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한민국이 ‘인구절벽’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9년 11월 이후 출생아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인구 자연감소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 추세대로라면 우리나라 인구는 2021년 5200만 명에서 2070년 3800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의료 발달로 기대수명이 83.6세(2021년 기준 남자 80.6세·여자 86.6세)까지 증가했음에도 총인구가 감소하는 건 낮은 출산율 때문입니다. 2021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심지어 2022년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0.8명선마저 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6년 이후 역대 정부에서 271조9000억 원에 달하는 저출산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이 제고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정부의 일차원적 지원 대책을 첫 손에 꼽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현금성 지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수당’ 개념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형태였습니다.
물론 이는 출산 가정에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2014년 작고한 게리 베커(Gary Becker) 전 시카고대 교수는 결혼, 출산 등의 행위를 경제학적으로 분석, 사회과학 분야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요.
베커 교수는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기쁨이라는 효용이 양육에 필요한 노동과 자본의 비용을 초과하면 출산을 하게 되지만, 자녀 양육에 따른 비용이 효용보다 크면 출산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출산율은 노동과 자본이라는 비용뿐만 아니라 기쁨이라는 효용도 함께 변수로 작용하는 함수입니다.
결국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기쁨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비용 최소화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기쁨의 극대화’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입니다.
기쁨이란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서문처럼, 가정을 꾸리고 출산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기대하는 감정은 존재할 겁니다. 갓난아이의 배냇짓에 웃음 짓고, 퇴근 후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한겨울 밤 TV 앞에서 귤을 나눠먹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면서 캐럴을 흥얼거리는 소소한 경험들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돈’ 외에도 많은 것들이 요구됩니다. 아이와 함께 산책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이 아닌 ‘함께 하는’ 육아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아이가 실수를 해도 너그러이 이해해줄 수 있는 이웃들의 넉넉한 품도 필요합니다. 입시 경쟁에 돈과 시간을 과도하게 소모하는 문화도 변해야 합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조건이 충족될 때, 사람들은 ‘비용’을 감수하고 출산을 선택하려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출산 정책은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아이를 낳겠지’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 의식의 변화로 ‘기쁨’을 느끼는 조건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정책 눈높이는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던 시대에서 멈춰 있는 겁니다.
지금껏 우리나라는 영아수당, 아동수당, 첫만남이용권, 보육료 지원 등 꾸준히 현금성 보육 지원을 늘려왔습니다. 하지만 매년 출산율은 낮아졌고, 심지어 인구 감소의 시대를 맞게 됐습니다. 이제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편협한 정책 방향에서 탈피해, 부모에게 출산과 육아가 ‘기쁨’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경제·사회·문화적 ‘대 변혁’을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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