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지 말자’ 미·중 암묵적 합의
북핵 저지 고삐부터 죄라
北 싸고돈 中, 한미일 3각 표적 자초
경쟁의 충돌 비화 막아야
연쇄 정상회담 평화·국익 다지는 계기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중국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외교가 새 국면을 맞았다. 동북아 정세 변화의 바람이 크게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첫 대면 회담을 가졌다. 이런 가운데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까지 겹쳐, 신냉전을 방불케 했다. 전략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양국 정상이 핵심 경쟁지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마주했다는 점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계속 중국과 격렬히 경쟁할 것”이라면서도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도 “미중 관계를 건전한 궤도로 돌리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다만 두 정상은 3시간 넘게 진행된 회담 내내 팽팽하게 대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미중은 경쟁이 충돌로 변하지 않도록 차이점을 관리하고 긴급한 국제 문제에 협력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솔직하고 깊은 대화로 중미 관계를 발전 궤도로 되돌릴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대만, 북한, 우크라이나 전쟁, 경제 등 양국 간 갈등 현안부터 기후변화, 감염병, 형사사법 협력 등 공동 대응 사안까지 폭넓게 논의했다. 중국의 대만 위협 및 남중국해 분쟁,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수출 통제 등 핵심 사항에선 양보 없는 논쟁을 펼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중단하도록 중국이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미중 관계 향배에 촉각
이번 회담은 미중 간 경쟁 관계를 인정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충돌을 줄이는 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양국의 팽팽한 입장차는 두 정상의 5차례 화상회담·전화에서 이미 확인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목표가 각자의 '레드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 확인이라고도 했다.
다만 양국 간 대화 채널이 펠로시 대만 방문으로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정상들이 직접 만나 소통의 물꼬를 튼 점은 긍정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중간선거에서 선전하고 시 주석도 지난달 당대회에서 1인 집권 체제를 완성해 국내 정치에서 입지를 다진 점이 정상외교 활성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한국 정부도 미중 관계의 향배에 촉각을 세울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려면 한미일 공조와 더불어 중국이 북한에 지렛대를 행사하도록 대중 외교에 공을 들여야 한다.
美中 충돌방지 ‘금지선’ 논의
이번 정상회담은 미중 간 전방위 경쟁이 불가피하지만 적어도 극단적 분쟁으로 빠지지 않도록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성사됐다. 비록 미중 갈등의 돌파구 마련은 어렵지만 충돌을 막기 위한 레드라인(금지선)을 모색하자는 데 두 정상은 동의했다. 마침 시 주석은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중간선거에서 선방한 뒤여서 다소나마 국내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 솔직한 속내를 나눌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만해협 갈등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쟁, 무역·기술 갈등, 인권문제 등 각 사안마다 공통분모를 찾기는 어려웠다. 회담 전 바이든 대통령이 “어떤 근본적 양보도 할 의사가 없다”고, 중국 외교부가 “우리 이익을 확실히 지킬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였다. 그럼에도 두 정상은 양국이 적대와 충돌로 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후속 고위급 회담 등 대화채널을 복원해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
격화되는 미중 전략경쟁은 동북아에도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심화시켰다. 북한은 이런 신냉전 기류를 틈타 고강도 도발로 한반도를 초긴장의 위험지대로 만들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도 북핵은 주요 의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모두 북한이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에둘러 촉구한 것이다.
미국도 중국도 극한 대결은 원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경쟁하되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가드레일을 세워 충돌을 막는 한편 기후변화, 식량위기 같은 글로벌 현안에선 협력의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고삐 풀린 북한의 핵 도박을 저지하는 것도 미중이 당장 협력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특히 중국이 동북아 평화를 지키는 책임 있는 자세를 실천으로 보여줄 때다.
중국 군사력까지 봉쇄하겠다는 강력한 경고
한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 한미, 한미일, 한일 정상회담을 잇달아 열어 3국 간 전방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세 정상은 최초의 한미일 파트너십 공동성명을 통해 3국 간 북한 미사일 경보 실시간 공유, 경제안보대화 신설, 중국을 겨냥한 ‘경제적 강압’에의 공동 대응에 합의했다.
연쇄 정상회담은 갈수록 대담해지는 북한 도발에 맞선 한미일 3각 협력의 강화라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미일 3각 체제는 중국이 극도로 경계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간 북한의 고강도 도발을 방조하고 두둔하기에 바빴던 중국으로선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군색한 처지에 몰려 있다. 더욱이 중국은 3각 협력 체제가 결국 자신을 겨냥해 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 수위를 한층 높여가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미중 정상의 첫 대면회담을 앞두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계속 도발하면 역내에 미국의 군사·안보 주둔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아가 3국 안보협력은 “북한이라는 공통 위협뿐 아니라 역내 평화·안정을 강화하기 위한 역량까지 포함한다”고도 했다. 동북아에 미군 주둔과 무기 배치·전개 등 군사력을 더욱 키울 것이며, 북핵 저지를 넘어 그 배후의 중국 군사력까지 봉쇄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날린 것이다.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일본의 공동전선에 합류
우리 정부도 그간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걸었던 기대를 접고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일본의 공동전선에 성큼 합류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 불용’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거듭 강조하고, 한미일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겨냥해 ‘경제적 강압에 함께 대항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세계적인 신냉전 기류 속에 북한은 동북아를 그 최전선 대결지대로 몰아가는 위험천만한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북한의 모험주의는 악행을 처벌하기는커녕 감싸주기에 급급했던 중국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이제라도 ‘비핵화를 위한 건설적 역할’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중국이야말로 결코 원치 않을 ‘한미일 3각 동맹’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번 G20 정상회의가 회담이 갈등 해결보다 이견 확인의 장이 될 것이란 관측은 진작부터 나왔다. 갈수록 심화하는 미·중 갈등은 우리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이 올해에만 탄도미사일을 100발 가까이 발사했는데도 중국은 이를 두둔하며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를 막고 있다. 북은 곧 ICBM 추가 발사나 7차 핵실험도 강행할 것이다. 이번 핵실험은 과거 6차례 핵실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남 타격용 단거리미사일에 탑재할 소형 전술 핵탄두 양산을 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충돌 막기 위한 ‘레드라인’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동참을 선언하는 등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노선에 빠르게 합류하고 있다. 한·미·일 정상회의에선 공동성명을 통해 3국 경제안보대화체 신설 방침을 밝히는 등 중국에 대한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
과거 정부들은 전략적 모호성을 지킨다면서 미·중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의 불신을 자초했다. 똑같은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최대 이웃인 중국을 등지고 살 수 없다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국익 외교를 추구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중 정상이 양측의 갈등이 통제 불능 상황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는 사실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도 회담에 대해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가드레일’과 ‘도로의 명확한 규칙’을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양측이 오판에 따른 충돌을 막기 위해 ‘레드라인’을 정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주요 목적이었단 얘기다. 정부는 이번 회담 결과를 예의 주시하며 우리 안보에 닥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대비해야 한다.
전 세계인에 어느 정도 안도감
갈수록 고조되는 미중 갈등의 와중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가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발리에서 면대면 회담을 했다. 이들은 전 세계가 분쟁과 경제적 악재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인정하고, 두 초강대국 사이의 경쟁이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결과 발표를 보면 두 사람은 갈등을 단번에 해결하거나 잘라내는 방식 대신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쪽에 무게를 둔 듯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 후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그러나 갈등을 원치 않는다"고 한 말이 이를 방증한다. 어떤 공식 합의문이나 성명도 없었지만 '선은 넘지 말자'는 미중 사이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국내 정치의 중대한 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발리에서 만났다. 바이든은 기대 이상의 중간선거 성적표를 받았고, 시진핑은 3 연임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상황이다. 힘이 실린 두 사람이 상황 악화 방지에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전 세계인에게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줬다. 두 사람은 이날 회담에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 협상을 재개하고, 각료 수준의 대화 노력 재개에도 합의했다. 당장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시각차
갈등 봉합의 첫 단추를 끼우긴 했지만, 이것이 안정적인 국제 정세 관리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핵심 이슈들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대만은 미중 관계에서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에서의 현상 변경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핵무기 사용 위협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는 "두 정상이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당국은 "복잡한 문제에 간단한 해결책은 없다. 강대국 간 대결은 피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북핵에 대한 두 정상의 시각차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더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들(중국)의 의무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면서 북한이 계속 도발을 이어갈 경우 미국은 추가적인 방위행위를 취할 수 있음을 밝혔다고 했다. 그러나 시 주석과 중국 당국은 북 도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 말대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할 역량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예상되는 7차 핵실험은 중국의 이익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 주석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이 '핵심 중 핵심'이라고 말한 대만 문제는 한반도 긴장과 맞물려 있다. 북의 도발은 한미일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 동아시아에서 미국 전략 자산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미중간 이해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북한 문제는 두 정상의 갈등 봉합을 위한 이번 회동의 의미를 진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일 수 있다. 시 주석이 북한 도발을 억제하는 쪽으로 태도를 변화한다면 동아시아의 긴장 수위는 현저히 내려갈 것이다.
尹-시진핑 첫 회담 확정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3년 만의 한중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상견례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 한미일, 한일 정상회담을 차례로 가진 데 이어 이날 한중 정상회담으로 동남아 순방 다자외교의 대미를 장식했다. 연쇄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에 관한 주도권을 쥐게 됐다고 하겠다.
이번 순방외교의 하이라이트는 시 주석과의 양자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시 주석과 윤 대통령은 지난 5월과 10월 각각 친서를 주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또 지난 3월 당선인 시절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한중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자"고 제안했었다. 지난 8월에는 "미래 30년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주석님을 직접 뵙고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한중 수교 30주년 축하서한을 보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의 제7차 핵실험과 미사일 위협 등 전방위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거듭 요청했다. 한국은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대중국 견제 대열에 발을 깊숙하게 들여놓은 상태이다. 3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경제적 강압에 함께 대항할 것"이라며 안보 이슈를 넘어 경제 부문에서도 대중 견제 기조를 분명히 했다. 중국을 겨냥한 3국 경제안보대화 신설도 발표했다.
중국을 겨냥한 3국 경제안보대화 신설
여기에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이 자유·민주주의·인권 등 보편 가치에 기반한 외교와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군사공조 강화인 점도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원활하지 않은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양국이 약식회담이 아니라 정상회담 일정에 전격 합의한 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경제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절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미국 쪽으로 너무 밀착하지 않도록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날 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직접 거론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도발 자제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요청했지만, 시 주석은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를 균형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역내 군사력 증강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경고'에 중국도 고민이 깊었다. 양국은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나 한국의 '칩4' 반도체 협의체 참여 등 불편한 현안을 지혜롭게 풀고, 안정적 관계를 이룰 기회를 맞았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새로운 한중관계 정립을 위한 초석을 놓길 기대한다.
북한에 사실상 면죄부
우여곡절 끝에 두 정상은, 윤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지난 3월 25일 전화 통화를 했고, 윤 대통령은 지난달 시 주석의 3연임 확정 직후 축전을 보냈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12월 23일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과 회담한 이후 시 주석의 방한은 양국 관심사였는데, 일단 제3국에서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수교 30년을 넘긴 한·중 사이에는 안보·경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의 해결이다. 2014년 7월 3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박근혜-시진핑 정상회담을 계기로 채택된 공동성명의 제6항은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다’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뒤에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했다. 문제는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명확한 안보리 결의 위반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며 추가 제재를 반대하고 있다.
대응력의 획기적 증강 불가피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 위협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대한민국의 명확한 입장을 시 주석에게 전해야 한다. 다만, 반도체·배터리 등 투자·기술 문제 등에 있어서는 상호 불이익이 없도록 공동 노력할 것임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마침 하루 전에 열린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미·중 양국은 경쟁을 하면서도 충돌은 피한다는 원칙에 공감대를 이루고, 후속 협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중국 발표에는 북핵, 한반도 등의 표현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 폐기와 대북 제재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면 제2, 제3의 사드 배치는 물론 대응력의 획기적 증강도 불가피함을 역설해야 한다.
북한은 올 들어 30여 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고 7차 핵실험까지 예고했다. 3국은 릴레이 양자회담도 가졌다. 한·미·일, 한미, 미일 정상회담이 잇달아 개최된 것은 6년7개월 만으로 안보위기가 3국 연대를 공고히 한 셈이다.
삼각동맹 적지않은 성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두고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확장억제 강화 방안으로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한 각국의 탐지·평가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미사일 정보 공유는 한미 양국 간에만 실시간 이뤄졌을 뿐 한일 간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의 핵 위협이 심화한 가운데 3국 정상이 삼각동맹을 굳건히 했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성과다.
경제에 대한 기여 주목
‘프놈펜 공동성명’은 동북아 안보와 군사적 대응책에 치중하던 과거 성명과 달리 경제안보까지 아울러 주목받고 있다. 3국 정상은 “역내와 전세계 이익을 위해 우리의 기술 리더십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안전한 공급망 보장, 핵심 기술과 신흥 기술 관련 협력 강화, 핵심 광물의 다양한 공급망 강화 등을 통해 경제 공조를 강화한다면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과 관련 “한국기업의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고려할 것”이란 발언을 이끌어 낸 점에 특히 주목한다.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게 돼 바이든 대통령이 과감한 해법을 도출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정부는 IRA에 관한 한미간 협의채널을 더욱 긴밀히 가동해 한국 전기차가 보조금 차별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이날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냉각된 한일관계가 다소 회복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징용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으면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뉴욕 회동에 이어 2개월 만에 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다. 두 정상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날 양국 관계 개선의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배상문제는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했으나 외교 채널을 통해 신뢰를 쌓는다면 진전이 기대된다. 정부는 프놈펜 정상회담 성명과 회담 내용의 실효성을 높일 전략을 세밀하게 수립해야 하겠다. 또한 윤 대통령은 남은 G20 순방 일정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국익을 위해 전념하기 바란다.
국정 동력 확보…일제 강제동원 배상 조속 해결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해 “한국 기업이 자동차, 전기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해 IRA의 이행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 “우려를 잘 안다”는 수준에서 한 걸음 진전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핵 사용 시 가용 수단을 활용해 압도적 힘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상원 승리로 국정 동력을 확보한 만큼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거의 3년 만에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도 의미가 크다. 양 정상은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조속히 해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구체적 협의가 없었다지만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며 해결책을 한국에 떠밀었던 종전의 입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미 양국 기업의 기금에다 국민 성금을 보태는 ‘문희상 안’처럼 여러 대안이 나와 있으니 양국이 한발씩 양보해 빠른 시기 안에 합리적인 합의안을 도출하기 바란다. 윤 대통령의 제안처럼 미래지향적으로 과거사와 북핵 위협 및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수출 규제 등 산적한 현안을 모두 테이블에 올리는 담대한 접근도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는 ‘신아세안 구상’을 발표했다. 제2위의 교역 대상인 아세안국가와 협력을 확대해 경제위기 극복의 동력으로 활용하자는 것인데 다변화 차원에서 방향은 맞다.
하지만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과 긴장 관계를 해소하는 것도 시급하다. 중국 관영 매체는 한·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을 놓고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결성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주요 20개국(G20) 회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 성공 후 처음 등장하는 외교 무대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이미 만났고 중·일 정상회담도 태국에서 열린다. 우리도 끝까지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
윤 대통령의 4박6일 동남아 순방중 첫 번째 절반 일정에선 외교적 성과가 적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핵에 대응하는 한·미·일 3국의 협력 강화 관련 내용이다. 세 나라 정상은 포괄적 성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른바 ‘프놈펜 3국 파트너십 성명’이다.
이에 따라 3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발사 지점과 예상 목표, 미사일의 유형, 운항 궤적 등 서로 파악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3국 정상이 안보 분야에 공동성명을 내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아시아의 안보 불안감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때엔 3국 정상의 대동단결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로 평가된다.
순방 출발 당시까지도 예정된 것은 한미, 한미일 정상회담뿐이었다. 한일 정상회담은 현지에서 확정된 것이다. 거의 3년 만에 이뤄진 한일 양국 정상간 정식 회담이다.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증거다. 그 결과가 3국의 논란 없는 공동성명이다. 평가에 인색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한국 기업의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과 관련해 바이든 미 대통령으로부터 “한국 기업의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고려할 것”이란 발언을 이끌어낸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서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관리들의 발언은 “우려를 잘 안다”는 수준에서 “한국 입장을 고려하겠다”는 선까지 나아갔다. 향후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남은 발리 일정도 숨가쁘게 돌아간다. 윤 대통령은 G20 공식 회의는 물론 회원국 경제단체와 기업 대표들이 참여하는 B20 서밋 참석과 기조연설,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인들과의 간담회까지 중요한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무엇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 성공 후 처음 등장하는 국제무대다. 조율되지 않은 한중 정상회담을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대면 가능성은 없지 않다.
이번 동남아 순방 행보는 그동안의 유엔 캐나다 영국 방문 등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MBC의 동행취재를 불허한 보복성 조치가 옥에 티지만 지금까지는 외교적 실수나 의전에서의 구설이 없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남은 G20 일정에서도 세심한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외교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다.
‘3국 연대’ 공고히 한 한미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갈수록 고조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선 3각 공조의 장이자, 최고 수위의 대북 압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회담 후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에서 "대북 확장 억제 강화를 위해 더욱 긴밀한 3국 연대를 공고히 해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미일 3국 정상이 포괄적 성격의 공동 성명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3국은 릴레이 양자 회담도 가졌다. 한미일, 한미, 한일, 미일 정상회담이 잇달아 개최된 것 또한 6년 7개월 만이다. 올해 들어 30여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7차 핵실험까지 예고된 '안보 위기'가 한미일 3국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특히 3국 정상은 '경제안보대화체' 신설에도 합의했다. 공동성명은 "역내와 전 세계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기술 리더십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연대할 것"이라며 "경제적 강압에 함께 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로 분리됐던 종전의 국제 사회 질서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안보와 경제를 함께 도모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 기업의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고려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이행이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이 대화체 신설을 계기로 IRA 문제 등 3국의 경제 현안들이 빠른 해결에 이르기를 기대한다.
한미일 연대 강화 노선 채택
윤 대통령은 이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정했고,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엔 해양법 협약을 포함한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아세안 국가들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이런 수위 높은 직설적 입장 표명은 동아시아의 긴장 고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한미일 연대 강화 노선을 채택했음을 대외적으로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러시아 무기 지원설, 유엔 안보리에서 중러의 대북 지지, 러시아의 한국 비난 발언 등 최근 공고화하는 북중러 연대에 맞선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북한을 주저앉히는 것이 중국 정부 선결 과제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 심화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바람직하지 않다. 팽팽한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사소한 충돌로도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각국은 평화 공존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를 역행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북한이다.
'핵보유국'임을 자처한 북한의 전례 없는 도발 행위는 한미일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자, 종국에는 중국에도 전혀 이롭지 않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실시된다면 미국은 북핵·미사일 대응을 명분으로 동북아 주변에 전략자산 배치를 강화할 것임을 중국 당국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한미일 3국의 협력 강화를 탓하지 말고, 국제 역학 구도의 변화 와중에서 동북아 질서를 파괴하려는 북한을 주저앉히는 것이 중국 정부의 선결 과제다. 우리 정부도 한미일 3국 연대 강화 이후 북중러의 움직임을 긴밀히 주시하고, 이들 연대를 실효적으로 제지하는 방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