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법 시행됐는데…여전한 건설업계 ‘부모님 계십니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법'이 오늘(17일)부터 시행됐음에도 시행 첫날부터 일부 건설사들이 해당 법을 어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법에 위반하진 않지만 블라인드 채용법 취지에 반하는 사항을 구직자들에게 물어보는 업체들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현재 채용공고를 진행 중인 주요 건설사들의 입사지원서 양식을 살펴보면 블라인드 채용법에서 금지하는 직무 수행과 무관한 구직자 신체조건, 출신 지역, 가족사항 등을 기재토록 하거나 수집하는 행위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견·중소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업체들도 부지기수였다.
태영건설은 입사지원자의 '시력'과 '혈액형', '가족관계'(성명·연령·비고·동거여부 등)를 지원서에 적도록 했으며, 동부건설은 '가족사항'(성명·생년월일·동거여부·학력·직업·지위·근무처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토록 했다. 신동아건설은 입사지원자 가족들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요구하진 않았으나 '직계비속(자녀) ○남 ○녀' 등을 물어 사실상 구직자의 결혼 유무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적도록 했다.
또한 대방건설은 구직자의 '혈액형', '흡연 여부' 등을 기재사항에 포함시켰으며, 요진건설산업은 지원자에게 주소뿐만 아니라 '출신지'를 명시하도록 했다. 블라인드 채용법은 거주지 정보 수집은 허용되지만 출생지와 본적(등록기준지)을 묻는 것은 불허한다.
이는 모두 블라인드 채용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 행위로,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1회 1500만 원, 2회 이상 위반 시 3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울러, '채용과 관련해 부당한 청탁을 하거나 압력, 강요 등의 행위에 대해 행정제제를 가한다'는 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항을 기재토록 하는 건설사들도 목격됐다.
대림산업은 지원사항에서 '추천인'(소속·성명·연락처·관계(부친, 친척, 친구))을, 학력사항에서 입사지원자의 대학교·대학원 '지도교수'와 '연구실명'을 각각 적도록 했다. 채용 과정에서 부당청탁, 직권남용, 뇌물수수 등 불상사가 발생할 빌미를 제공할 공산이 큰 대목이다. 한미글로벌 역시 구직자에게 '흡연 여부', '추천인 정보'(한미글로벌 직원인 경우·외부기관·학교·헤드헌팅)를 기재토록 했다.
블라인드 채용법에 저촉되진 않지만, 정치권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입사지원서에서 제외할 것을 권고하는 인권 침해 항목들을 기재사항에 넣은 건설업체들도 눈에 띄었다.
앞서 거론한 건설사들을 비롯해 효성중공업 건설부문, 현대엔지니어링, 신성건설 등은 경력사항에서 '퇴사사유', '사직사유', '이직사유' 등을 물었고, 계룡건설 등은 학력사항에 '편입' 여부와 '주간·야간' 확인 등을 적도록 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 16일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블라인드 채용법)이 17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는 외모나 출신, 학력보다 직무 중심의 채용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된 법으로, 직무 수행과 관련 없는 개인정보를 요구 또는 수집하거나, 채용을 청탁 또는 강요할 시 해당 업체에 행정제재를 내린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특혜채용, 채용비리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을 민간에 적극 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