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재계⑤] '고난의 행군' 현대 '北進 앞으로'

남북경협 답보에 주력 계열사 '엘리베이터' 순익 급감 현정은 회장, 안팎으로 어렵지만…'뚝심은 살아있다'

2019-04-02     박근홍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삼성,

글로벌 경제 침체, 국내 경기 불황에 대한 재계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시사오늘>은 '위기의 재계'를 통해 현재 각 그룹사들이 처한 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CEO들의 출구전략, 나아가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짚어본다.

2013년 이후 최대위기 직면

故 정몽헌 회장의 죽음,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의 지분 경쟁, 금강산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등 거센 풍파를 겪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현대그룹이 최근 그룹 존망이 걸린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2013년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 이후 최대 위기라는 말까지 들린다.

지난해만 해도 현대그룹은 오르막길을 걷는 일만 남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북간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은 우리에 의해 꽃을 피게 될 것"이라는 현정은 회장의 그해 신년사처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무드가 급격히 조성됐고, 그 중심에는 현대그룹이 있었다.

현 회장은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단체 수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북측 경제협력 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졌고, 당시 리용남 북한 내각 부총리는 "현 회장의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또한 현대그룹은 남북정상회담 성료 직후 남북경협사업 TF팀을 발족, 각 계열사가 남북경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를 구성했다. TF팀 위원장을 직접 맡은 현 회장은 "경협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핵심 역량과 의지를 모아 남북경협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이 유일한 남북경협 파트너임을 대내외에 재천명한 것이다.

현대그룹

하지만 올들어 분위기는 급변했다. 현대그룹에 비우호적인 경영환경이 안팎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다.

우선, 밖으로는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에 다시 긴장감이 고조됐다. 현대그룹은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준비와 노력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은 요동쳤다. 그룹 지주사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당시 11만 원대에서 9만5000원대까지 폭락, 지난달 초에는 7만 원대 후반에 거래됐다.

북미정상회담 결렬은 단순히 시장 반응이 요동친 것뿐만 아니라 현대그룹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12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시설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지난달 유상증자 청약을 진행했다. 그러나 회담 결렬 영향으로 범현대가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계획보다 적은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 그쳤다.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지난달 25일 열린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기권표를 던진 것이다. 언론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가 아닌 기권표를 행사해 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현대상선에 대한 현 회장의 배임 혐의,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 쉰들러 홀딩 아게와의 손해배상 소송, 현대무벡스를 비롯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부정적 이슈가 다시 부각돼 기업 이미지를 훼손시킨 점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송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실적 부진도 뼈아픈 대목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8년 매출 1조8772억 원, 영업이익 1430억원을 올렸다고 지난 1일 공시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5.75%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남는 장사는 안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의 당기순이익은 2016년 1169억 원, 2017년 790억 원, 2018년 14억 원 등으로 매년 급감하고 있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 종속회사이자, 현대그룹 대북사업의 상징인 현대아산은 지난해 지배주주 당기순손실 229억원을 기록, 전년보다 손실폭이 810.19% 확대됐다.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현대아산의 누적 적자는 1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여느 때보다 남북 평화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현대그룹이 현대아산 유상증자, 현대무벡스 상장준비 등 대북사업 재개에 대비해 노력을 꽤 기울였다"며 "하지만 사업 특성상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인적·물적자원에 많은 타격을 입은 것 같다. 2013년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여건도 현대그룹에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전향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현 회장이 지난달 외부에 알리지 않고 故 정주영 명예회장 묘역을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마음이 참 답답할 것 같다. 그래도 대북사업에 대한 소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고의 대북사업 계속 만지작
현대투자파트너스·무벡스 투트랙 접근

현정은

이 같은 고난의 행군에도 현 회장과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정상화에 대비해 뚝심 있는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현대아산 유상증자에 이어 현대무벡스와 현대투자파트너스를 중심으로 자금 조달과 신성장동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현재 현대무벡스의 연내 상장을 목표로 준비작업을 진행중이다. 현대무벡스는 현대엘리베이터의 물류사업부를 분사해 설립된 회사로, 지난해 5월 현대유엔아이와 흡수합병해 재탄생했고, 시스템 자문, S/W 개발 공급 등 IT사업 및 물류시스템 설치, PSD설치 사업 등 물류사업을 영위한다. 현 회장은 해당 회사의 사내이사였으나, 지난해 말 상장을 대비해 자진해 물러났다.

또한 현대무벡스는 사실상 현대그룹 오너일가의 회사이기도 하다. 공시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최대주주는 현 회장(43.52%)이며, 그의 장녀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 차녀 정영이 현대무벡스 차장, 장남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 등도 각각 지분 5.49%, 0.19%, 0.25%를 확보하고 있다. 때문에 과거 시민사회에서는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내부거래로 현대무벡스에 일감을 몰아줘, 오너일가가 직간접적 수혜를 입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감 몰아주기 사실 여부를 떠나서 현대그룹에 중요한 회사임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무벡스는 IT와 물류자동화시스템을 결합한 4차 산업혁명 맞춤형 업체로서 그룹의 미래 먹거리중 하나다. 실제로 현대무벡스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지난달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 청라국제도시 내에 물류자동화시스템 R&D센터를 건립하기로 합의했다. 대북사업에 있어 물류가 필수적임을 고려한 그룹 차원의 투자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상장이 현실화될 경우 적잖은 자금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투자파트너스 역시 현대그룹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전망이다. 현대투자파트너스는 금감원으로부터 신기술금융 라이선스를 받은 업체로, 기업주도형벤처캐피털 등 벤처투자 관련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제조업 르네상스와 제2벤처 붐을 직접 거론했음을 감안하면, 정권 기조에도 부합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현대무벡스와 마찬가지로 현대투자파트너스도 사실상 현대그룹 오너일가의 회사다. 최대주주는 현 회장(44%), 2대 주주는 현대엘리베이터(31%), 장남 정영선 이사는 소액주주다. 현대무벡스와 지분구조가 흡사하다. 향후 상장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금융 계열사로서 앞으로 현대그룹 대북사업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