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재벌 3·4세 시대…'원로 역할론' 대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재벌 3·4세들의 약진이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젊은 리더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재계에서는 원로들의 역할론이 대두되는 모양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오는 22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현대차 대표이사로 취임할 예정이다. 앞서 현대차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그를 신규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모비스의 대표이사도 겸임할 전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매년 분기마다 진행하는 임원세미나를 월례포럼으로 바꾸라고 최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방적 소통이 아닌 쌍방향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바꿔, 자신의 탈권위와 실용주의 철학을 그룹 곳곳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다.
'은둔의 제왕'으로 불렸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근 연이어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추는 등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과 네 차례나 대면하면서 현 정권과 보폭을 함께하는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키는 눈치다. 지지율이 높은 정부와의 상부상조로 그룹 경영정상화의 포석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세 사람은 모두 2018년 전면등장한 재벌 3·4세 젊은 리더들이다.
재벌 3세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9월 수석 총괄부회장 자리에 앉아 연말 인사로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자신만의 체제를 구축했고, 재벌 4세 구 회장은 같은 해 5월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권을 승계 받았다. 재벌 3세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2월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풀려난 바 있다.
이처럼 재벌 3·4세가 개막했지만 이들이 직면한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한반도 정세 급변에 따른 정치적 불투명성 심화, 글로벌 경제위기의 현실화 등 대외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은 흐름이고, 한진가로 대표되는 갑질 논란,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전근대적 세습 행태 등으로 재벌을 바라보는 국내 시선도 곱지 않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원로 기업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은 원로들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오는 5일 경총 회장 취임 1주년을 맞는 손 회장은 재계의 대변인을 자임하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과 폭넓은 스킨십을 가져 호평을 얻었으나, 최근 경총 내부 쇄신에 미온적이라는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전경련 회장직을 5번째 연임 중인 허 회장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추락한 전경련의 위상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현 정권 들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17년 "정부 정책이 이르다"는 민감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올해에는 청와대 '2019 기업인과의 대화' 초청 명단 문제로 물의를 빚었다. 고향인 두산그룹의 실적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박 회장의 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눈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제여건이 악화되면서 기업활동에 비상이 걸렸는데 3·4세들은 체제 구축에 여념이 없다"며 "경제단체를 맡은 원로들이 하루빨리 조직 재정비를 마치고, 나서서 대정부 소통 창구로서 할 말을 하고, 또 경영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쓴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영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연이은 정경유착과 갑질 논란으로 국민들의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극심한 실정인 만큼, 이를 해소시키는 것도 경제단체의 의무가 된 상황이다. 경영계의 목소리가 국민정서와 상반된다면 오히려 경영계를 꾸짖을 필요도 있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느 조직이든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원로들의 역할도 커진다. 혜안으로 시류를 읽고 젊은 사람들에게 직언을 해줘야 한다. 자꾸 제식구만 싸고도는 식은 안 된다"며 "특히 재계는 많은 국민들의 밥그릇을 책임지고 있는 조직이다. 제식구 감싸다가 국민들 밥그릇 다 깨진다. 원로들이 경제단체들의 내부 혁신을 우선적으로 시행 후 제대로 된 경제단체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