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은행산업은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기본적인 믿음을 얻지 못한 은행에 소중한 자산을 맡기는 고객은 없다. 하지만 은행권에서 잇따라 불거진 불완전판매 논란, 직원횡령사건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고객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대로 신뢰를 계속 잃으면 은행의 존립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경고했다. <시사오늘>은 은행권이 고객 신뢰를 잃어간 과정을 되짚어보고 원인과 함께 개선방향을 살펴봤다.
은행의 본질인 이자수익이 몰염치한 이자장사로 치부돼 정부와 국회, 국민들의 지탄을 받으면서 은행권은 비이자이익 확대를 꾀하고 있다. 다만 ATM 현금 인출, 계좌송금 등 무료서비스로 인식돼온 기존 금융서비스를 기반으로 마땅한 비이자이익 창구를 마련하기 어려웠던 은행은 단기간내 성과를 낼 수 있는 펀드판매 수수료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들은 대규모 손실을 떠안았고 불완전판매 책임소재를 둘러싼 금융당국, 은행 등 금융권과 피해고객간 갈등은 막대한 사회적비용만 유발했다.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부실판매 사태로 곤혹을 치뤘지만 은행은 또 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과거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은행권과 감독당국은 홍콩H지수 ELS 대규모 손실사태 주범으로 다시금 스스로 낙인을 찍으며 불신을 자초했다.
반복되는 불완전판매 논란…백약이 무효
은행권의 불완전판매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06년부터 펀드판매는 은행권의 새로운 주요 먹거리로 자리잡았다. 주요 판매채널이던 증권 비중이 2005년말 66.3%에서 2007년말 51.9%로 감소한 반면 은행권 비중은 31.5%에서 43.3%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일반사모펀드 시장규모는 정부의 활성화정책으로 급속도로 커지면서 불완전판매, 유동성관리 실패 및 운용상 위법‧부당행위 등에 따른 투자자 보호문제로 이어졌다. 결국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통해 판매된 DLF상품에서 최대 98.1%의 손실률(평균손실률 52.7%)이 발생하는 등 대규모 상환·환매연기로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2019년 11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내놓고 고위험‧고난도 사모펀드의 은행 판매를 제한하는 등 주로 ‘판매 단계’에서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했다. 아울러 판매사가 적격 일반투자자에 사모펀드 판매시 판매한 펀드가 규약‧상품설명자료에 부합하게 운용되는지 점검할 책임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후 홍콩ELS사태가 불거지며 판매상품과 주력 판매은행만 달라졌을뿐 유사한 상황이 재현됐다.
특히 금융당국이 이미 홍콩ELS사태를 예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은행뿐아니라 감독당국의 책임도 불가피해졌다.
실제로 당국은 2018년 중국과 미국간 통상마찰 등으로 H지수 하락과 판매경쟁에 따른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며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ELS는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증권사와 은행이 수수료 수입 극대화를 위해 적극 발행·판매해 과도한 쏠림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같은 쏠림현상은 정부와 국회의 이자상사 비판에 대응한 은행권의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판매수수료 중심 사업모델이 사모펀드 부실판매를 유발해 비이자이익이 오히려 위축되는 결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은행들의 올 1분기 총당기순이익은 전년동기대비 24.1% 감소한 5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실적 감소 원인으로는 홍콩ELS사태의 손실배상금이 꼽힌다.
원인은 'KPI' 성과주의…조직문화개혁 필요
이처럼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는 은행에게 수수료 수익과 함께 막대한 리스크를 동반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은행채널에서 금융상품 판매가 무리하게 진행된 원인은 은행권 내부에서 이뤄진 실적경쟁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금융사 핵심성과지표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다. KPI는 영업점별 상품판매성과를 점수로 환산한 지표다. 단순점수가 아니라 성과급과 승진 등 인사고과에 반영돼 은행원들이라면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은행원 입장에선 KPI지표에서 점수를 많이 획득할 수 있는 영업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DLF사태로 마련된 불완전판매 대책이 홍콩ELS 손실사태를 막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당시 대책은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을뿐 직원이 불완전판매를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은행권 내부의 근본적인 성과주의 조직문화를 개선시키진 못했다.
이 때문에 홍콩ELS 판매가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 고위험상품 펀드판매에 그만큼 KPI 고점이 배당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주요 은행들은 홍콩ELS 사태후 고위험상품 판매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KPI를 대대적으로 손보기도 했다. 홍콩ELS를 가장 많이 판매해 피해를 키운 KB국민은행의 경우 한발 더 나가 고객 중심 성과지표인 CPI(Customer Performance Indicator)를 도입하기도 했는데 향후 CPI 운영성과가 고객신뢰 회복 여부를 판가름케 할 전망이다.
다만 이미 손실이 발생한 ELS 가입고객과의 배상문제가 남아있어 이 과정에서 얼마나 고객중심으로 대응해 나갈지도 은행권이 해결해야할 과제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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