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반대’ 김문수의 아이러니 [정진호의 정치여담]
탄핵 반대 외치지만…윤 대통령 복귀하면 판세 달라질 가능성 높아 국민의힘 대선 후보 노린다면 탄핵 인용이 유리…아이러니한 상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많은 분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떠올릴 겁니다. 물론 이 대표도 수혜자긴 합니다. 정국이 급변하면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줄어든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다는 점에서 ‘최대’ 수혜자로 보긴 애매한 데가 있습니다. 오히려 두어 달 새 천지개벽(天地開闢) 수준의 입지 변화를 겪은 사람은 따로 있죠. 바로 국민의힘 소속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입니다.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만 해도 김 장관은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에 거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만73세의 고령(高齡)이 된 데다, 강성 보수 색채가 짙어 ‘중도 확장력 싸움’인 대선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관측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대권에 욕심을 내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이후 김 장관은 일약 보수 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원조 친윤(친윤석열)’으로서 윤 대통령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리’를 지켜왔다는 점이 보수층의 호감을 산 덕분입니다.
김 장관은 민심의 흐름을 살피느라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 여타 대권주자들과 달리,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윤 대통령을 지킬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던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실제로 김 장관은 지난 1월 10일 <한국갤럽>이 발표(1월 7~9일 만 18세 이상 1004명 대상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진행, 응답률 16.3%,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 참조)한 장래 정치 지도자 지지도 조사에서 8%를 얻어 한동훈 전 대표(6%), 홍준표 대구시장(5%) 등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고, 이후 계속 보수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죠.
그런데 사실 김 장관의 현 상황은 아이러니한 데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지금의 김 장관을 만든 건 윤 대통령에 대한 ‘의리’입니다. 비상계엄 선포 때조차 윤 대통령 곁을 지키고, 지금까지도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보수층의 마음을 움직인 거죠.
하지만 만약 김 장관 말대로 윤 대통령이 복귀한다면, ‘김문수 대세론’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약속대로 윤 대통령이 잔여 임기에 집착하지 않고 개헌에 집중한다면 ‘탄핵 정국’은 ‘개헌 정국’으로 전환되고, 탄핵 기각으로 분노가 사그라진 보수 유권자들은 ‘윤 대통령에게 의리를 지킨 사람’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차기 지도자를 선택하려 할 테니까요.
윤 대통령이 잔여 임기를 모두 소화한다고 해도 김 장관이 대선 후보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대 대선은 언제나 ‘현 대통령과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느냐’가 포인트였고, 그렇다면 ‘윤 대통령과의 의리’가 최대 자산인 김 장관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게다가 차기 대선 즈음에 김 장관의 나이는 70대 중반이 되죠.
반면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김 장관이 대선 후보로 등극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중도층이 보수로부터 등을 돌리자 강성보수의 발언권이 강해졌고, 그 결과 강성보수의 지지를 받던 홍준표 후보가 손쉽게 대선행 티켓을 손에 넣은 사례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다면 김 장관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김 장관이 정말 차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김 장관이 진정으로 대권 꿈을 꾸고 있다면,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는 게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외치는 쪽이 탄핵 기각을 바라고, 기각돼야 한다고 외치는 쪽이 내심으론 인용을 바라야 하는 상황. 정치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