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윤명철 기자]
공감(共感)은 사랑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사랑해야 한다. 공감을 통해 국민을 사랑하고 구애해야 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의 창시자다. 루스벨트가 뉴딜이고, 뉴딜이 루스벨트다. 뉴딜정책은 대공황으로 모든 것을 잃은 미국 국민을 되살린 대혁신이다. 굶주리고 절망에 빠진 국민을 위한 공감복지다.
루스벨트는 서민의 대변자로 보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잘 난 인간’이었다. 상류층에 하버드 대학을 나온 전형적인 아메리칸 초엘리트다. 절망의 늪에 빠진 서민의 아픔을 보다듬고 삶의 애환을 치유하기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루스벨트가 대공황의 낭떠러지에 빠진 미국을 구한 이유는 뭘까? 국민의 공감을 얻었던 덕분이었다. 그는 뉴딜을 제시하기에 앞서 절망에 빠진 국민의 두려움을 해소시키고 희망을 주는 데 주력했다.
루스벨트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두려움 그 자체다. 우리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 1933년 대통령 첫 취임사에서 밝힌 희망 메시지다.
대공황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려움이 아메리칸의 정신과 마음을 지배했다. 루스벨트는 이 점을 정확히 꿰뚫고 희망의 뉴딜을 먼저 시작한 것이다. 미국 대륙에 희망이 넘쳐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반면 전임자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공감할 줄 몰랐다. 후버는 1928년 대선에서 큰 득표차로 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대선 승리의 기쁨에 취해 몇 달 뒤 찾아올 대공황의 전조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1차세계대전 승전으로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가 미국의 뜻대로 움직였다. 전쟁의 피해도 없었고, 달러가 넘쳐났다. 전쟁 중 공장은 쉴 새없이 돌아갔다. 세계공장 미제 물자는 족족 전쟁터로 보내졌고, 미국 곳간은 금과 달러로 가득 채웠다.
문제는 전쟁이 끝났다는 점이다. 공장엔 재고품이 쌓였다. 제대 군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장이 안 도니 실업자만 넘쳐났다. 주식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통령 후버는 무사태평이었다. 자유방임주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다. 왜? 우린 미국이니까!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에 온 청교도는 그동안 거칠 것이 없이 승승장구했다. 남북전쟁도 발전의 도약대가 됐다. 자신감이 자만감으로 변질되는 동안 미국 경제는 서서히 암세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후버와 재벌들은 불경기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낙관했다. 현실은 달랐다. 그들의 낙관이 절망으로 돌변했다.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식 가치는 공황전에 비해 5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기업은 빚에 몰려 파산했다. 5천개가 넘는 은행이 무너졌다. 빚에 몰린 수많은 국민들이 집을 뺐겼고 들이 집을 잃었고, 농업도 망가졌다. 1932년엔 미국인 24.9%가 실직자였다.
뒤늦게 위기감에 빠진 정부는 기업 지원책인 재건금융공사(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 (RFC))설립, 농가부채 추가지원, 금융개혁, 공공사업 확대, 정부조직의 긴축 운영 등 각종 구제안을 내놓았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대공황이 이미 유럽으로 퍼져 나가 미국 혼자만의 자구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세계 대공황이 시작됐다.
후버의 최대 실책은 대공황을 경제문제로 치부한 데 있다. 국민은 재산만 잃은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었다. 후버는 이 진실을 몰랐고, 놓쳤다. 결국 1932년 미국민은 후버를 내쫓고 루스벨트를 선택했다. 후버의 패배는 국민의 두려움을 외면한 대가다.
루스벨트는 국민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잘 알았다. 국민의 정신과 마음에 깊이 박힌 두려움을 먼저 없애고 뉴딜 정책을 펼쳤다. 미국이 변하기 시작했다. 희망을 되찾은 미국은 히틀러와 일본 군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열었다. 루스벨트의 말대로 두려움 그 자체를 극복한 당연한 결과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독식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전 정권의 민변 위주 인사 정책을 빗대 자신의 인사를 옹호했다. 잘못된 판단이다.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는 문재인 정권 특유의 내로남불과 왜곡된 선민의식이 지배한 대한민국을 치유해달라는 데 있다. 문 정권은 국민과 공감하지 않고, 자기네 사람들과 공감하는데 전념했다. 무조건 자신들이 옳았다. 대선에 지고서도 아직도 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다지만 국민이 공감할 수 있게 행사돼야 한다. 검사출신이 똑똑한 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국민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과의 공감 시간을 열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