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출신 이낙연, 민주당 ‘필승 공식’ 어긋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둘 다 지지도가 조금 높다는 것뿐이지 한국이 처한 상황을 분야별로 점검하며 솔직한 비전을 제시한 사람은 없다. 특별히 부담스러운 사람이 없다. 우리 당이 합당하게 정책을 개발하고 정부의 과오를 집어낸다면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50% 이상 갖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9일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 2위를 질주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특별히 부담스러운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을 분야별로 점검하며 솔직한 비전을 제시한 사람은 없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발언을 김 비대위원장 특유의 ‘자신감’으로 해석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엄살’을 부리는 대다수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좀처럼 ‘우리가 불리하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도 김 비대위원장은 미래통합당(現 국민의힘)의 승리를 장담했는데, 이번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는 겁니다.
다만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대표가 보수 입장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후보’가 아니라는 주장은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김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보수 진영의 ‘진심’을 담고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보수가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대표를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왜 나오는 걸까요.
친문에겐 ‘적보다 미운 아군’ 이재명
알려진 대로, 이재명 지사의 가장 큰 약점은 민주당 내부의 비토(veto)입니다. 흔히 우리나라 대선 승패는 중도층이 좌우한다고 합니다. 좌우 각 진영의 ‘확고한 지지층’이 30%씩이라고 보면, 언제든지 지지 정당과 후보를 바꿀 수 있는 40%의 중도층 표가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 당선자의 이름도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시나리오의 전제조건은 30%의 ‘집토끼’ 표를 무조건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확장성이 좋아도 ‘우리 편’ 표를 결집시키지 못하면 승리는 요원하죠. 이재명 지사의 약점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친문(親文)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재명 지사가 30%의 ‘고정 지지층’ 표를 모두 받아낼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적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친문의 눈 밖에 났고, 2018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선에서는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과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른바 ‘혜경궁 김씨 의혹(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혜경궁 김씨’라는 트위터 계정 실제 주인이 이재명 지사 부인 김혜경 씨 아니냐는 의혹으로,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에 휘말리며 정치적 내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친문과 이재명 지사는 ‘적보다 먼 아군’의 관계가 됐다는 게 당내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심지어 이재명 지사가 전해철 의원을 꺾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자, 강성 친문 쪽에서는 ‘차라리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를 찍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친문의 반감이 그만큼 크다는 거죠.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이재명 지사가 당내 경선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설사 경선을 뚫더라도 대선에서 지지층 결집을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2007년 제17대 대선 당시 친노(親盧)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면서 겨우 26%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승리 공식’ 어긋나는 ‘호남 후보’ 이낙연
이낙연 대표는 이재명 지사와 좀 다른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민주당은 ‘대선 승리 공식’을 깨달았습니다. 노무현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은 대선 경선을 앞두고 “영남 출신인 나만이 영남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대권주자는 내가 적임자”라고 주장했는데요. 2002년 대선을 통해 이 논리가 사실로 밝혀진 겁니다.
실제로 호남 출신 후보였던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광주(95.8%)와 전남(92.2%), 전북(89.1%)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렸음에도 부산(12.5%), 대구(7.8%), 경남(9.2%), 경북(9.6%)에서 참패하며 제14대 대선에서 낙선했습니다. 제15대 대선 때는 보수 분열 덕분에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부산(15.3%), 울산(15.4%), 대구(12.5%), 경남(11.0%), 경북(13.7%)에서의 열세는 극복하지 못했죠.
마찬가지로 호남 출신 후보였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역시 제17대 대선 당시 부산(13.5%), 울산(13.6%), 대구(6.0%), 경남(12.4%), 경북(6.8%)에서 부진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광주(79.5%), 전남(78.7%), 전북(81.6%)의 지지는 여전했지만, 우리나라 인구 구성상 영남에서 완패할 경우 선거 승리는 어려운 면이 있죠.
반면 민주당이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를 내세운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영남은 부산(29.9%), 울산(35.3%), 대구(18.7%), 경남(27.1%), 경북(21.7%) 등의 득표율로 화답했습니다. 제18대 대선(부산 39.9%, 울산 39.8%, 대구 19.5%, 경남 36.3%, 경북 18.6%)과 제19대 대선(부산 38.7%, 울산 38.1%, 대구 21.8%, 경남 36.7%, 경북 21.7%) 때의 문재인 후보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민주당 쪽에서는 ‘영남 출신 민주당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보수 측은 부담스러워하고요. 하지만 이낙연 대표는 아직까지 확장성을 검증받지 못한 ‘호남 출신 민주당 후보’입니다. 이러다 보니 국민의힘 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낙연 대표는 훨씬 상대하기 쉬운 후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결국 두 사람이 지금의 고민을 해결하려면, ‘일 잘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악연을 딛고 일 잘 하는 이재명을 밀어줘야 한다’는 평가를, 이낙연 대표는 ‘국가를 위해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일 잘 하는 이낙연을 찍어야 한다’는 평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거죠. 과연 두 사람은 이 미션을 해결하고 ‘보수가 부담스러워 하는 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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