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복합위기 자초 돌아봐야
확장적 재정정책…미래세대 자산 침탈
‘실정엔 침묵, 성과는 자찬’
부동산 참사엔 “개혁 과제” 말장난
민생현장과 따로가는 인식에 국민 참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문재인 정권은 국가와 역사, 국민에 무엇을 남겼는가. 그 총괄적 실패와 잘못된 국정운용 자세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강변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국회 시정연설에서 그대로 함축됐다.
국민 입장에서 지난 4년 반의 문 정권을 돌아보면 정책 성공보다 실패가 더 눈에 띈다. 임기 내내 이어진 경제와 안보의 복합 위기는 이념에 얽매여 독선과 오기의 국정 운영을 해온 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는 국정 혼란과 정책 실패에 대한 한 마디 반성이 없었다. 외려 경제와 코로나19 백신 등에 대해 국민 체감과 동떨어진 의견만 늘어놓았다. 현실과 괴리된 인식·판단에다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 최대 국정 실패로 꼽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단 한 줄 언급에 그쳤고, 국민 분노를 사고 있는 대장동 게이트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았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시정연설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 치는 국민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한 연설이었다.
국가 채무 사상최대…미래 세대에 큰 짐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위기'를 33번, '경제'를 32번이나 언급하는 등 현 정부를 '위기극복 정부'로 규정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경제 위기를 초래했던 정책 실패와 부동산 정책 실정(失政)에 대해선 끝내 반성과 사과를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가장 뜨거운 국민적 관심사인 '대장동 개발 비리·특혜 의혹'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은 건 '진짜 위기'의 본질을 모르는 게 아닌가라는 인상을 준다.
더욱이 국가경제와 관련, 문 정부는 재정 건전성 악화와 포퓰리즘 정책 등에 대한 우려에도 해마다 예산을 대폭 늘린 것은 물론 한 해도 빠짐없이 추경을 편성하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재정 건전성이 극도로 악화했다. 내년에 국가채무는 1천68조3천억 원으로 사상 처음 1천조 원을 넘어선다.
이에따라 차기 정권은 빚을 잔뜩 떠안은 채 쓸 곳이 넘쳐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 모든 부담은 결국 기업들과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문 정권이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을 갉아먹었다는 비판이 안 나올 수 없다.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핵 시설 재가동 및 미사일 도발 등에 나섰음에도 문 대통령은 "평화의 물꼬를 텄다"고 했다. 대북 정책이 완전 실패했는데도 자화자찬하는 문 대통령이 딱할 지경이다.
'위기 극복' 아닌 '위기 조장 정부'
문 정부의 가장 큰 위기는 '내편은 뭐든지 옳고, 네편은 전부 그르다'는 식의 '편가르기'를 조장한 데 있다. 지난 5년간 공권력을 능멸한 민노총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문 대통령에게서도 이는 엿보인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는 성별·지역별·계층별 분열과 대립, 진영간 증오심이 치유 불가능할 지경에까지 이른 상황이다. '위기극복 정부'가 아닌 '위기 조장 정부'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선진국 중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을 가장 빨리 회복했으며, 소비·투자가 활력을 되찾고 고용도 위기 이전 수준의 99.8%까지 회복했다고 주장했다. 먹고살기도,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워 좌절하는 자영업자와 청년들 인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1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4번째로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 6명 가운데 1명은 기준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학생의 65%가 구직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충격적 조사 결과(한국경제연구원)도 있었다. 대통령 눈에는 이런 현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북 미사일 발사 35차례…북핵노력 소득없어
문 대통령은 “정부 초기부터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했다”며 북핵 위기를 평화의 문을 여는 반전의 계기로 삼았다고 자평했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 평화의 물꼬를 텄다”고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도발을 강행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문재인 정부 동안 35차례에 달해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의 26차례보다 많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재추진 중이지만 북한은 미국 측의 조건 없는 만남 제안에도 응하지 않아 소득이 없다.
최근에는 ‘도발’ 표현을 쓰지 말라고 위협하는 김정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도발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맞았다.
한편,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최우선 개혁 과제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온갖 정치적 풍파를 야기한 검찰개혁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침묵한 대목이 바로 현 정부의 실정과 직결돼 있다. 대장동 의혹은 현 정부 기간 이뤄진 부동산 가격 폭등이 누구에게 천문학적인 혜택을 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현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으로 재편된 검찰과 경찰 등이 과연 개혁 명분대로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철저한 수사를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친(親)노동·반(反)기업 정책, 청년들 희망 잃어
문 정부 5년간 누적된 위기는 대부분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한다. 친(親)노동·반(反)기업 정책에 기업은 활력을 잃었고, '일자리 정부'란 구호가 무색하게 줄어드는 일자리에 청년들은 희망을 잃었다. 규제개혁은 말 뿐이고, 쏟아지는 온갖 규제에 기업들은 옴쭉달싹 못하는 처지가 됐다.
정권 초기에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가 촉발시킨 '일자리 대란'은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 재정정책으로 만들어낸 '공무원 늘리기'와 '단기 알바 급조' 등 즉흥적이고 기형적인 정책이 속출했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을 강행해 일자리 쇼크와 자영업자의 몰락을 초래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에서 청년 체감 실업률은 25% 넘게 치솟았다. 반(反)시장적 부동산 정책은 집값 폭등과 전세 대란을 초래해 주거 취약 계층을 불안과 고통에 빠뜨렸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 1,639만 원으로 현 정부 출범 초에 비해 두 배까지 급등했다. 선거 표심을 의식한 선심 정책 남발로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에 육박하면서 나라 곳간은 텅 비어가고 있다.
경제적 숙제, 다음 정권에 떠넘겨
정부는 임기 내내 빚으로 선심성 복지·고용 예산을 증가시켜 왔다. 마지막 시정연설도 ‘돈을 써야 할 이유’만 잔뜩 담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누적된 재정부담은 차기 정부와 국민 몫으로 남게 됐다.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도 현 정부 재정운용은 낙제점에 가깝다. 200조 원을 돌파한 복지·고용 예산은 일회성 현금 지원에 집중돼 있다. 4년간 약 100조 원을 일자리 예산으로 쓰고도 구직 포기자가 사상 최다인 게 현실이다.
고용보험료는 2019년에 이어 내년에 또 오른다. 단기 일자리 사업에 고용기금을 쓰면서 적자가 누적된 탓이다. ‘문재인 케어’로 무리하게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늘리면서 보험료율은 5년 연속 상승했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상당히 낮췄다”고 자랑했다. 현 정부에서 공무원은 약 12만 명 늘어났다. 이전 두 정부에서 증가한 공무원의 2배를 넘는다. 인건비와 연금 등 고비용 구조는 갈수록 굳어지는데 연금 개혁은 외면한다. 선심은 현 정부가 베풀고, 숙제는 역시 다음 정권에 떠넘긴 셈이다.
삶의 질 하락,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
문 대통령의 지난 임기 동안 삶의 질이 하락했다고 호소하는 이가 많다. “부동산 문제에서 우리 정부는 자신 있다”고 장담한 지 2년 만에 집값 폭등을 초래한 정책 실패가 대표적이다.
부동산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어 무주택자가 집을 갖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집값이 오른 이들도 불만이다. 종부세 대상이 서울 아파트 4채 중 1채로 늘었다. 과세 기준인 공시지가도 크게 올라 “증세가 목적이냐”는 반발을 샀다. 20여 차례 헛발질 부동산 대책에도 비전문가 장관을 바꾸지 않아 대표적인 인사 실패로 꼽힌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여전히 최고의 민생 문제이면서 개혁 과제"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가계 부채 증가가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슬그머니 국가 장기 과제로 넘기며 책임을 회피했다.
대통령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국민들은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데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국민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온당한 자세가 아니다.
청와대 게시판에 민생 절규 초래
온 국민이 고통을 겪으며 분노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 말장난으로 때웠다. 작년 국회 연설에선 “부동산 시장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면서 “임대차 3법 조기 안착과 공공 임대 아파트 공급 확대로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국민 분노가 크자 아예 말장난으로 문제를 외면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참사는 징벌적 과세, 임대차 3법 강행 등 오기 정책이 자초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 값이 급등해 실수요자들이 아우성치는 와중에도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면서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했다. 아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임대차 3법은 많은 전문가가 그토록 만류하고 우려했지만 끝내 밀어붙여 서민들을 벼랑으로 몰았다.
10월 중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값은 문 정부 출범 전과 비교하면 100% 이상 오른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4억원대에서 6억원대로 50% 이상 오른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도둑질이라도 하란 말이냐”는 절규가 나오는 지경이다. 이 상황은 문 대통령의 아집이 초래한 부분이 크다.
진정성 있는 반성부터
문 대통령의 현실과 괴리된 인식과 자화자찬식 화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임기 말까지 대통령의 공허한 자기 자랑을 들어야 하는 국민은 참담하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소명도 마지막까지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임기 말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공정한 선거 관리와 정치적 중립이다.
차기 대선과 연관된 이슈에 침묵할 필요가 있겠지만 역사적 평가는 피할 수 없다. 지난 임기 동안의 총체적 실정(失政)을 되돌아보고 진정성 있는 반성부터 해야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