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직과 진실은 절대적 가치로,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신뢰의 명제다. 그러나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 속성상 하얀 거짓말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을 해명하고 변명하며 방어한다.
특히 유사 이래 정치인의 거짓말이 도를 넘어서 왔다. 자신이 이전에 했던 말을 뒤집는 정반대의 말도 수시로 저지른다. 여기에 과거의 기록을 찾아내 거짓말임이 밝혀져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사과하기보다는 부인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존슨 영국 총리 불명예 퇴진
거친 입과 거짓말의 대가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불명예 퇴진한다. 잇단 추문과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던 그는 결국 여당인 보수당 대표직에서 사임해 ‘식물 총리’로 전락했다.
최근 측근의 성비위 사실을 알고도 주요 당직에 기용한 뒤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거짓말을 하다 들통났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의 당 대표 사임은 '파티게이트'가 먼저 불을 댕겼다면, 성 비위 측근에 대한 거짓말이 결정타가 됐다. '파티게이트'는 코로나19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총리실 직원들이 술판을 벌인 사건을 말한다.
그는 갖가지 논란에 대해 솔직함 대신 수시로 말 바꾸기를 되풀이했다. 거짓말로 덮고 덮다 영국 국민에게 믿지 못할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한 달 전 신임투표로 위기를 돌파하는가 했지만, 장관들의 줄사퇴로 내각 붕괴 위기까지 맞으면서 결국 취임 3년여 만에 불명예 퇴진을 눈앞에 두게 됐다.
그 외에도 외국에서 거짓말이 정치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힌 사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형적인 예로 꼽히는 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은 도청 등 불법 행위보다 닉슨의 거짓말이 그의 사임을 초래했다. 줄곧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닉슨을 무너뜨린 워터게이트 사건만 해도 당시 공화당 당원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선거사무실에 침입해 자료를 훔쳐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면서 닉슨은 임기 중 첫 사임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미 국민이 가장 분노한 지점은 도청이 아니라 위증 및 위증 교사였다.
정치인과 거짓말
이렇게 정치인과 거짓말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치인에게는 늘 거짓말쟁이라는 조롱이 붙어 다녔다. 거짓말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든 일상적인 것이든 왜 그렇까. 정치라는 직업이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인가.
한국에서도 유력 정치인들이 제기된 의혹이나 구설에 대해 누가 봐도 거짓인 해명을 임기응변식으로 내놓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후 거짓으로 드러나면 또 다른 거짓으로 해명하며 사태를 벗어나려 한다. 그런 행태가 계속되면 철면피에 뻔뻔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고, 결국 대외적 공신력에 치명상을 입는 게 자명한 사실임에도 말이다.
심지어는 중상모략이나 마타도어를 일삼기도 한다. 과연 국민을 대표하는 집단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에 정치학자들은 정치인의 거짓말을 모두 매도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불순한 동기에서 의도된 새빨간 거짓말인 경우도 있지만, 그 가운데는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이 되기도 한다. 즉 정치 상황에 맞춰 처신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말이 달라지기도 하고 외교 분야 등에서는 거짓말이 오히려 유익한, 이른바 하얀 거짓말도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해명을 내세울 수 있다 하더라도 정치 종사자나 공직자는 늘 진실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공직자 덕목에 정직 같은 도덕성은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현실에서 정치인은 거짓말을 해도 작은 소동만 있을 뿐 종종 면죄부를 받는다.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아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수시로 포착된다.
그만큼 핵심 가치인 정치인의 정직은 현실 정치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유권자들이나 지지자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이 거짓인 것을 알아도 지지 감정과 믿음까지 철회하지는 않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거짓말이 정치 도구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16세기에 거짓과 위선을 지도자의 덕목에 포함시켰다. 정직하도록 노력하되 진실로 인해 불이익이 초래된다면 거짓을 말해도 된다는 논리다. 과연 그래도 될까?
인간은 어쩌면 타고난 거짓말쟁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고난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짓말이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이야기, 이솝 우화의 심심한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릴 때부터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사실을 축소, 과장, 왜곡, 은폐하는 일은 인간의 일상에서 상당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며 때로는 거짓말을 사회생활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나누는 대화중에서 3분의 1이 거짓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제리 제리슨(Jerry Jellison) 심리학 교수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200번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거짓말의 빈도를 조사한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평균 2~3회 거짓말을 한다고 말한다. 실험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사람은 거짓말 없는 하루를 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단서를 드러낸다. 예를 들면, 빌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하면서 평균 4분에 한 번꼴로 코를 만졌다. 클린턴은 거짓말을 지껄일 때 코 속 혈관으로 피가 몰려 간지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코를 문질렀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거나 피노키오와 클린턴의 코처럼 거짓말쟁이는 신체적 반응을 나타낸다는 전제하에 1920년대에 개발된 장치가 거짓말 탐지기로 알려진 폴리그래프(Polygraph)이다. 맥박, 혈압, 호흡 따위의 생리적 변화를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기 때문에 폴리그래프 조사의 신뢰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거짓말을 할 때 뇌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거짓말 탐지기술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참말과 거짓말을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짓말 탐지기법이 제아무리 발달해도 거짓말쟁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짓말에 큰 반감을 갖게 마련이다. 거짓말이 신뢰를 망가트리고, 관계를 무너트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사소한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거짓말의 강도가 약해 큰 문제가 일으키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지만, 결국 신뢰를 잃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고 간다.
이 균열은 사소한 거짓말이 쌓이면서 만들어지기도 하며, 사소한 거짓말을 수습하기 위해 커져버린 다른 거짓말에 의해 생기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한번 생겨버린 균열을 다시 봉합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거짓말이 만든 균열을 봉합하지 못하고 완전히 깨어져 버린 관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복적으로 거짓말하는 이유
이렇게 거짓말이 관계를 망가뜨리는데도 왜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할까?
1. 양치기 소년 이야기
거짓말 자체가 주는 중독성이다. 남을 속이는 행동 자체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TV에서 몰래카메라 류의 프로그램을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이나 이솝 우화의 유명 이야기 중 하나인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이 경우에 속한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반응으로 보며 즐거워했던 소년처럼 상대방이 속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끼고 그 횟수를 늘려가거나 거짓말의 크기가 점차 커져 갈 수 있다.
2.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거나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는 욕구가 매우 크다. 또한 거짓말을 통해 불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한다.
문제는 때로는 거짓말로 본인의 욕구를 채우는데 성공하지만, 본질적인 원인 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이 반복되고 대인관계 단절이나 심한 우울감 등의 더 큰 문제들을 양산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이나 트라우마가 영향을 주고 있거나 우울증 등의 질환이 있는 경우도 생각을 해 봐야 한다.
3. 병적 거짓말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거짓말 자체를 사실로 믿어 버리는 상태다. 본인은 그 허구의 세계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후회도 없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는 큰 사건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빈번하며, 병적 거짓말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경계선 인격장애 등의 특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관계를 병들게 만드는 반복되는 거짓말을 멈추기 위한 방법은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정이란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에게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리플리 병 또는 리플리 효과라고도 하며,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이 상상하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의미한다.
리플리 증후군의 원인은 불만족스러운 삶, 열등감과 피해의식,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원하는 것을 현실로 이루고 싶은 욕구가 강할 발생할 수 있다. 흔히 무능력하지만 성취욕구가 강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경향이 크다. 또한 학벌 만능주의 등의 사회적인 요인도 리플리 증후군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진짜 속마음은?
우리는 모두 자기방어본능이 있기 때문에 위협이라고 느껴지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중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유형을 읽을 수 있다.
먼저 무의식에서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사실 이러한 거짓말은 일반 사람들도 한다.
다만 정말로 국민의 행복과 나라 발전을 위한 정치인이라면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의 무의식적 사고에는 국민과 나라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정파의 이익, 세력 확대를 위한 심리적 동기가 가득 차 있다. 진실을 숨겨 지지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 가능성도 포함된다.
둘째, 자신의 거짓말을 믿을 거라는 바람이 강한 유형이다.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다. 내가 거짓말을 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의 지지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말을 믿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중에 거짓말임이 밝혀진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비합리적 상상을 한다.
경우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실제 타인의 거짓말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받아주고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몇 번 거짓말을 했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생겼다면, 거짓말 역시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경쟁 정파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을 해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았을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무엇보다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정치인은 '자기애적 성향(Narcissistic trait)'이 강하다.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에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나의 거짓말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명성과 앞날에 타격을 주려는 불순한 의도가 더 많기에 지지자들과 연대 세력을 동원해 상대방을 막아야 한다고 문제를 끌어간다.
그다음,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이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결론을 내린 후 필요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증거 인멸 같은 것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에 관련된 사람들의 입단속은 필수다. 물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힘 있는 정치인이 종종 하는 방식의 거짓말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인은 거짓말로 인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거침없이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거짓말이 더 큰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지는 하나의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선동의 목적이 매우 강하다. 자신의 거짓말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반대 진영과 다투면서 더욱 결속하며 정치 위상도 올라가는 기폭제가 된다는 신념이 작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정치인에게 거짓말은 필요악인가.
참된 수호해야 할 가치가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정치 종사자나 공직자는 거짓말로 둘러대는 순간적 목전의 이익보다 늘 진실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 위치에 있기에 일반 국민보다 한층 엄격한 자질과 반듯한 품성이 요구된다.
거짓말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탐대실로, 정치인이나 공직자 등의 거짓말이 만들어내는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니 어리석은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사회 모든 분야 지도자는 그 모범을 보여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김형석 교수는 "남을 끌어내리고라도 내가 올라가야겠다 하는 사람은 자기도 불행해지고 사회도 불행해진다. 거짓말해서라도 내가 대통령이 돼야겠다 하는 사람은 필요가 없다."고 설파했다.
또한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은 생전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죽더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 숭고한 뜻을 이 시대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할 것이다.
특히 '정직이 곧 애국'이라는 안창호 선생의 삶은 거짓말이 판치는 작금의 세태에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