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텔링] 文,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청했다면?
[정치텔링] 文, 패스트트랙 철회용청했다면 국회空轉 멈추고 정국 반전…'협치'는 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국회 파행이 장기화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4월 3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의 선거제·개혁입법 패스트트랙이 있다. 국회라는 거대한 기계가 멈춰선 '고장원인'으로 패스트트랙이라는 '사건'이 자리하는 셈이다. 입장차가 분명한 국회 내에선, 실질적으로 패스트트랙이 없던 일이 되긴 어렵다. 이미 한국당을 제외한 '단독국회'소집까지 거론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은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이 '패스트트랙' 철회를 국회에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어떤 미래 : 文 깜짝 특별선언 "패스트 트랙 철회"
1987년, 아직 후보 신분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6·29 선언을 발표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이 선언은, 사실 현직에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건의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선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전 전 대통령은 다음날 이를 수용했다. 사실 전 전 대통령이 선언을 준비한 것이라는 내막은 차치하더라도, 이 선언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제도를 진일보 시켰음은 확실하다. 민주화를 위한 열망으로, 점점 커져가던 민주화 항쟁은 6·29 선언을 통해 다시 정치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선언을 통해 '패스트트랙' 철회를 국회에 요청했다. 사실 문 대통령에겐 국회에 간섭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는 엄밀히는 여당과 정치권을 향한 요청이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국회의 공전을 지켜보기만 할 수 없다"면서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도 당연히 시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이나, 선거법의 경우 국회가 만들어지는 절차와 관련된 만큼 국회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굳이 문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도, 실리도 부족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아쉬움을 표하며 결국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선거제 개편을 기대했던 정의당을 중심으로 다른 야당들이 민주당에 항의하며 반발하지만 중과부적이다.
더 이상 장외투쟁의 명분이 없는 한국당은 국회로 돌아오게 된다. 이미 대통령의 뜻에 따라 패스트트랙이 강행됐다는 주장을 반복해온 한국당이다. 문 대통령이 특별요청 발언을 한 시점에서 국회공전의 책임이 모두 한국당에게 옮겨온 까닭에, 반(反) 청와대 전선의 동력을 잃는다.
문 대통령은 국회 공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잊혀진 어젠다가 된 줄 알았던 '협치'를 살려낸 것은 '덤'이다. 양 극단으로 치닫던 지지층결집의 지형이 변한다. 중도층이 문 대통령에게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고, 반대쪽에 서 있던 한국당도 더 이상 극우행보를 고집할 수 없게 됐다.
#현재 : 손을 내미는 쪽이 승리해온 정치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대해, 원래의 지지층, 소위 '집토끼'들만 챙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멈추지 않고 있다. 야권 정계의 한 핵심관계자는, 15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강약조절의 묘미가 없다. 너무 '강강강'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면서 "적폐청산을 비롯해 집권 이후 그동안 전진만 외쳤다면,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들에게도 한번 손을 내밀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도 한국 정치권에선 손을 먼저 내미는 쪽이 승리해왔다.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은 모두 자신과 정치적으로 다른, 혹은 반대에 서 있는 이들에게 먼저 손을 뻗었던 예가 많다. 답답하리 만치 막혀있는 정치권에 가장 속이 타는 것은 국민들이다. 국민들이야 말로 조금은 파격적인 대통령의 특별요청 선언을 상상해볼 수 있는 배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