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잇따른 협력업체 직원 사고… ‘죽음의 외주화’
조선소 협력업체 직원들의 줄지은 인명피해로 이들이 받는 차별대우와 원청업체의 무책임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20일 오전 11시경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의 건조 중인 선박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사내 협력업체 직원 4명이 숨졌다. 이 직원들은 오는 10월 그리스업체에 선박 인도를 앞두고 막바지에 투입됐으며, 사고 당시 탱크 내에서 도색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 사고는 3개월 전 발생한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 사고와 닮은 면이 있다. 두 사고 모두 휴일에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직원들이 사망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1일 거제시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는 작업 중이던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인도 한 달 전 막바지 작업을 하던 노동자 31명이 다치거나 숨졌다. 신원 확인 결과 사상자 전부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다. 삼성중공업 원청 노동자들은 이날 근로자의 날을 맞아 휴식을 취했다고 전해진다.
작년 10월에는 통영의 성동조선 협력업체 30대 노동자가 건조 중인 선박 크레인 시험 운전을 위해 맨홀 뚜껑을 개방하다 맨홀 17m 아래로 떨어져 숨진 사고도 있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조선업 산업재해율은 0.83%로, 평균 0.49%에 비해 두 배 정도 높은 수치다. 조선업의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 당 사망자수) 역시 평균 0.96%에 비해 높은 1.39%을 기록했다. 조선업 노동자들은 산재로 사망할 가능성이 일반 노동자들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셈이다.
조선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이보다도 취약한 상황이다.
조선 하청업체 사망자 비율은 2013년 87%, 2014년 91.7%, 2015년 80%, 2016년 72%다. 평균 82.7%에 이르는 높은 수치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재해자들이 더 많다는 분석이다. 현행 사내 협력업체 산재율 선정 방법에 따르면, 협력업체에서 산업재해 보고서를 원청업체에 보고할 법적 의무가 일체 존재하지 않으며, 사내 협력사에서 산재보험에 개별 가입한 경우 원청업체의 재해율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발표한 ‘2016년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 및 연구보고’에 따르면, 하청노동자들은 주로 노동 강도가 높거나 산재 발생 위험이 높아 기피하는 업무에 배치된다. 위의 조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25%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에 걸린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하청노동자들은 “위험도 외주화 시킨 것”이라고 지적한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동조합 측은 21일 <시사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조선업은 간접고용, 이른바 사내하청 비정규직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3,4배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아 다치는 사상자도 많다”며 “상대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을 하도급에게 주는, 위험이 하청화 돼있는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부당해고·임금체불·보험료 체납까지… 협력사 노동자의 한숨
“하청노동자에겐 '부당해고'라는 말도 사치다.”
<시사오늘>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하청노조원이 한 말이다. 이처럼 조선업에 종사하는 하청 노동자에게 해고란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는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무급휴직과 퇴직금 체불 등 구조조정의 혼란 속에 불법이 성행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사내하청 조선업체의 불법 행위를 즉각 전수조사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지난 4월 거제시 삼성중공업 사내에 있는 영국 기업 케이프이스트(Cape East)는 노동자 500여 명에게 대량 해고를 통보해 논란을 일으켰다가 일주일 후 철회했다.
회사 노동자 대부분은 4월 30일이 근로계약 종료일이었다. 그러나 케이프이스트는 지난 2월 노동자 전체에게 ‘근로계약 종료일이 3월 13일로 변경되었다’는 일종의 해고 예고통지문을 보냈다.
거제통영고성 조선소하청노동자살리기대책위와 금속노조조선하청지회는 “케이프이스트가 폐업도 아닌 상황에서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며 노동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며 이는 부당해고 통보라고 주장했다.
이 사태에 대해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조 측은 “그나마 해고 통보라도 하니까 양반인 수준”이라며 “다른 업체는 통보도 없이 계약 만료면 그냥 끝이다”라고 하청노동자의 ‘파리목숨’을 자조했다.
퇴사 압박으로 자살에 이른 노동자도 있다. 지난 5월,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성우기업 소속의 노동자 정모 씨는 사표를 쓰고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성우기업은 정 씨에게 보직변경·직책강등·임금삭감 등 압박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 좋게 퇴사조치를 당하지 않아도 하청 노동자들의 문제는 계속된다. 경기 침체로 인해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지난해 조선소 밀집지역은 지난해 구조조정 여파로 임금 체불액 증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바 있다.
올해 6월 말 울산지역의 체불 임금만 계산해도 모두 225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지난해 액수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전국 조선업계 임금 체불은 6560억 원에 달했다.
체불되는 것은 임금 뿐이 아니다. 지난 4월 울산 조선업 하청업체들의 4대 보험료 역시 체납액 170억 원을 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관련 4대 보험료 체납현황’에 따르면, 2016년 5월부터 2017년 2월까지의 울산동부지사 전체 체납건수는 669건, 체납액은 170억 800만 원에 달했다. 1억 원 이상의 체납 업체도 39건이었다.
이에 대해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업체별 건수이기 때문에 체납 사태에 따른 피해가 우려되는 하청노동자는 최소 1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며 “대다수가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여서 하청노동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영주號 ‘근로감독’ 혁신 성공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의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 "위험한 업무를 하청 업체에 떠넘겨서 정규직보다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높은 현실을 바로 잡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부응해 정부는 지난 17일 하청 업체에 일감을 주는 원청업체의 안전 의무와 이를 어길 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재 예방정책'을 발표했다.
예방정책에 따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안전조치가 미흡했던 사실이 밝혀지면 원청업체도 협력업체와 같이 7년 이하의 징역·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중대한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은 안전성 확보와 관련해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야 작업 재개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8일 임금체불·산재사고·부당노동행위를 노동현장에서 근절돼야 할 3대 과제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근로감독관 수를 늘리고 근로감독 방식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장관은 취임 이후 첫 소통대상으로 경영계도, 노동계도 아닌 근로감독관을 택했다.
그는 울산의 근로감독관들을 방문해 “근로감독관이 사후 임금체불 사건 해결에 노력하지만 체불은 줄지 않고, 해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연간 2만개소, 전체 사업장의 1%에도 못 미치는 근로감독 역시 형식적 점검과 시정 위주의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근로감독관 500명 증원계획을 냈는데 예산절감 문제로 200명만 통과됐다”며 “적어도 1000명 정도는 증원이 돼야 한다”고 근로감독제 강화를 통해 노동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인명사고가 발생한 STX조선해양 전체 사업장에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지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감독반은 “잇따른 조선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화재·폭발 위험 장소와 크레인 충돌 위험 장소 등을 중점 감독할 것”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도 철저히 점검해 위반사항 적발 시 엄격한 행정·사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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