형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