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이에야스와 히데요리의 엇갈린 운명과 빛바랜 4ㆍ27 남북회담 1주년
남과 북, 누가 이에야스가 될지 아니면 히데요리가 될지는 아무도 몰라
2019-04-28 윤명철 논설위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의 창시자다. 센고쿠 시대의 3대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당대에 성(盛)했다가, 멸(滅)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60여년에 걸친 에도막부를 개막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시대를 묵묵히 기다린 희대의 전략가다. 노부나가의 시대에 상대로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히데요시가 득세하자 대세의 흐름을 읽고 순순히 복종했다. 그는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에 참전을 하지 않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자신의 세력을 전쟁의 참화에서 보호했고, 후일 이를 바탕으로 히데요시 사후의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다.
이에야스는 결정적 순간에도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히데요시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국가 원로인 다이로를 불렀다.
누가 보더라도 히데요시가 죽으면 권력의 정점에 설 것이라는 기대와 의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이에야스는 자신의 속을 숨기고 히데요시가 요구한 각서에 기꺼이 서명했다. 한 마디로 종이 한 장 서명이 권력 앞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현실적인 전술이다.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는 자신의 야욕을 드러냈다. 히데요시의 유신인 이시다 미쓰나리가 눈에 거슬렸다. 미쓰나리는 이에야스의 야욕을 막고자 지지세력을 모았다. 이에야스도 미쓰나리 제거에 나섰다. 이른바 세키가하라 전투가 터졌다. 이에야스가 이겼다. 이제 일본 열도는 이에야스의 천하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서두르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아직 남았다. 일단 히데요리의 다이묘 지위를 인정했다. 히데요시와의 약속을 지키는 의리의 정치인이라는 포장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고 히데요리가 성장하자 히데요시의 잔존 세력들이 재기를도모했다.
호랑이 새끼가 호랑이로 성장하는 것을 인정할 순 없는 법. 이에야스는 히데요리가 반란을 꾀했다는 억지 명분을 구실로 히데요리의 오사카성 공략에 나섰다. 오사카성은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총지휘하던 천연의 요새다. 특히 적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인 해자로 둘러싼 난공불락의 요새가 바로 오사카성이다.
이에야스의 총공격에도 오사카성은 굳건히 버텼다.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해자를 메꾼다면 오사카성 공략을 멈추고 군사를 돌리겠다는 뜻을 히데요리에게 전했다.
순진한 히데요리가 노회한 전략가 이에야스의 제안을 덥쑥 물었다. 해자가 메워지자 오사카성은 함락의 위기에 처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히데요리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전쟁에서 적을 믿는 바보가 바로 히데요리였다. 이제 이에야스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에도 막부는 이렇게 막을 올렸다.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이 됐다. 일년 전 판문점에서의 감격은 이미 과거형이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의 감격을 무시하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나섰다. 남쪽은 나홀로 기념식을 열고 북의 호응을 기대했다.
남북 관계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매우 복잡한 계산을 해야하는 난제 중의 난제다. 한 순간의 판단으로 민족 전체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남과 북, 누가 이에야스가 될지 아니면 히데요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일을 위한 전략을 가진 자만이 승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