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장벽 허무는 유통업계…‘AI 통역’ 먹고 입고 바른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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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장벽 허무는 유통업계…‘AI 통역’ 먹고 입고 바른다 [르포]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4.04.24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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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올리브영·롯데百, AI 통·번역 서비스 선봬
정확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소통 가능한 수준
번역기 있는지 몰라 못 써…“적극 홍보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올리브영(왼쪽)과 롯데백화점의 AI 통·번역기.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나는 3을 가져가고 싶다.”

무슨 말일까? 정답은 “이거 3개 주세요”다.

유통업계가 인공지능(AI) 통·번역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외국인 고객 편의 높이기에 나섰다.

24일 서울 강남 인근의 한 CJ올리브영 매장. 번역기를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들른 이곳에서 기자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AI에다 대고 프랑스어로 “Je vais prendre 3(이거 3개 주세요)”라고 말해 봤다. 그러자 AI는 이내 “나는 3을 가져가고 싶다”라는 문구를 보여줬다. 하고 싶은 말과 완벽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소통하는 덴 무리없는 수준이다.

사용법도 간단했다. 언어를 선택하고, 화면 밑 마이크 표시의 버튼을 누른 뒤 말을 하면 된다.

매장 직원 A 씨는 “음성으로 말하거나 자판을 쳐서 곧바로 번역이 가능하다”며 “1층 계산대 뒤편에 기계가 마련돼 있는데, 필요할 경우 직원들이 목에 걸고 다니며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CJ올리브영의 ‘AI 번역기’.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CJ올리브영의 ‘AI 번역기’.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화장품 분야는 전문적 지식과 용어를 알아야 원활한 안내가 가능한 만큼, 올리브영은 AI 번역기 도입으로 외국인 고객에게 더 정확하고 자세한 설명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매출 증가를 염두에 둔 행보다.

올리브영이 지난해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면세혜택을 제공한 건수는 370만 건에 이른다.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약 660% 증가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4배 이상 오른 수치다.

이에 올리브영은 지난 18일부터 전국 매장에 16개 언어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휴대용 번역기’를 비치했다.

올리브영 측은 “K-콘텐츠에 힘입어 방한 관광객 사이에 올리브영 매장이 필수 쇼핑 코스로 자리매김했다”며 “외국인 고객에게 더 나은 쇼핑 서비스와 전문화된 큐레이션을 제공하고자 번역기를 구비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에도 올리브영 강남 타운은 ‘한국여행 필수 코스’답게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매장 직원들에게 번역기가 도움이 되는지 묻자 “휴대성이 좋아 소지한 채 업무를 볼 수 있어 외국인 고객 응대 시 즉각적이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거나 “음성에 따라 자동으로 해당 언어로 번역돼 매우 편리하다”는 평이 쏟아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애비뉴엘 1층 안내데스크에 AI 통역 솔루션 ‘트랜스 토커’가 설치됐다.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서울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애비뉴엘 1층 안내데스크에 AI 통역 솔루션 ‘트랜스 토커’가 설치됐다.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롯데백화점도 AI 통역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달 22일 SK텔레콤과 손잡고 13개 언어를 지원하는 AI 동시통역 솔루션 ‘트랜스 토커’를 출시한 것. 트랜스 토커는 에비뉴엘 잠실점 1층과 롯데월드몰 지하 1층 안내데스크에 각각 설치됐다.

반투명한 스크린 앞뒤로 마련된 마이크를 통해 안내데스크 직원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현장을 찾은 기자가 프랑스어로 “Je veux chercher les toilettes(화장실을 찾고 싶은데요)”라고 말하자, 직원 B 씨가 한국어로 “직진 1분 하시면 왼쪽에 있습니다(Allez tout droit pendent une minute et vous le trouverez sur votre gauche)”라고 답했다. 스크린을 매개로 서로 다른 언어를 실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직원 B 씨는 “하루에 외국인 고객이 150명 정도 찾은 것 같다”면서 “중국어와 일본어가 가장 수요가 많고, 아랍인 고객들도 종종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안내직원이 외국어에 능통하더라도 모든 언어를 커버할 수 없고, 한국어로 설명해도 자연스러운 통역이 돼 더욱 자세하게 응대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AI 기술이 유통업계 현장에서 언어장벽을 허물 수 있을 만큼 고도화됐단 점이 피부로 느껴져 신선했다.

그러나 주변 소음 등으로 통역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보였다. 더 편리하고 나은 응대를 위한 시도이지만, 오류 상황이 길어짐에 따라 응대 시간이 되레 지체되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두어 번 연속으로 나온 통역 오류에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B 씨는 “외국인 고객들이 다시 같은 말을 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도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도입 초기인 만큼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 고객이 AI 통번역 서비스를 아직 모르는 듯, 이용률이 낮아 아쉬움이 남았다. 기자가 강남 지역 올리브영 3곳 및 롯데백화점 안내데스크 2곳을 둘러본 결과, 모든 매장에 외국인 고객이 많았음에도 AI 통·번역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극히 드물었다.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인 사미아(27) 씨 역시 “한국에 수년째 거주하면서 올리브영을 자주 찾지만 AI 번역기가 생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언어가 달라 직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듣기가 쉽지 않았기에 매장에 오기 전 인터넷으로 미리 상품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했다는 그는 “역시 올리브영”이라며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번 번역기 도입이 올리브영과 외국인 고객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번역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들어 깜짝 놀랐다. 더 적극적으로 홍보했음 좋겠다”고 했다.

올리브영 직원 A 씨는 “아직 도입된 지 일주일 정도 밖에 안돼 외국인 고객들의 이용률이 크진 않다”며 “아직은 잘 모르지만 직원들이 대응함에 따라 점차 이용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담당업무 : 의약, 편의점, 홈쇼핑, 패션, 뷰티 등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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