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쑨원과 김구가 원치않는 좌우익의 입맛 재해석
시대를 열었던 두 거인의 비참한 최후도 이를 예견한 듯
2019-05-05 윤명철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중국 현대사의 시작은 혁명가 쑨원에 의해서 시작됐다. 쑨원은 망국의 길로 치닫던 청 제국을 종식시키고 근대화된 중국을 만들기 위해 신해혁명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특히 쑨원이 신해혁명을 일으키기 5년 전인 1906년에 제창한 ‘삼민주의(三民主義)’는 현대 중국의 국가 이념이 됐다.
하지만 쑨원은 좌우을 넘어 전 중국인의 존경을 받았지만 대권을 잡은 적은 없는 비운의 혁명가이다. 1911년 신해혁명의 주역은 쑨원이지만, 대권은 위안스카이가 차지했다.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 총독 행세를 하며 우리에게도 악명을 떨친 군벌의 지도자였다.
결국 쑨원은 일본 등 해외를 떠돌며 외세에 의해 짓밟힌 조국 중국의 미래를 위해 노력했지만 말년에 조국으로 돌아가 1925년 조국 베이징에서 위암으로 혁명가로서는 초라한 최후를 마감했다.
하지만 쑨원이 만든 삼민주의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지도 이념이 됐다. 그가 주창한 ‘민족’, ‘민권’, ‘민생’은 좌우익의 대립으로 각기 다른 해석이 나왔다.
예를 들자면 쑨원은 ‘민생’을 ‘소유의 자유가 인정된다’고 제시했다면 국민당은 ‘개인 소유의 자유가 인정된다’라고, 공산당은 ‘무산계급이 독재하는 모든 재산을 공동 소유한다‘고 해석했다.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이 낳은 비극이다.
지금도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 정부는 쑨원이 꿈꾼 삼민주의에 대한 상반된 해석으로 각기 다른 체제를 만들었다. 혁명가 쑨원이 꿈꿨던 삼민주의가 분단된 양 세력에 의해 훼손된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구 선생은 자신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서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을 해야 할 일로 제시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와 보수 정치권은 김구 선생이 원하던 조국의 모습이 아닌 자신들만의 나라를 꿈꾸고 있다.
2019년의 대한민국은 좌우익의 대립이 난무하고 이념 대립의 늪에 빠져 있다.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은 실종됐고, 자신과 반대하는 사상에 대해서는 증오의 투쟁만 존재한다. 김구 선생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쑨원은 외세의 침략과 봉건체제의 종식을 위한 삼민주의를 주장했고, 김구 선생은 좌우대립의 종식과 사상의 자유를 꿈꿨지만 후대 정치꾼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했다. 쑨원과 김구의 비참한 최후도 이를 예견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움이 더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