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시대 기금고갈 압박
'땜질처방' 아닌 근본개혁 방안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국민연금 개편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혜택은 줄고 부담은 늘어나는 것이 핵심이다. ‘더 오래 내고 덜 받는 방향’이기에 벌써부터 국민 반발이 거세다.
정부안은 국민 의견을 수렴해 내달 말까지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현재까지 드러난 방향의 골자는 △보험료를 20년만에 올리고 △보험료 의무 납부 연령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늘리며 △최초 수령 시점을 늦추고 △늘어나는 기대수명을 반영, 수급연령이 올라갈수록 연금 지급액을 깎는 것으로 니타나고 있다.
어떤 경우든 보험료를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따라 기금고갈 시기가 앞당겨 질 것이란 '위기감'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제도가 변화 없이 현재대로 유지될 경우 2042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에 적립기금이 소진될 것이란 계산도 나왔다.
허지만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벌써부터 개편방향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을 차라리 폐지하자는 극단적인 주장부터 선택 가입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공적연금과 통합하자는 의견도 줄을 잇고 있다. 급기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확정된 것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당장 보험료 인상은 누구에게나 큰 부담이다. 60세 정년(停年)인 상황에서 인상된 보험료를 65세까지 내고 연금은 67세 또는 68세부터 받으라고 하면 국민은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과 직장인뿐 아니라 자영업자나 퇴직자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문제가 우리 사회의 또하나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쟁점이며, 바람직한 개편과 개혁방향이 되어야 할 지 다각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청원 빗발
국민연금 개편 방향이 본격 제시됐다. 정부 자문단의 안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후속 작업을 앞두고 재정계산의 세부내용을 공개했다.
국민연금 재정에 '빨간불'이 켜지고 후세대의 부담 증가가 가시화되자 정부 자문단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즉각 11%로 올리거나 10년간 단계적으로 13.5%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와 제도발전위원회는 1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제4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결과와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근거는 기금의 고갈시기다. 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가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빨라질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메꾸기 위해 내년부터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연금 의무 가입 나이는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늦추고, 연금수령 개시 나이는 65세에서 68세로 미루어야 한다는 개편안을 내놨다.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려는 고육지책이다.
'고갈'에 대처키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나 가입기간 연장, 수급 개시 연령 이연 등이 불가피하다는 게 위원회의 분석이다. 가령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액의 비율)을 올해 수준(45%)으로 그대로 두는 대신 보험료율을 즉각 올리든지, 소득대체율을 단계적으로 40%로 낮추기로 한 당초 계획대로 하되, 보혐료를 조금씩 올리든지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국민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벌써 땜질처방, 보험료율 인상 반대 등 900여건의 청원이 올라왔다.
'공무원들이 국민연금을 고갈시키고 책임은 왜 국민에게 묻느냐' '차라리 냈던 국민연금을 모두 돌려달라' '공무원연금·군인연금처럼 국가가 지급 보장을 하라'는 등의 항의가 몰리고 있다. "계속 납부 나이와 수령 나이를 올리면 보험료만 내다가 그냥 죽으라는 말로 들린다"며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바닥날 연금을 메꿔야 할 젊은 세대가 반발하는 등 세대 갈등마저 불거질 조짐이다.
양대 노총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도 17일 공청회장에서 국민연금 제도 개편 과정과 관련,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고 공개 주장했다.
급기야 박 보건복지부 장관이 부랴부랴 입장문을 발표, “(논란이 되고 있는 안은) 자문위에 논의되고 있는 사항의 일부일 뿐 정부 안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물론, 재정추계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정부 안이 아니라 정책자문안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국민연금 개편안은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를 놓고 공청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9월 말까지 마련된다. 앞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정부안이 확정되면 대통령 승인 후 국회 논의 관문까지 넘어야 한다.
정부 국민 동시 '제2추락' 위험
국민연금 개혁 필요성은 진작부터 제기돼왔다. 저출산·고령화로 보험료 낼 사람은 줄고 받는 사람은 늘어나는 현실에서 개혁 필요성은 당연하다. 보험료율은 오르고, 소득대체율은 떨어지며, 연금납부기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 자문단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내년 2천187만명으로 최고점에 이른 후, 근로연령 인구 감소에 따라 2088년에는 1천19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노령연금을 받는 비율은 2018년 36.2%에서 점차 증가해 2070년에는 84.4% 수준까지 도달하며, 장애연금과 유족연금까지 포함할 경우 207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의 90.8%가 국민연금을 받을 전망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전제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개편은 신중하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미래가 걸린 국민연금의 새로운 개혁방향은 중차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적 불안이 그만큼 크다. 미루기만 해선 기금 고갈 등 심각한 상황이 덮어지지 않는다. 초저출산과 초고령화, 저성장 등 국민연금 최대의 적을 마주한 상황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 경제에 활력이 돌고 있다면 그나마 사정이 다소 달라 질 수는 있다. 일자리가 많아 60대 이후에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충격강도가 완화될 소지는 있다. 65세, 70세까지 돈을 벌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수 있으면 국가 경제에 기여도 하는 것이고 본인의 만족스러운 노년 생활도 즐길 수 있게 된다.
현실적으로 70세, 80세가 돼도 신체적·정신적으로 젊은이 못지않은 활력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다. 선진국도 보험료 내는 상한 연령은 일본 70세, 프랑스·캐나다·덴마크 65세 등으로 우리보다 높고 연금 수령 개시 시기도 노르웨이 67세, 프랑스 66세 등 대부분 65세 이후로 잡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렵기만 하다.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못 구해 방황하는데 보험료 납부 연장 등의 조치는 세대 갈등을 부를 것이다. 결국 국가 경제가 살아나 일자리가 풍부하게 공급돼야 해결의 출구를 찾을 수 있는 문제다. 총론적 경제정책의 성공여부와 맞물려 있다. 정부가 규제를 뽑아내고,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노조의 극단 이기주의를 제어해야 한다. 그렇치 못하면 결국엔 국민연금 재정이 크게 악화된 다음 정부와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는 '제2의 나락'으로 다시 추락할 개연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노인빈곤율 악화
국민연금의 중요성은 실로 크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5.7%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로 고용부진이 이어지는 데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쓰러지고 있어 앞으로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국민연금이 노후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만 한다. 노후소득 보장의 핵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계속 낮아지며 ‘용돈연금’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그것은 3년 전 공무원연금 개편 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리자고 정치권도 동의한 이유다.
사실, 지난 수십년간 국민연금 수혜는 계속 쪼그라들어 왔다. 한때 70%였던 소득대체율은 현재 45%로 낮아졌고 60세였던 수령 연령은 65세로 늦춰졌다. 이를 더 낮추고 더 늦춰야 한다니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다. 연금을 받을 사람은 급격히 늘어나고 보험료를 낼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성장률은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연금제도 전반에 관한 근본적인 수술을 서둘러야 하는데 역대 정부는 어려운 선택을 미루기만 했다. 가입자의 부담을 늘려 기금 고갈시점을 늦추는 데만 초점이 모아지다보니 '땜질개혁'이라는 반발을 사 왔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과 노후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 가운데 늘 전자에 매달려 후자를 희생해 왔다.
국민연금은 기금 형태로 출발했고, 인구의 변화가 기금 고갈을 앞당겼다. 경제활동인구의 급격한 감소 탓에 2057년이면 바닥을 드러내게 됐다. 국민연금 재정 계산은 70년 뒤까지 견디도록 운영 계획을 세우는 일인데, 40년 뒤면 고갈될 기금을 그때까지 유지하려니 위원회가 이번에 마련한 안처럼 ‘더 걷고 덜 주는’ 땜질 처방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래선 안 된다. 이제는 제대로 된 근본대책과 개혁방안이 나와야 한다.
지급방식 개혁론
역시 최대변수는 기금고갈 및 연금소진 시기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634조원이다. 기금은 오는 2040년대 초반까지는 계속 불어나 2500조원에서 정점을 찍고 쪼그라들어 2057년이면 소진되어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할지 모른다는 전망이다. 5년 전 제3차 추계 때 예상했던 2060년보다 3년가량 앞당겨질 것이란 소식이다. 갈수록 고갈 시점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보험료 인상, 지급시기 연장 등은 고갈 시기를 잠시 늦추는 땜질 처방일 뿐 근본 대책은 못 된다.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의 전환, 공무원연금처럼 국가의 지급보장 법제화 등 고갈 이후도 대비해야 한다. 더불어 수익률 제고 노력도 중요하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이들 연금은 적자를 세금으로 메꿔주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지난해 국가 부채 1555조원 중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가 전체의 55%인 845조원에 이를 정도다.
독일 영국 스웨덴 등 우리보다 훨씬 먼저 연금제도를 갖춘 선진국도 대부분 기금이 거의 고갈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보다 높은 소득대체율로 연금을 운용하고 있다. 운용 체계를 기금 방식에서 부과 방식으로 전환했기에 가능했다.
부과 방식은 기금이 남아 있을 때 도입해야 급격한 보험료 인상을 피해 연착륙할 수 있다. 국민연금 운영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편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고 국민연금법에 명문화해 불신을 없애야 한다.
국민동의 중요
따라서 국민연금이 해야 할 일은 자체 개혁이다. 가입자 2200만명에 기금 규모 635조원으로 세계 3대 연금에 속하지만, 운용기법 등은 그 덩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우리 국민연금의 현주소다. 지난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 제도는 크게 △낮은 재정적 지속가능성 △적지 않은 사각지대 △높지 않은 실질 소득대체율이라는 3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개혁을 위해서는 실제 '현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무원연금과 교원연금은 기금이 고갈되면 국가가 나서서 이를 보조해 주면서 국민연금만 가입자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납세자연맹 추계에 따르면 사립 교원은 퇴직 후 월평균 310만원, 군인은 298만원, 공무원은 269만원을 받는다. 직역 연금은 소득대체율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금 지원이 없고 소득대체율이 45%인 국민연금은 월평균 수령액이 38만원에 불과하다. 용돈도 안 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인연금은 1973년 고갈돼 해마다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국민 혈세로 메꿔주고 있다. 군인연금은 수급연령에도 제한이 없다. 이런 탓에 군인연금 지급액의 80%를 국가에서 세금으로 부담한다.
세금으로 버티기는 공무원연금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연금은 소득대체율이 국민연금보다 15%포인트나 높다. 이런 마당에 국민연금을 더 내고 늦게 받는 방향으로 고친다니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부과식으로 연금제도로의 개혁은 국가가 국민 노후를 보장해준다는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무원연금 등은 기금이 모자라면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명시되어 있는데, 국민연금은 이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다. 단순히 ‘기금 고갈’이 쟁점이 아니라, 국민 노후 보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확인하며 전면적인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방향이 필요하다.
국민을 이해시키려면 그 방책의 하나로 3대 직역 연금부터 국민연금에 준하는 개혁을 하는 게 순리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필요가 있을 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국민연금과 3대 직역 연금을 합치고 ‘중부담-중급여’로 방향을 바꾸는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용 수익률 바닥
또 하나, 현실적으로 최대 과제는 바닥을 기고 있는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운용인력 이탈 러시 등이 심각한데도 수익률 제고보다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지침)'를 통해 기업 경영에 간섭하려 한다. 국민연금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국민연금을 자신들 입맛에 맞추려 간섭해온 정치권도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운용수익률을 최대한 높여 기금을 꾸준히 불려가야 한다. 몇 년 전 감사원은 운용수익률이 1%포인트만 달라지면 기금 고갈 시기가 5년 앞당겨지거나 8년 늦춰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재원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덜 내고 더 받는 시스템으로 개선하는 것은 눈앞의 숙제다. 보험료와 운용수익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찾는 것은 절대적인 책무다. 세계 3대 연기금 규모이지만 수익률은 꼴찌라는 손가락질을 왜 받는지 반성해야 한다. 올 들어 계속 추락하는 수익률 원인을 찾아내 수술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정치적 요구에 휘둘려 국민 노후를 보장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없도록 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중인 ‘스튜어드십 코드’는 대표적 개혁 대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투자하는 회사의 배당, 사외이사 선임 등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이다.
6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만 240여 개에 달한다. ‘연못 속 고래’로 불리며 대다수 우량 상장사의 최대주주인 마당에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본격 운영할 경우 주요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은 국민연금을 통해 사실상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가 공고해질 공산이 크다.
너무 커져버린 국민연금은 그 자체로도 문제다. 국내 주식을 더 사들이기도 어렵다. 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시장과 비슷해지면 투자 운신 폭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해외투자를 지금보다 늘리자니 국내자본 유출 문제가 생긴다. 정치권은 마치 ‘쌈짓돈’이라도 되는 양 틈만 나면 여기저기 끌어쓰려고 혈안이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국민연금을 대수술하는 데서 찾아야한다. 연금을 작은 규모로 분할해 경쟁시키거나 스웨덴처럼 부분 민영화를 통해 전문성과 책임성을 더 높이고 노후 대비를 국민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 미래세대 노후 보장은 못 하고 정권의 기업지배 도구로 전락한다면 반(反)국민적 사태다. 그대로 방치하는 상황이 결코 계속되선 안 된다. 국민연금 운용방식의 대수술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우선 운용 현실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난파선 수준이라고 지탄받는 국민연금공단은 시급히 바로 세워야 한다. 거대 기금을 굴릴 운용본부장 자리를 작년 7월부터 1년 넘게 비워두고 있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금운용본부는 본부장 등 5명이 공석인 상황에서 지난해 7.3%였던 수익률이 올 들어 1%대로 추락했다. 올해 들어 5개월 동안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수익률이 -1.1%로 시장수익률을 0.9%포인트 밑돈 것도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할 책임자의 부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낙하산 인사가 아닌 기금운용 전문가를 영입해 수익률을 제고하고, 내부에 비효율이 있다면 과감히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연금 개편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부실관리 現代史
정부의 국민연금 운용자세는 이렇게 부실하다. 현 정부 뿐 아니다. 부실운영은 오래됐다.
과거 정부들도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못해 번번이 개혁에 실패했다. 국민연금의 혜택만 줄이며 폭탄을 돌려 온 셈이다. 이번에 위원회가 내놓은 안도 그 안일한 타성의 연장선상이다. 국민연금 구조의 근본적 개혁과제를 다시 일깨운다.
지난 1999년 국민연금등 4대 공적연금기금의 총체적 부실운영실태를 밝혀낸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공공부문 개혁의 당위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당시 감사결과는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립학교교원연금,군인연금등 4대 연금이 수익성을 무시하고 모두 46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기금을 제멋대로 운영, 몹시 부실하고 방만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국민이 낸 기금을 잘 불려서 연금가입자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함에도, 엉망으로 운영해 거액의 손실을 내고 가입자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지난 2001년 동시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경제 보고서가 국민연금의 재정위기를 경고한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 운용실태의 심각성을 다시 확인케 했다.
연금제도의 일대 개혁을 요구한 이들 국제기구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흘려버려서는 안된다. 얼마나 심각하게 비쳤기에 이처럼 경고음을 잇달아 발한 것인지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연금제도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불신에 종지부를
개혁 시기를 놓치면 국민의 노후는 암담하다.
이번 개편안은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 정부안이 만들어진 뒤 국회에서 입법화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문제와 해결 방안이 충분하게 논의되고 국민간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의 명시적 지급보장부터 이뤄져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웃 일본이 진작에 국가 보장을 명문화해 연금 불신을 해소한 것을 참고할 만하다.
현 문제인 정부를 포함, 역대 정부들의 안일한 국민연금 운용 관행에 종지부를 찍기위해서는 '땜질 처방'이 아닌 근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국민의 노후 보장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의 재정고갈보다도 국민 노후보장에 초점을 맞춰 개혁방안을 제시해야 비로소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