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후보자 10명 중 4명은 전과 기록
기득권 털어내고 과감한 대안세력 발굴을
진흙탕 정쟁 멈추고 미래 비전 놓고 경쟁하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공천정국이 파행으로 흐르고 있다. 여야는 민생을 외치면서도 정작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민생법안 처리를 미룬 채 강성 지지층 눈치 보기와 정쟁, 권력 다툼에 치중한다. 퍼주기식 총선 공약 남발만으로 표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정쟁을 멈추고 마지막까지 민생법안 처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총선 대책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이번 국회의 명예 회복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
선거를 앞둔 정당이 개인 지도자에 의해 일거에 혁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집권당의 인기는 결국 섬세함과 건강함을 담은 민생 정책에 달려 있다. 특정 인물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당 전체가 상식에 바탕한 미래비전을 쏟아내고 진정어린 혁신 공천을 이뤄낼 때 거대한 민심은 움직일 것이다. 그 점을 집권당은 명심해야 한다. 이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도 공히 적용되는 진실이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어느 당도 자기 주장만 관철할 수 없다. 요즘 국회 행태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시·견제하는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2만4381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를 세부적으로 보면 의원 발의 2만2567개, 위원장 발의 1078개, 정부 발의 736개다. 이 중 처리된 법률은 7495개로 전체 발의된 법안의 30.74%에 불과했다. 처리된 법안 중에서도 350개는 부결, 폐기, 철회 등의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29.31%만 통과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은 염치없게도 월급을 꼬박꼬박 챙긴다.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도사린다. 4월 총선에 출마하려는 예비 후보자 10명 중 4명은 전과 기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운전과 횡령, 사기 등 국회의원이 되기엔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나서는 게 대한민국 정치 수준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매일경제가 18일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총선 예비 후보자 전과 기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1143명 중 430명이 전과를 보유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사기, 뇌물, 횡령, 음주운전 등 사회 통념에 반하는 범죄 이력을 보유한 후보들도 많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는 예비 후보자 10명 중 3명(31%) 꼴로 전과자였는데, 이번에는 전과자 비율이 더 높아진 셈이다. 국회의원이 되어 법안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전과 비율이 일반 국민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은 물론이고 더 악화됐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 정치인은 물론, 정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이유다.
전과자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한 것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여러 가지 예외 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전과자들이 관행이나 정상참작과 같은 핑계로 면죄부를 받아 당선되는 일이 없도록 유권자들이 당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각 정당이 내세운 후보를 그대로 믿어줄 게 아니라 국민 스스로 눈을 부릅뜨고 결격 후보를 걸러내야 한다.
더욱 가관은 옥중 창당이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3월 1일 가칭 정치검찰해체당을 창당해 제2의 3·1운동정신으로 싸워 갈 것”이라고 했다. 3·1운동에 대한 모독이다. 그는 “민주당의 우당으로 민주당을 견인하겠다”고 했는데, 위성정당으로라도 정치 생명을 이어 가겠다는 꼼수일 뿐이다.
총선 공천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명계의 비명계 밀어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후보의 능력과 비전·도덕성이 아니라 당의 오너와 가까운지의 잣대로 공천이 결정되는 정당은 공당(公黨)이 아니라 사당(私黨)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당시 낙승 무드에 젖은 친박계 핵심들이 ‘진박 감별사’ 운운하며 비박계를 박대했다가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민심은 오만을 가장 싫어한다. 지금 민주당에서도 당권파가 비주류 축출의 유혹을 느끼겠지만, 자제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화를 부른다는 진리를 명심하라.
여야 모두는 총선 성패를 가르는 열쇠가 혁신적인 공천과 인재 영입을 통한 대대적인 인적 쇄신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구시대적 이념 및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패거리 정치와 기득권을 털어내고 과감한 대안 세력을 발굴해야 한다. 무능과 무사안일로 일관한 국회를 완전히 판갈이 하겠다는 각오의 ‘공천 혁신’에 여야는 정치적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과거 어느 선거보다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후유증도 감내하기 힘들 것이다. 이럴 경우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이 더 어렵게 되는 것은 불 보듯 하다. 이러다 총선이 대립과 분열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선거운동과 공약(空約) 남발, 무원칙한 합종연횡 등의 낡은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거대 양당은 총선 때마다 물갈이 공천을 추진했고 그 결과 절반에 육박하는 현역 의원 교체가 반복됐다. 하지만 새로 공천을 받고 국회에 입성한 정치 신인들은 참신성과 실력을 보이기보다는 되레 정치 수준을 격하시킨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1대 총선에서 거대 야당의 초선 의원들 중에는 윤미향·김남국 의원처럼 각종 부패와 비위 혐의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빈발했다. 이 모든 게 실력과 자질·도덕성을 최고 기준으로 삼아야 할 물갈이가 대통령이나 정당 계파 보스의 측근들에게 공천 특혜를 주는 수단으로 악용된 탓이 크다.
이번 여야의 총선 물갈이도 ‘인적 교체 기준 계량화’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다. 그런데도 ‘윤심(尹心) 공천’ ‘친명(親明) 공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의원들은 당연히 여야가 걸러내야 한다. 하지만 ‘혁신 물갈이’라는 구호만 외치고 실제로는 여야 보스들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을 내리꽂는 윤심·친명 공천에 집착한다면 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능력과 품성을 겸비한 인재들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어떤 물갈이도 인적 쇄신이 아니라 정치 퇴행일 뿐이다.
여야 공천의 성패는 공정과 쇄신에 달렸다. 공천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고 공천 룰은 일관되며 참신하고 일 잘할 수 있는 인물로 쇄신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여야 모두 공정을 이야기한다. 민주당 임혁백 공관위원장은 “계파 배려 없다. 친명·비명·반명도 없다”고 공언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과정은 공정하고 이기는 공천이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문제는 실천이다. 말로는 공정을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사천이 횡행한다면 유권자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친누구’, ‘감별사’ 논란이 나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장이다. 여든 야든 공천 혁신 없이는 절대로 유권자 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빠져 무한 정쟁과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거대 양당이 민생은 외면하고 기득권만 챙기니 정치 혐오는 커지고 부동층만 늘어나는 것이다. 제3지대도 새 정치에 대한 청사진 없이 공천 지분과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의 냉혹한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정치공학적 합종연횡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민주주의를 복원하고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미래 지향적 가치 중심의 정당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여야는 물론 제3세력은 진흙탕 정쟁을 멈추고 미래 비전과 가치,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